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하는 딸들 - 단편
요시나가 후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해야 하는 딸들』은 독특한 감성으로 남자들의 이야기만을 줄기차게 그려온 요시나가 후미가 최초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그린 만화이다. 요시나가 후미는 이미 『서양골동 양과자점』이나 『의욕 가득한 민법』, 본격 야오이물들을 통해서 남자들을(특히 게이를) 맛깔나게 그리는 작가로 인정받아왔다.

『사랑해야 하는 딸들』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주축이 되는 관계는 유키코와 그녀의 어머니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관계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화는 각각 독립된 단편이면서도 사람들의 관계는 그물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드라마의 일상처럼(한때 드라마에는 왜 저렇게 친척들만 많이 나올까 했던 적이 있다) 이 사람의 친구는 저 사람의 애인이란 식으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사랑해야 하는 딸들』에는 특별한 주인공이 없다. 작가는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고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다. 작가가 일상에서 녹여내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은 여자들이 겪고 있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요시나가 후미의 여성들은 그녀가 그리는 남성들에 비해 좀 더 무거운 일상의 무게가 서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더욱 그녀들의 삶에 공감하게 된다. 요시나가 후미는 가느다란 선과 커다란 얼굴을 이용해서 매우 표정을 풍부하게 잡아내기 때문에, 가끔은 이 무성의하다 라고 말해도 좋을 네모난 얼굴들이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잡아낸다고도 생각한다. 표정이 좋구나 하는.

 그렇다고 해서 『사랑해야 하는 딸들』이 무겁고 따분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토리의 완성도를 볼 때 시나리오 작가가 되어도 좋았을 법한 요시나가 후미는 읽는 재미를 위한 독특한 설정 속에 현실에 있을 법한 여자 캐릭터들을 가미함으로써 재미와 만화다운 현실성(현실에 극히 적은 비율로 존재할 '수'도 있겠다 하는) -두 가지를 잡는데 성공했다. 자기보다 더 어린 남자와 재혼하기로 한 마리, 엄마를 빼앗기게 되어 애인에게 질투를 하는 유키코,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수녀가 되는 사야코, 못생긴 얼굴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유키코의 할머니 등 다양한 성격의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에는 그녀들이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경험 - 여자의 재혼, 사회생활, 연애, 맞선, 여자 친구, 어머니와 딸- 이 잘 드러나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여자로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는 어려움을 멋지고 매력적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릴 때와는 조금 다르게 그려낸다.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그리는 작가의 만화는 좀더 무거울 수밖에 없는 것이구나 하고 조용히 한숨을 내쉬기도 하지만.

여성들의 현실을 잘 표현한 요시나가 후미가 가지는 또하나의 매력은 '의외성'에 있다. 그녀는 일상을 그리되 엉뚱한 곳에서 사람의 의표를 찌르는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들이 그리는 여자들은 특이하다. '부모도 사람이야, 기분 나쁠 때도 있어!'라고 딸에게 화풀이를 하는 마리나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는 사야코, 착한 남자를 사랑할 수 없는 매저키스트인 마이코, 딸에게 끊임없이 '너는 뻐드렁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엄마 등 상식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곧잘 텍스트들에서 여성들이 묘사되어온 스트레오 타입의 여성이 아니기 때문에 신선한 맛이 있다. 그러나 신경질이 가득하지만 정이 많은, 자신의 영역에서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여자들은 어쩐지 얄미우면서도 미워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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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dongja 2006-09-27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았죠. 하루에도 몇번이고 읽으면서 대사 하나하나를 되새긴. 이 작가가 스토리 구성을 정말 잘하는 것 같아요 ,.

Koni 2006-09-28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오래 요시나가 후미를 좋아해왔지만, 이 만화를 보고서는 다시 한번 감탄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