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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브 농장
이민주 지음, 안승하 그림 / 창비 / 2023년 11월
평점 :
공감각적 심상. 하나의 감각이 동시에 다른 영역의 감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일어나는 심상을 뜻하는 말이다. 학창 시절 언어 영역을 공부하며 배웠던 개념인 공감각적 심상이 잘 드러난, 아주 흥미롭고 실험적인 그림책을 만나게 되었다.
클래식 작곡을 전공한 글작가님이기에 가능했지 않을까 싶다. 음표와 쉼표가 자기의 자리를 찾아 제 역할을 할 때, 높고 낮게 그리고 길고 짧게 울리는 소리들과 쉬어가는 순간의 침묵의 연주까지도 모두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그걸 귀로 듣는 음악으로만 즐기는 것을 넘어서서 페브 농장에 심기고 자라는 음표들을 통해 눈으로도 보게 해주는 그림책이다.
이 그림책의 매력 포인트는 한 둘이 아니다. 글과 그림 모두 리드미컬했고, 할머니의 편지, 할머니 없는 농장, 할머니와의 추억 상기, 할머니의 귀환, 집에 돌아와 할머니가 싸주신 짐을 풀어보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이 정겨웠다. 또, 페브 농장의 낮은 음표 씨앗이 자라는 소리로 분주하고 활기찼고, 밤은 쉼표 별자리가 비추는 가운데 평화로웠다. 그러나 고요하기만 했던 밤이 아니라 그 사이 음표 씨앗들이 영글어 더욱 존재감 넘치는 열매가 맺혀있었고, 수확하여 열매를 즐기며 더 생기있는 날들을 보낸다. 낮과 밤 없이 쉴새없이 햇빛만 내리쬔다고 식물이 잘 자라고 좋은 열매가 맺히는 게 아니듯, 쉴새없이 소리를 낸다고 더 완벽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글 본문에 나온 것처럼, 낮과 밤이 함께 만들어가는 농장의 하루가 곧 음표와 쉼표가 함께 만들어가는 음악인 셈이다.
그리고, 또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다. 잘 짜여지고 계획된 음의 나열(초반에 4분의 4박자 한 마디 안에 들어가듯 4분 음표, 2분 음표, 1분 음표, 8분 음표를 줄 맞춰 심는 장면)도 규칙성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지만, 이야기 중반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며 그야말로 제멋대로 심겨진 씨앗들이 내는 소리가 만드는 음악은 자유분방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같은 즐거움이 있는데 그걸 그림으로도 잘 표현한 것 같다.
이 그림책을 읽게 된다면 본문 맨 뒤에 있는 큐알코드를 찍고 그림책 테마곡을 재생시켜 함께 감상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