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 1
이영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여자들의 포르노, 야오이

누군가 말한대로 야오이는 여자들이 선택한 안전한 포르노다. 여자들에 의해 그려지고 여자들에 의해 읽히는 순정 만화는 여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그린다.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야오이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플라워 오브 라이프>(서울문화사, 2005)에서 마지마군의 명쾌한 정의에 의하면 여자들은 공과 수의 그 미묘한 관계를 훔쳐보며 '싫어 싫어'를 외치는 수에 감정이입하고 음흉스럽게 미소지으며 슬금슬금 밀어붙이는 공의 늘씬한 쇄골에 열광하는 짓을 하고 있는 셈이다. 특이한 것은 백합물이 그다지 한국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 고전적 백화물 <마리아님이 보고계셔>나 <백조>이 '야한 것'의 총집결체인 보이즈 러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 또한 특이하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사실 야오이는 특이한 장르이다. 물론 게이물 작가로 이름 높은 이마 이치코는 좀더 그럴 듯한 '현실'을 기반으로 게이물을 만들지만 역시 현실 속의 동성애자들이 그런 삶을 살까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또 걸핏하면 강간, 쓰러뜨리기, 구타, 괴롭히기, 혹은 언제나 발정나있는 듯하게 묘사되는 대부분의 야오이물들은 사실 현실 속의 동성애자의 생활과는 동성과 사귄다는 사실 이외에는 하등 관계가 없다. 마치 현실에서 못생기고 검은 머리에 가슴도 없는 여주인공이 백만장자 초절정 인기 연예인과 결혼할 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야오이는 결국 뿌리부터 허구의 산물이며 이 속에서 여자들은 그녀들이 해보고 싶던 모든 것을 꿈꾼다. 특이한 것은 점점더 순정만화 시장에도 한국판 야오이의 열풍이 거세지고 있다는 셈이다.

 

야한 청춘들. 이영희의 <절정>

 이런 기대에 한껏 부흥한 작품이 바로 이영희의 <절정>이다. 이제까지 한국 순정만화계에는 은근슬쩍 야오이를 끼워넣거나, 멀게는 김영숙의 <갈채>나 이영애의 <열왕대전기>부터 최근에는 변미연의 <미스티>, 송채성의 <미스터 레인보우>와 같은 게이물을 다룬 작품이 있었지만, 이렇게 덮어놓고 '야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 야오이는 이영희의 <절정>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쾌락을 즐기라.   

 야오이의 백미는 탄탄한 스토리 구성도 아니요, 어려운 작품성도 아니다. 단지 금단의 사랑이 주는 두근두근한 쾌락을 훔쳐보는 관음증만이 필요한 전부이다. 이를 위해 그림이 예쁘면 더욱 눈이 즐겁다. 전작 <넌 너무 멋져>로 화려한 그림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이영희가 이번에는 보이즈 러브에 도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림을 즐기는 독자라면 흥분할만하다. 사실 전작의 주인공 난우와 모토는 성별만을 살짝 바꾸었다 뿐이지 비슷하다. 남자 주인공들은 여전히 검은 머리에 냉미남형인 새쯔이다.

모토와 새쯔가 한 회마다 이유없이 포개지는 므흣한 설정, 귀여운 모토와 이를 공략하는 저돌적인 새쯔의 플레이는 전형적 강공과 꽃수의 사랑이다. 모토의 앙탈과 이런 모토를 바라보며 괴로워하는 새쯔의 마음에 애달파하시라. 새로 등장한 살짝 강동원 삘이 나는 이탄 역시 아주 마음에 드는 캐릭터 (그가 등장하면 검은 깃털이 날린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모토의 과거가 궁금하다. 갈수록 강도 높은 노출을 보여주고 있는 절정은 다음 권을 기다리는 재미가 있다. 

자, 우리 사실적 디테일은 따지지 말자. 왜 매회 모토와 새쯔는 포개져야만 하고, 잠든 모토에게 새쯔가 갑자기 뽀뽀를 하고는 여자에게 달려가버리는지, 그런 건 묻지 말고. 다만 즐기자. 그런 게 바로 야오이를 제대로 즐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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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13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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