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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들에서 자란 어린시절, 세밀화 작업과 곤충에 대한 이야기까지, 권혁도 작가를 길벗어린이가 만나보았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 들어요.
내가 어린 시절 마음으로 돌아가서 궁금한 것 관찰하고 애벌레도 길러보고
그림일기 그리듯이 관찰 기록하는 것이 내 그림책 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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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가 이제 막 출간된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나비 애벌레 그림책을 그리는 중입니다. 사람들은 애벌레를 무척 징그러워하지요. 하지만 애벌레는 징그러운 것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징그러운 척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징그럽게 보이는 것이 나비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뭔가 시작하시면 오랫동안 끈기 있게 하시는 편이시죠?
(창가의 단풍나무를 가리키며)저 나무가 21년 됐어요. 딸아이랑 동갑이죠. 전에 살던 집 근처에서 단풍나무 떡잎을 화분에 옮겨 키우기 시작한 게 20년이 넘었네요. 제 성격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포기가 잘 안돼요.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생각이 어디에선가 숨어 있다가 틈만 나면 불쑥불쑥 튀어 나와요. 끈질긴 면이 있지만 나는 미련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보다 더 미련한 사람은 길벗어린이 사장님 아닐까요? 나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사장님은 책 한 권을 5년이나 기다리기만 했으니 나보다 더 미련한 사람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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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려오신 세밀화 원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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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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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림 그리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에게 유년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언제부터라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그때는 시골이라 미술학원도 없었고 미술교과서가 유일한 선생님이었어요. 방학이면 미술책을 보고 이것저것 그려보고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 시골집 근처에 찰흙이 나오는 골짜기가 있었는데, 가져간 호미로 찰흙을 캐서 해가 질 무렵까지 바위에 걸터앉아 동물도 만들고 그릇도 만들며 놀았어요. 찰흙으로 만든 것을 아궁이에 숯불로 구워 보기도 하고 깡통 속에 버드나무 가지를 넣고 구워서 목탄도 만들어 봤어요. 가장 두려운 경쟁자는 뭔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요.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누구도 말릴 수 없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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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하셨던 일부 곤충들과 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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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세심하게 보관되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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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자연 속에서 자라셨군요?
네. 집 앞 개울을 따라서 산골짜기로 들어가면 조그만 폭포가 있었는데, 거기서 목욕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놀았어요. 그곳에서 어느 날, 나무 밑에 새똥이 수북이 떨어져 있는 것을 봤어요. 위에 새둥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가만히 살펴보니 밤나무 가지에 둥지가 있었어요. 잽싸게 나무에 올라가 보니 부화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매의 새끼가 3마리 있었어요. 솜뭉치처럼 하얀 솜털에 노란 눈의 새까만 눈동자와 꼬부라진 부리의 콧구멍 위에 노란딱지가 너무도 예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이도 나쁜 일이지만, 그때는 키워보고 싶다는 욕심에 새끼들을 훔쳐왔어요. 망태기 안에 담았던 소꼴을 다 쏟아버리고 매 새끼 3마리를 담아 오는데, 어미가 날아와서 내 머리를 할퀴고……. 숨어서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집으로 왔어요. 그때는 여름 방학이면 새를 키우는 것이 친구들 사이에 자랑거리였어요. 그 때 아주 인기 좋았던 새가 청호반새였어요. 여름 방학이면 우리 동네에 어김없이 찾아오던 여름철새였는데, 흙이 무너진 벼랑에 구멍을 뚫고 집을 지어요. 물총새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까치보다 조금 작고 붉고 큰 부리와 몸 색깔이 무척 화려해서 한번만보면 누구나 반하는 새지요. 까르르르륵 까르르르륵 하면서 날아가는 것을 보면 어느 골짜기 어디쯤에 집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가보면 틀림없어요. 그렇게 데려와서 기르다보면 여름방학이 다 지나가요. 내 기억에 매는 여름방학이 끝나고도 2주정도 더 키워서 날려 보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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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우며 관찰한 흰줄나비 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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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을 갈아먹으며 점차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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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완연한 모습을 갖추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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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나비가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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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집에서 기르시면 가족 분들 반응은 어떠세요?
무섭다고 무척 싫어하죠.(웃음) 한번은 겨울에 사마귀 알집을 가져와 책상 서랍에 두었다가 다음해 5월 아침에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애벌레들이 깨어나서 책상과 창문과 천정에 새까맣게 붙어 있었어요. 한 마리 한 마리는 너무 귀엽고 예쁜데 너무 많은 애벌레가 방안에 가득하니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어요. 식구들이 보면 놀랄까봐 조용히 문을 닫고 대나무 핀셋으로 큰 유리병에 주워 담았어요. 잡으려하면 애벌레는 펄쩍 뛰어서 다리를 쭉 뻗고 낙하를 해요. 몸이 가벼우니 꼭 낙하산 타고 내려오는 것처럼 천정에서 침대와 책꽂이 위로 아무구석으로나 떨어졌어요. 한참동안 주워 담으며 세어보았더니 260마리 정도 되더군요. 보통 180마리에서 200마리 정도라고 하는 데 그 알집은 무척 크고 튼튼해 보였어요.《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에 나오는 사마귀 알집이 바로 그 알집이지요. 사마귀 한 살이를 관찰하기 위해 3마리는 남겨두고 나머지는 야산의 풀밭에 놔줬죠. 그 뒤에도 며칠 동안 책꽂이 뒤에서 한 마리가 쏙, 서랍에서 한 마리 쏙 나오니까 아이들이 알아서 그 방에 들어가지 않더군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무서워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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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보는 곤충의 생활》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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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세밀화, 그리고 신작 《세밀화로 보는 꽃과 나비》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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