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쿠 1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후미는 훌륭한 만화가이다. 대갈치기를 남발하든 말든, 동인지 근성의 적당적당함이든 말든, 어쨌든 여기까지 온 만화가를 폄하하기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니까. 단지 '음흉한 야오이 만화가'라고 후미를 폄하하기에, 혹은 한정시키기에는 후미가 그려내는 작품들의 독특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거 진짜 재미있는데'라는 탄성만을 짓게 한다. 전작 『사랑받아야 할 딸들』이나 『플라워 오브 라이프』에서처럼 훌륭하게 여성들의 삶이나, 학원물을 그려낸(그렇다고 결코 평범하진 않으나) 후미의 만화 세계는 이미 확고부동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녀를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열광하듯이 말이다.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후미의 재능은 탁월하다. 후미의 만화는 그 주제에서부터 구성까지 어떤 하나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함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후미라는 작가에 대해 그게 그거라는 지루함을 느낄 일이 없다. 보통 작가들이 하나의 작품이 크게 성공하고 후속작을 내게 되면 사람들의 흥미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세상은 너무 넓고 읽어야 될 만화는 너무 많은데, 그것을 그리는 만화가는 좀처럼 성장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그의 스타일이 확고해졌다, 작가 색깔이 뚜렷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넘쳐나는 만화의 시대에 살아남으려 노력한다면 만화가는 끊임없이 독자를 자극할 소재와 세상을 보는 남다른 눈으로 그들을 유혹해야 할 것이다.

후미의 첫번째 사극『오오쿠』는 정말 사볼만한 가치가 있는 만화이다. 첫 번째는 재미있기 때문에, 두 번째도 재미있기 때문에. 이런 황당 기괴한 스토리는 후미밖에 생각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은 너 천재아냐?'라고 묻고 싶기도 하지만, 또 이런 황당무계한 스토리는 만화에서밖에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이 여자가 만화가가 되기로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남자들이 죽어나가는 시대의 일본(시대 고증 따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후미식의 적당적당함)은 완전히 남녀의 역할과 위계가 바뀐 사회이다. 마치 소설 '이갈리아의 딸'처럼. 그러나 이 만화는 페미니즘 텍스트로 쓰기에는 너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건 접어두고 단지 재미있게 즐기기만 하자. 미남 삼천 명을 거느린 여자 쇼군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전개되고 있다. 첫 번째는 여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마음으로 씨(?)를 뿌리는 유노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색스러운 작가는 사무라이 대머리를 한 남자를 그려도 색스럽게 그리는가. 여자 쇼군과 첫날밤을 보내고 죽음을 당해야 하는 '고나이쇼노타카'가 될 운명에 처한 유노신, 과연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얄미우리만큼 이 황당한 만화에 '일본의 것'을 듬뿍듬뿍 녹여내는 지라, 나는 이 자기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척박한 나라에 태어난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만화가 한국에도 있다면, 정말 이런 걸 온고지신이라 부르는거다. 현명하고 짠순이 쇼군의 캐릭터도 멋지다. 후미의 만화에서 보이는 당당하고 지조있고 자기 멋대로인 여자들은 언제봐도 멋지걸랑. 지칠 줄 모르는 후미의 승승장구는 오늘도 계속된다. 이렇게 많이 이렇게 재미있게 이렇게 빨리 그리는 작가가 있으면 나와봐. 사극에 도전한 후미는 이번에도 얄밉게 승승장구, 『오오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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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apagos55 2006-02-12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요시나가 후미는 정말 이름만 보고 선택해도 후회 전혀 없을 작가 중의 한명이죠.
그러고보니 어제 남자인 친구에게 이 책을 빌려주면서 "성정치학같은거 생각하지 말고 봐! 그냥 재밌어! 진짜 재밌어!"라고 말했었는데..^^ 과연 그의 소감은 어떨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