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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특별판)
로맹 가리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0월
평점 :
품절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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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능을 잃은지 한참 지난 책상을 쳐다보니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책들이 층층이 쌓여있었어요. 그래서 누가 누가 쌓여있나 들여다보려면 고개를 옆으로 기우뚱하고선 책등을 살펴봐야 했지요. 책 빌딩들은 서로 다른 높낮이로 올라서 있었는데 그 중 낮은 곳에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가 홀로 서 있었지요.
사실 몇일을 재어보았어요. 읽기를 망설이며 힐끔힐끔거리며 지나쳤어요. 고민이 되더군요. 왠지 모를 무거움에 선뜻 책으로 손이 가지를 않았어요. 요사이 분명 책을 읽는 게 부담스러워지긴 했으니까요. 시간도 없을 뿐더러 책을 읽어 무얼하려하나 싶기도 했으니까요. 어쨎든 중요한건 몇일을 재어보았던 시간이 오히려 좋게 작용했는지도 몰라요. 덕분에 책에 스며들듯 잘 읽었으니까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을때면 짧막한 이야기를 전해 듣죠. 주로 대강의 줄거리를 몇분내에 전해듣는데 말 그대로 줄거리에 지나지 않아요. 이것도 단편이라면 단편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티비나 극장에서 이야기를 볼때면 대부분 기다란 이야기를 전해 들어요. 흔히 말하는 장편이죠. 장편 소설이나 영화같은 긴 이야기들은 시작과 끝이 분명해요. 스스로 문을 열어 마무리까지 지어주죠. 얼마나 손 쉬워요. 우리는 앉아서 가만히 보기만 하거나 읽기만 하면 되니까요. 단편은 좀 달라요. 앉아서 이야기를 즐기기에 너무 빨리 끝난다는 단점이 있어요. 어떤 경우에는 뭔가 시작하려다 끝나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로맹 가리'라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죠. '로맹 가리'의 단편들은 짧은 이야기가 어떻게 서사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거 같아요. 한 두페이지의 단편일지언정 마치 한 두권의 장편을 읽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혹은 두 세시간짜리 긴 영화를 보는 듯 해요.
책표지도 좋아요. 책 제목과 어울리게 페루 해안의 상공에서 떨어지는 새들로 보이면서 혹은 허공에 흩뿌려 놓은 종이 조각들 같기도 하니까요. 종이 이미지는 책 안의 단편이 시작하는 제목 페이지에서 더 좋은 느낌을 주네요.
이야기는 두 말 할 필요도 없어요. 각각의 단편이 낱권으로 나왔어도 모두 구입할만큼의 진한 매력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