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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 휴머니스트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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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
로널드 보그 지음, 이정우 옮김 / 중원문화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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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철학사상- 갈무리신서 13
마이클 하트 지음, 이성민 옮김 / 갈무리 / 199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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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들뢰즈: 철학과 영화-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의 이행
쉬잔 엠 드 라코트 지음, 이지영 옮김 / 열화당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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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띠 오이디푸스-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
질 들뢰즈 외 지음, 최명관 옮김 / 민음사 / 2000년 3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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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
질 들뢰즈 지음, 허경 옮김 / 동문선 / 2003년 6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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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저키즘- 제2판
질 들뢰즈 지음, 이강훈 옮김 / 인간사랑 / 2007년 4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3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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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비판철학
질 들뢰즈 지음, 서동욱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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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리라이팅 클래식 4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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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라는 개념을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용어와 혼동하지 마십시오. 커뮤터케이션은 어원 그대로 어떤 공적인 (communis) 영역의 권위를 전제하는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개념은 자유로운 혹은 야생적인 개체를 주어진 공동체의 규칙으로 몰아넣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달리 소통은 글자 그대로 '막힌 것을 터 버린다'는 뜻의 소(疏)와 '새로운 연결'을 뜻하는 통(通)의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이 개념은 기존의 고정된 삶의 형식을 극복하여 새로운 연결과 연대를 모색하려는 의지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의미를 갖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달리 소통이란 개념이 혁명적인 뉘앙스를 갖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 p6

 

흔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장자는 이런 주장에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진리를 창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종교, 국가, 자본 등 초월적 가치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완강히 거부하고, 우리의 삶을 되찾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 p7

 

여행에서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장소가 있듯이, 철학에도 삶을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어떤 공간이 존재한다. 칸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우리는 이러한 정신적 공간을 '초월론적 자리'(transcendental position)라고 명명할 수 있다. 여기서 초월론적 자리란 삶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지만, 여전히 임시적이고 유동적인 성격을 갖는 정신적 지평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임시적 지평이, 삶을 조망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지평으로 간주될 때, 이제 '초월론적 자리'는 곧 '초월적 자리'(transcendent position)로 변질되고 만다. - p26

 

타자와의 마주침은 타자가 속한 시스템과 내가 속한 시스템 사이, 혹은 양자 간의 차이에 직면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p60

 

어느 경우든 타자의 발견이란 사건은, 나 자신이 나만의 규칙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과 동시적인 사태이다. - p68

 

국가와 종교는 모두 초월적인 목적이라는 달콤한 미끼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유혹하며 지배하려고 든다. - p78

 

기존의 삶의 규칙이 지닌 문제들은 오직 새로운 삶의 규칙을 통해서만 대상화되고 해소될 수 있는 법이다. - p79

 

유아론이란 타자가 배제된 담론 일반을 가리킨다. 표면적으로 보았을 때 유아론적 사유에서도 타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아론 속에서의 타자란 진정한 타자, 즉 타자성을 가진 우연한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때 타자란 주체의 생각 속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하나의 관조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 p124

 

자신이 옳다는 판단을 중지해야만 우리는 타자의 움직임에 맞게 자신을 조율하는 섬세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 p143

 

그런데 이런 옳고 그름의 특정한 사태는 타자의 결에 따라 언제든 민감히 반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를 필요로 한다. 장자는 이런 마음이 자신의 판단을 비워 두는 것, 즉 부단한 판단중지의 사태로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두 가지 원리, 즉 타자의 시비 판단에 따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마음을 비워 두는 것은 상호 불가결한 원리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장자는 두 가지 원리의 병행인 '양행'을 강조했던 것이다. - p144

 

내가 판단중지의 상황이라고 풀이한 천균의 상태는, 단순히 고요한 상태의 마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상태는 빠르게 회전하는 물레의 모습처럼 강렬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역동성에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맡긴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타자의 타자성에 부합될 때까지 부단한 판단중지를 수행하는 주체의 끈덕진 의지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판단중지의 상태에서만 타자에 부합되는 새로운 제안이나 행동을 마련할 수 있다. - p145

 

가령 라캉이었다면 장자가 천균과 도추의 개념을 통해서 묘사하고 있는 판단중지의 상태를 '실재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들』에서 라캉은 '실재적인 상태'를 'PΛ-P', 즉 모순의 상태라고 규정한 적이 있다. 이것은 바로 장자가 이야기한 것처럼 "저것과 이것이 자신의 짝을 잃은" 상태, 즉 저것인지 이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는 판단중지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라캉도 '상징적인 것'이 지배하는 꿈의 세계를 벗어나 현실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일종의 판단중지와도 같은 상태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던 것이다. - p148

 

아이는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고, 새로운 출발, 놀이,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 최초의 움직임이며, 성스러운 긍정이 아니던가. 그렇다! 창조라는 유희를 위해선, 형제들이여, 성스러운 긍정이 필요하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계를 상실했던 자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되찾는다. - 니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149

 

이제 우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장자의 양행이란 것이 결국 사자의 원리인 동시에 아이의 원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양행은 사자처럼 기존의 모든 사유를 판단중지하고, 아이처럼 언제든 타자와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천균'과 '도추' 개념에서 드러난 망각과 회전의 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순진무구함과 망각" 그리고 "스스로 도는 수레바퀴"라는 니체의 어린아이 이미지를 보게 된 것도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 p150

 

단독자는 기존에 자신이 고집한 특정한 공동체의 규칙을 타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는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 p156

 

정화열이 말한 의미의 '존재'(existence)는 관례대로 '실존'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그의 지적처럼 어원 그대로의 실존의 "바깥"(ex)을 향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존의 중심은 그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타자에,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주체와 타자 사이에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그가 말한 '탈중심'의 의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탈중심적 존재'야말로 장자가 강조한 단독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단독자도 외부로 향해 있는 주체, 혹은 타자와 마주치는 주체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 p156

 

망각이란 항상 "비움"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이다. 이런 공백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타자와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공백은 타자를 담을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157

 

'심재'란 글자 그대로 '마음을 재계한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결국 심재는 마음의 작용을 금욕적으로 절제하는, 즉 마음의 비움이나 망각을 가리키는 수양론의 일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장자도 '비움'이란 바로 '마음의 재계', 즉 '심재'라고 직접 설명했던 것이다. - p183

 

만약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는 아비투스가 자신이나 타자의 삶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꿈이라고 조롱받을 이유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기존의 모든 공동체가 자신이나 타자의 삶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 p190

 

장자만큼은 도란 미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간 뒤에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명히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의 도는 발견되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211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에는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氣)로 들어라." 이미 우리는 기로 듣는다는 것이 타자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미세한 소리들을 민감하게 지각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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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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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모험은 위에서 말한 핵 단위의 패턴, 다시 말하면, 세계로부터의 분리, 힘의 원천에 대한 통찰, 그리고 황홀한 귀향의 패턴으로 이루어진다. - p50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적인 결혼은 영웅의 삶 전체가 완성되었음을 상징한다. 즉 여성이 곧 삶인데, 영웅은 이 삶을 알게 되었고, 이를 완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웅의 궁극적인 체험과 행위의 예비 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시련은, 자각의 위기를 상징한다. 이 자각의 위기를 통해 영웅의 의식은 증폭되고, 어머니 상의 파괴자, 즉 천생연분의 신부를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시련을 받는 당사자는 자기와 아버지가 동일하다는 사실과, 자기가 곧 아버지의 입장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159

 

어느 경우든 유아기의 부모 상과 선악에 대한 관념이 억압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재생한 우리에겐 욕망도 공포도 없다. 우리 자체가 곧 욕망과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 p212

 

신화의 대립적인 모험이란 여신과의 만남, 그리고 아버지와의 화해다. - p213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 아니다. - p248

 

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의 다른 부분과 만났음을 상기시키는 신비스러운 반지는 영웅이 그곳에 간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립 반 윙클에겐 이런 반지가 없었다. 이 반지는 또, 일상의 현실은 저승의 현실을 배반하지 못한다는, 생시의 믿음을 재확인시켜 준다. 이 반지는, 두 세계를 통합하려는 영웅의 희망을 상징한다. - p294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즉 <자기 화해 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말하자면, 익명의 인간,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법 Law은 그 안에서 거침새가 없다. - p306

 

감히 소명에 응하여, 우리의 운명을 화해시켜야 하는 존재의 거처를 찾아내는 현대적 인간인 현대의 영웅은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만심과 공포와 자기 합리화된 탐욕과, 신성의 이름으로 용서되는 오해의 허물을 스스로 벗어던지기를 기다릴 수도 없고, 기다려서도 안 된다. 니체는 <그날이 도래한 듯이 살라>고 하고 있다. 아니 사회를 지키고 구원하여야 할 사람이 바로 창조적 영웅이다. 그리하여 우리 각자는 그 영웅의 족속이 대승을 거두는 그 빛나는 순간이 아니라, 그가 개인적으로 절망을 느끼고 침묵을 지킬 때 그가 겪는 모진 시련(구세주의 십자가를 지는 일)을 나누어 부담하는 것이다. - p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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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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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알랭 드 보통, 2000, 청미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자신 외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초한 달콤씁쓸하고 사적인 고통이다. 그러나 사랑이 보답을 받는 순간 상처를 받는다는 수동적 태도는 버려야 하며, 스스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책임을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 p74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강한 존재 - 신, 클럽, 그녀/그 - 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준다면(신이 우리 기도에 응답한다면, 클럽 회원권을 보내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 p76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둘 다 똑같은 의존적 요구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애초에 우리는 그 요구 때문에 상대에게 끌렸다. 우리 내부에 부족한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상대에게 비슷한 부족상태가 존재하는 것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답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우리 자신의 문제의 복제품만 발견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상대 역시 우상에 대한 요구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 역시 우리와 같은 무력감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업는 동시에 업히는 책임을 떠맡기 위해서는 신과 같은 존재에 대한 찬양과 숭배 뒤에 숨고자 하는 어린아이 같은 수동성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 p80

 

클로이에게는 어려운 과제가 있었다. 나의 독립성을 위험에 빠뜨릴 만큼 연약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나의 연약성을 부인할 만큼 독립적이어서도 안 된다는 것. - p82

 

대부분의 관계에는 보통 마르크스주의적인 순간(사랑이 보답받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어떻게 헤치고 나아가느냐 하는 것은 자기 사랑과 자기 혐오 사이의 균형에 달려 있다. 자기 혐오가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의 보답을 받게 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저런 핑계로) 자신에게 잘 맞지 않는다고 (자신의 쓸모 없는 면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잘 맞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자기 사랑이 우위를 차지하면, 사랑이 보답받게 된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수준이 낮다는 증거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증거임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 p84

 

아름다움에 대한 주관적 이론은 기분 좋게도 관찰자를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만들어버리므로. - p120

 

그것의 진정한 가치, 호기심이 덜한 사람이나 사랑이 덜한 사람에게는 당연히 의미 없어 보일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서 바로 연인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 p136

 

“너 또 길 잃은 고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네.”

전에는 아무도 내 표정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었지만, 클로이가 말하는 순간 갑자기 그 말이 그때까지 내가 느끼던 혼란스러운 슬픔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되면서, 내 우울도 조금은 덜어지는 듯했다. 나는 그 말 때문에, 내가 스스로 정리할 수 없었던 느낌을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 때문에, 그녀가 기꺼이 내 세계로 들어와 나 대신 그것을 객관화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강렬한 (그리고 어쩌면 균형이 잡히지 않은) 사랑을 느꼈다. 고아에게 고아라고 말해줌으로써 집으로 돌려보내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 p160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 p161

 

모든 삐치는 일의 밑바닥에는 그 즉시 이야기를 했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는 잘못이 놓여 있다. 그러나 상처를 받은 쪽에서는 그 일을 나중을 위해서, 좀더 고통스럽게 폭발시키기 위해서 쌓아둔다. 문제가 생긴 즉시 이야기했다면 풀렸을 일에 무게가 쌓이게 된다. 불쾌한 일이 있으면 그 즉시 화를 표현하는 것이 가장 너그러운 일이다. 그렇게 하면 상대는 죄책감을 키울 필요도 없고, 전투를 중단해달라고 삐친 사람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클로이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고 싶지 않았다. -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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