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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나라 여왕님
연두콩 지음 / 아스터로이드북(asteroidbook) / 2021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차의 나라 여왕님>은 연두콩 작가님이 처음으로 쓰고 그린 창작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연두콩이라는 작가명처럼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등장한다. 겉표지에 그려진 모습만 보아도 저 생기발랄한 표정 하며, 두 손을 위로 번쩍! 들고 환호하는 듯한 모습이 주인공의 밝고 당당한 모습을 잘 나타내는 듯 하다. 아마도 차의 나라 여왕님은 이 귀여운 꼬마 아가씨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차의 나라 여왕님으로서 어떤 활약을 하는걸까 궁금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이야기의 시작은 엄마가 지인들을 만나고 있는 장소인 찻집이었다. 무슨 사정이었는지는 몰라도 엄마 모임에 혼자 끼게 된 여자 아이는 '엄마에게 말도 시키지 말고 혼자 놀아야 한다'는 엄마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입을 열어 재잘거리고 싶고, 또 몸이 근질근질 했을까? 말을 걸지 말라고 했던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아이가 자꾸만 엄마를 찾으니 엄마는 결국 숙제를 40쪽이나 내준다. 아니, 숙제 40쪽?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주인공 아이같이 이야기 하기 좋아하고 엄마를 계속 찾는 아이가 우리 집에도 두 명 있기에..ㅎㅎ 그리고, 엄마도 모처럼 만난 지인들과 나누고픈 이야기가 많았을 것을 생각하니..^-^;
아이는 진짜 숙제를 하려고 마음 먹어 보지만 엄마와 이모들이 마시는 찻잔을 보며 예쁜 드레스를 떠올리고, 이내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찻잔이 변하여 공주들이 되고, 아이에게 딱 맞는 예쁜 드레스를 준비해두었다며 차의 나라로 초대한다. (차의 나라 공주님들이 입은 드레스의 하얀 바탕에 파란색 무늬는 엄마와 이모들이 마시던 찻잔의 무늬를 닮아있고, 공주들의 피부색은 우롱차 같은 갈색이다. 따끈한 차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공주들의 머리카락도 하늘하늘하게 휘날린다. 이런 디테일을 찾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아이는 드레스를 입고 한껏 마음이 부풀었지만 달려가다가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질 뻔 했다. 공주들은 이제 막 예쁜 드레스를 입고 공주가 된 아이에게 '공주가 되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야기인 즉슨, 공주는 달려도 안되고, 큰 소리를 내도 안되고, 속마음을 그대로 이야기해도 안되고, 질문이 많아도 안된다는 것.
그래서일까? 차의 나라의 공주들은 모두 사뿐사뿐 걷고 조곤조곤 말하고 오호호호 웃었다.
주전자 왕자님이 아이에게 춤을 청하자 차의 나라에 무도회가 시작된다. 차에 곁들여 먹는 과자는 모두 멋진 왕자님들이 되어있었고, 공주들은 드레스가 쫙 펼쳐지도록 뱅글뱅글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즐거운 무도회에서 몇 가지 사건-사고들이 생기는데 그 때마다 아이는 용감하게 나서서 지혜로운 조언을 하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차의 나라 공주님과 왕자님들은 좀 더 자기 자신과 상대방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관습, 겉모습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이를 만나기 이전에는 '공주란 이러이러해야 해.' 같은 행동의 제약과 겉모습에서 보이는 조건들이 중요한줄로만 알고 살았던 우롱차 공주들은 이제 달라졌다.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속마음을 당당하게 표현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영감을 준 아이를 공주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여왕(책 제목에도 나온 것처럼) 으로 추대한다. 아이는 이를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차의 나라 여왕이 되어 기쁨의 무도회, 아니 춤판-이 어울리는 듯 하다-을 벌이고 현실에까지 이어져 웃음 가득한 마무리를 짓는다.
아이의 1인칭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와 순수하고 당돌하면서도 예쁜 드레스에 두근거려하는 소녀 감성을 자극하는 그림체가 잘 어우러진 그림책인 것 같고, 공주다움이나 여성스러움에 대한 편견을 깨면서도 그러기 위해 꼭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을 버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그 또한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가짐과 태도의 문제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비록 현실의 아이는 반팔티, 반바지 차림에 바구니를 뒤집어 쓴 모습에 개의치 않고 춤을 추었지만, 이 책 전반적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운 그림들 속 드레스, 레이스 무늬, 찻잔과 주전자 등은 여전히 아름답게 그려졌기에,(작가님께서 무척 공을 들여 그리신 게 보였다) 기존의 공주다움에 대한 사회 문화적 요구에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도 그런 아름다움에 대한 취향을 부정해야만 한다는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같이 와닿았기 때문이다. 나다움에 대한 그림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 책도 함께 읽어보며 아이들과 생각을 나눠보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