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 씨, 홀로 죽다 매그레 시리즈 2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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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레씨, 홀로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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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깃을 세운 트렌치코트를 걸친 다부진 체격의 남자. 신중하게 다문 입에는 늘 파이프 담배가 꽂혀있다. 비가 오는 날 어둡고 더러운 뒷골목을 배회하면서도 우산 따위는 쓰지 않는다. 남자의 머리 위엔 중절모가 삐딱하게 얹혀있다.]

 어디서 많이 본듯 친숙한 모습이죠? 형사 콜롬보 아저씨부터 60년대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 주인공들 같은 이 이미지는 매그레가 그 원조랍니다.

 

 매그레는 파리 치안국의 기동 수사대 반장입니다. 이야기 처음에 수상한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때마침 다른 수사국 국장, 부국장은 출타 중이거나 다른 업무로 바빠서 매그레는 반장님 중에서도 최고참이지만 사건을 온전히 떠맡게 됩니다. 심지어 자잘한 조사도 부하를 시키지 않고 직접 합니다. 훌륭한 공무원이십니다.

 이렇게 성실한 남자, 매그레 반장은 피해자 에밀 갈레의 사건을 조사하기 전에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피해자의 집을 방문합니다. 거기서 매그레는 찌는 듯이 무더운 날씨에 머리칼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실크 드레스로 무장을 한 딱딱하고 불쾌한 갈레 부인과 맞닥뜨립니다. 그런 여자에게 매그레 반장은 당신 이제 과부요, 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그러나 매그레는 앞서 주지했다시피 직업적으로 매우 성실한 부류이기 때문에 갈레 부인에게 어렵지 않게 나쁜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런 매그레조차 당황하게 만든 건 사건 피해자의 사진입니다. 피해자 갈레씨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을 잠깐 살펴볼까요?

 [숱 많은 머리, 희끗희끗한 턱수염, 어깨 쪽이 어색하게 재단된 모닝코트를 입고 있는 남자가 사진의 주인공이었다. ...... 또 다른 특징은 거의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얼굴을 반으로 가르는 선, 그것이 사내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얇은 입술이라는 사실을 매그레가 깨닫기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 매그레의 시선은 종종 그 초상화 쪽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것이 바로 그가 죽은 이와 가진 최초의 접촉이었다.]

 매그레는 사건을 조사해 나가면서도 이 초상화 속 갈레씨의 모습을 계속해서 떠올리는데 그는 왜 갈레씨의 모습이 그토록 잊히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건의 비밀이 모두 풀릴 때서야 비로써 매그레는 그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매그레는 육감적으로 갈레씨가 불쌍한 사람임을, 한마디로 잘못 태어난 사람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하지만 한편으론 그들을 보는 게 두렵습니다. 행여 그들의 불행이 나에게 옮겨올까 몸서리 처집니다. 갈레씨는 어디에서도 안식할 수 없이 여기저기 떠돌아 다녀야 했으며,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만 약간의 평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무시하고 몰아붙이는 처가 식구들, 정부와 짜고 아버지를 등쳐먹는 아들, 고고하고 딱딱하기만 아내, 그런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사랑하는 그래서 더 불행한 갈레씨. 허울뿐인 과거의 영광, 사기들, 형편에 맞지 않는 교육, 그로 인해 더욱 의기소침해진, 잘못 재단된 형편없는 모닝코트에 자기의 육체를 억지로 쑤셔 넣어야 했던 인생에 단 한 점의 행운도 없었던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의 운명은 냉정하고 철저하게 그를 몰아세웁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매그레 반장은 모든 비밀과 음모를 파헤치지만 사건을 미제로 남겨두기로 합니다. 그건 갈레씨가 죽음으로 얻고자 했던 단 하나의 행운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목도 갈레씨 홀로 죽다, 이고 리뷰도 매그레와 갈레씨를 중심으로 썼지만 사실 소설 속에서 갈레씨는 당연하게도 액션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갈레씨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기껏해야 초반에 총을 맞아 얼굴이 반쯤 떨어져 나간 모습으로 마룻바닥에 얌전히 누워있어야 할 겁니다. 매그레 반장이 사건을 풀어갈 때도 회상이나 사건의 재구성을 위해 갈레씨가 직접 등장하는 일은 없습니다. 갈레씨를 둘러싼 추악한 인물들의 비밀과 위선을 통해 갈레씨의 상황을 짐작하게 할 뿐이지요. 소설의 구성 자체에서 세상에 외면당한, 세상과 돌아앉은 갈레씨의 모습이 보이지요? 그러니까 갈레씨는 소설에서도 왕따를 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겉으론 그래도 이야기에는 인물의 비중이라는 게 있죠. 직접 등장하지 않아도 우리의 뇌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 캐릭터도 있고, 분량은 많지만 그 캐릭터가 거기 나왔나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죠. 갈레씨는 분명 전자에 속할 것입니다. 소설의 구성에서 조차 왕따를 당해도 독자의 기억엔 오래 남을 캐릭터죠. 그러나 그것이 갈레씨를 흐뭇하게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갈레씨는 홀로 조그만 보트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을 때에만 진정한 행복을 맛봤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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