비참을 알고도 명랑하게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도서출판)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자 김지수는 매주 노시인 나태주가 있는 공주를 찾아간다. 시인이 즐겨찾는 찻집, 도자깃집, 식당 등등을 다니며 인간이자 시인 나태주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 이야기들은 마치 에세이이자 한편의 대화문처럼 되어있으며, 에세이, 인터뷰집 등등의 여러 성격을 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인 나태주는 부정적인 생각과 언어들 조차도 시적으로 풀어간다. 김지수 기자가 도시에서 배운 부정들을 고백하면, 시인 나태주는 긍정적인 가르침으로 받아친다. 이 책을 읽는 제 3 자의 독자는 마치 그들의 대화문을 보면서, 평생 배워왔던 도시인의 편견을 이렇게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겠구나 하며 눈이 초롱초롱해진다. 도시인이자 오랜 직장생활을 한 사람과, 평생 시골에서 시를쓰고 학생을 가르친 사람의 오가는 시선이 새롭다. 그녀에게 자신이 가꾸는 꽃밭들을 보여주고, 그 모든 꽃들에서 배운 인생들을 나열한다. 그리고 이 마을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가 누구를 아끼는지 빠짐없이 자랑한다. 특히 부인 김성예 여사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해서 나온다. 도저히 그 옆을 떠날 수 없다고, 나가 있어도 금방 돌아오게 된다고 고백한다. 노시인의 사랑은 어쩐지 아름답고 순수하다. 나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자연을 사랑하고 은유를 사랑하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누구보다 남들도 알아듣게끔 쉬운 시를 쓰는 그가,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왔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어찌하여 이다지도 '기이한' 책이 탄생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굳이 연유를 묻는다면 '당신 혼자 떨지 말라' 는 미친 오지랖 같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태주의 마음밭에 지수가 내는 슬픔의 물길을, 지수의 마음숲에 태주가 터주는 시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여러분도 사는 게 좀 덜 외롭지 않을까 싶어져요. 그 길에 윤동주의 <새로운 길> 이 펼쳐지고, 나태주의 <풀꽃>이 피어나고,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가 지나가고, 이형기의 <낙화>가 떨어지고, 이어령의 '한밤의 까마귀' 도 날아갑니다.

시간적으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후에 나온 책이라, 간간이 '느낌의 어른' 인 나태주에 '생각의 어른'인 이어령이 반사되는 선명한 데자뷔의 순간도 느껴질 겁니다.

쓰는 동안 '얼마나 정직할 수 있을까' 를 생각했습니다. '그대는 결핍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었다' 는 나태주 선생의 말이 큰 위로가 됐습니다. 그 말이 여러분께도 가닿길 바랍니다.

_ 서문 ( 9~ 10)

"그런데 그대는 잠시 잊어야 할 사람이 있어요"

"제가요?"

"네"

"누구요?"

"이제 이어령 선생을 보내드리세요"

"(놀라며) 네...?"

당황한 지수가 뒤죽박죽 희한한 물음표를 던졌다.

"이어령 선생이 이 여행에 동행하길 원한 건, 정작 나태주 선생님 아니셨어요?"

"...모르겠어. 그런데 이쯤에서 잠시 거리를 두어야 할 것 같아요. 그대를 위해서."

'시는 시샘이 많아 다른 곳에서 놀다 오면 곁을 주지 않는다고 했던가'

_ p. 2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단단한 공감 - 감정의 낭비를 끝내고 확실한 변화를 이루는 법
셰르민 크루즈 지음, 신동숙 옮김 / 청림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아 철학을 중심으로 올바른 공감법과 대화의 지혜를 살핀다. 처음에는 공감에 대한 이론으로, 나중 챕터는 스토아 철학으로 나아간다. 처음 이 책의 흐름을 쭉 읽었을 때 스토아 철학과 공감이 무슨 상관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가 삶의 시련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남에게도 나에게도 올바른 공감을 할 여력이 없다. 그리고 인간은 시련을 많이 겪고 자신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수록 연민, 동정, 공감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후천적으로 훈련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올바르게 구분한다는 것은 평생 살아온 삶의 철학에도 묻어나오는 매너이다. 일단 공감하기 전 스토아철학에서 말하는 분노, 좌절, 불안에 대해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며, 이후 사람들에게 공감해주고 대화를 나눌 때 2차적으로 '나의 감정' 을 잘 다루게 되면서 남을 공감하는 스킬이 늘어난다. 그 점에서 스토아 철학이 몸에 배는 것은 타인을 대하는 데 있어서 놀라운 스킬을 습득하는 결과를 낳는다. 평소 동양철학, 고대철학, 서양근대철학을 접해왔지만 이론이 아닌 삶에 적용하는 스킬은 생각지 못했다. 윤리 잡지나 교과서를 보듯 즐길뿐이었다. 이 책을 보며 다른 철학책을 볼때 좀더 진지하게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내 행동과 생각에 결합하고 맞춰봐야겠다.


-

스토아주의적 원칙을 실천하면 일시적인 분노, 좌절, 불안 같은 감정에 말투가 휘둘리지 않도록 자신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 결과 힘든 상황에서도 차분하고 침착하며 자신감 있는 톤을 유지할 수 있다. 의도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전달함으로써 오해의 위험을 줄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내면의 안정과 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균형 잡힌 말투를 사용함으로써, 말과 행동과 가치가 조화를 이루도록 할 수 있다.

한편 공감을 실천하면 타인의 감정과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강화되어, 더 적절하고 진정성 있게 반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상대가 우리의 말과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민감하게 인식하고, 그 즉시 비언어적 표현을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방에게서 불편함이나 오해의 신호가 보이면, 공감하며 이를 알아차리고, 상대방을 편하게 만드는 다정하고 스스럼없는 몸짓을 취할 수 있다. 눈 맞춤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긍정의 제스처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는 단순한 소통을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것을 넘어, 상대의 감정을 세심히 관찰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_ 335~3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빈곤과 뇌 - 누가 그들을 게으르다고 비난하는가
스즈키 다이스케 지음, 송현정 옮김 / 사이드웨이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적 기회가 있는데도 끊임없이 빈곤에 빠지고, 나쁜 길로 빠지는 사람들이 많다. 국가가 주는 수급의 기회에 조금만 손을 뻗으면 되고, 직업 훈련도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뇌는 남들보다 고장나있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이해가 안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해가 되는 쪽에 속했다. 일상에 있어서도 가끔 내가 방금 적으려던 내용을 0.1초만에 까먹고, 벗어놓은 안경, 지갑, 휴대폰을 찾는데 모든 이불과 물건을 뒤집어 엎는다. 물건을 평소에 잃어버리는 건 기본이고, 상대방의 말을 못알아들어 귀는 쫑긋하지만 알아들은 척 얼버부린다. 일을 할때는 열번을 설명해도 못알아듣고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나는 주로 철을 자르고 굽히는 도면을 그리고 내렸는데, 아주 간단한 건 하지만 도저히 심화과정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대량으로 어려운걸 내린다던가) 결국 간단한 일에도 공포에 휩쓸렸고, 스스로를 해치며 일을 하거나 하루종일 울며 시간마다 주변 사람들과 괴롭다고 통화를 하다가, 발전이 없다는 이유로 여러번 해고를 당했다. 여러 경험이 있다보니 '업무' '일' '직업' '수익내기' 등의 단어를 들으면 동공이 커지며 바짝 얼어버리고, '아르바이트라도 해라' 라는 말을 들으면 마치 당장 사형장으로 가라는 것마냥 얼어버린다. 이런 고장난 증상들은 그 증상을 극복하면 되는 문제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여러번 시도할 수 있는 기회보다 그 시도를 여러번 실패했을 때 상대 집단이나 개인으로부터 공개적인 모욕을 당하고 창피를 당한다는 기분은 도저히 숨길 수가 없다. 뇌기능이 떨어지고 실패를 거듭하면 과호흡이나 공항이 오는데 개인의 감정보다는 그것에 인간관계나 상대 반응에 대한 오해나 인식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작가 또한 뇌경색으로 사소한 작업들에 난관을 겪기 전까지는 이런 뇌기능 저하로 사소한 계산, 빚해결, 서류작성, 어둠의 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기초수급을 신청하지 못하는 등. 가까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책을 썼지만, "내가 겪어보니 전에 책에 적은 것들이 이해가 되고 당사자들에게 미안하더라" 라는 고백을 한다. 


이렇듯 남을 이해시키는 것은 할수도 없고, 억지로 해서는 안되지만 큰 경험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지금 이 상황에도 내가 쓴 이 사연들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면 나 또한 일부는 이해한다. 나보다 사소한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것에 나조차도 의문을 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항상 인지하고 있다.


슬프지만 괴로움과 어려움에도 개성이 있다는 것을 서로가 이해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책의 문맥을 이해 못할때가 많다 결국 앞내용을 열번 이상보고 뒷내용에 온힘으로 집중한다 > 이러다가 뇌피로가 와서 잠드는 경우도 있다. 아니면 그냥 눈이 당기거나)

-

선천적 당사자들은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면서도 스스로를 노력도, 능력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탓하며 살아간다. 태어나길 건강하고 편리한 뇌로 살아온 내 입장에서 보면, 선천적 뇌성 피로를 안고 살아온 사람은 팔다리에 몇 킬로짜리 모래주머니를 달고 일상생활을 하는 '만화 속 악바리 캐릭터' 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비장애인, 즉 정형 발달의 뇌를 가진 사람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탓하고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또한 이렇게 '자신의 노력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탓하는 비극은 비장애인이 만든 사회적 기준을 배우기 전인 학령기에 고차 뇌기능 장애를 겪게 된 사람들에게도 반복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니체 초인 수업 - 당신 안의 초인을 깨워줄 차라투스트라의 질문들
강용수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니체가 말한 초인은 독일어로 '위버맨쉬' 라고 한다. 사람들은 초인을 내면뿐만 아니라 겉으로도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 나도 이 차라투스트라는 말했다를 해석한 강교수의 책이 아니었다면 그가 '강자가 되라' 고 했다고 오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니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서라고 했을 뿐, 남을 짓밟으라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사상이 오해를 받았던 것처럼 니체의 사상도 마찬가지였다.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 을 이긴 후 남과의 싸움에서도 지지 말라는 해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렇지만 니체가 말한 마지막의 '어린 아이' 가 되라는 말을 보면 그 뜻이 성립될 수 없다. 세상을 경험하고 거의 모든 경험을 초월했지만 어린 아이처럼 티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인생을 즐기라. 니체가 해석한 그림자, 독수리, 뱀, 사자, 낙타, 어린아이 등의 해석을 오해하면 각기 다른 오해의 해석이 나올 수 있겠다. 가끔은 고전을 볼 때 알맞은 해설서도 필요하다. 


-


흔히 초인에 대한 많은 오해를 한다. 차라투스트라의 개념에는 '위' (위버) 를 나타내는 접두사가 많기 때문이다. 극복이라는 독일어 어원의 뜻을 살려 초인을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 더 높은 존재로 해석하곤 한다. 세상을 초월해서 더 높은 곳으로 넘어가야 초인이 된다고 오해하는 이유다. 독일어 어원으로 보아도 위버멘쉬는 일종의 위에 있는 높은 사람 (오버맨) 이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가 말한 위버는 오히려 상승보다 하강의 뜻으로 거꾸로 풀이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에 따르면 모든 생명의 본질은 '힘에의 의지' 다. 이를 더 많은 권력을 원하는 경향으로 보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니체의 초인을 가장 크게 오해한 사람은 히틀러다. 그는 무솔리니에게 니체 전집을 선물하며 그 내용을 잘 안다고 자랑했지만, 이는 허풍에 가깝다.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초인의 이미지를 악용한 사례일 뿐이다. 히틀러가 놓친 건 이 지점이다. 힘에의 의지는 남을 짓밟고 위로 오르는 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는 내적인 힘이다. 그리고 니체에게 그 극복은 언제나 낮은 곳, 이 땅에서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질주하는 세계 - 지구의 탄생부터 특이점 신화까지, 속도는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가
바츨라프 스밀 지음, 이한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의 출현, 지구의 출현, 생물의 진화와 멸종기, 그리고 인류의 진화를 넘어 속도를 추구한 농사, 국가의 성장, 이동전화기 발전, 엔진의 발전, 고속열차의 속도, 보잉항공기와 전투기 속도의 발전까지 '속도' 에 관련된 인류의 진화를 한대모아 이야기한다. 조금이라도 빨리하기 위해 더 빠른 기기를 만들고 더 최신의 부품을 추가했으며, 획기적이고 추진력있는 발전을 이룩해왔다. 우리는 21세기 들어 1800년대 산업혁명 이후로 유래없는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발명과 발견, 발전의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더 빠른 속도로, 더 좋은 발전을" 이라는 기술적인 면도 좋지만, 그 안에 더 많은 단점을 살피고, 우리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외면되고 있는 저소득국가의 실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빨리빨리"를 추구하며 몇억분의 1속도를 경험하고 그에 대응하며 일하는 우리들의 마음도 점검이 필요하다.

-

그런 한편으로 나는 설령 2040년까지 자기부상열차 철도망도, 뇌 이식물도, 저렴한 도시 간 로켓도, 모든 영역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AI도 결코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더 빠른 속도가 중요한 혜택을 많이 가져올 것이라는 고무적인 발전 전망을 보이는 영역도 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거리낌없이 인정한다. 또 결과등레 대응할 수 없을 만치 변화가 너무 빨리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에도 동의한다. AI의 범위와 보안에 대한 우려, 자동화한 시스템들이 치명적인 충돌을 빚을 가능성 증가에 대한 우려 등이 그렇다.


그리고 이른바 그 필연적인 새로운 가속이 우리를 압도하기를 기다리거나, 그 일이 빨리 일어나도록 열심히 애쓰는 대신에 다른 대안도 있다. 우리는 더 균형 잡힌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여전히 가속이 몹시 필요한 영역과 감속이 더 바람직한 영역을 신경 써서 조합하는 대안을 추구해야 하지 않을까? 19세기에 현대의 고속 사회가 출현하기 시작했을 때 이 가능성을 심사숙고했어야 한다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지만, 발전이 축적된 지금은 고려할 가치가 있다. 이는 현대 속도 몰입의 탄생과 그 궁극적인 영향을 단순히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선다는 의미다. _ 맺음말 (368~36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