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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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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차 세계 대전 로버트 카파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영혼은 카메라에 담습니다. 아마도 카파가 그 장면을 뷰파인더가 아닌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면 카파의 사진을 보고 중고 카메라 가게를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좀 적었겠죠. 사실 우리 집 앞 거리에는 총을 맨 병사도
낮은 포복으로 침투하는 침투조도 없으니까요. 오로지 애먼 꽃 나비나 겨누는 아저씨들만 가끔 눈에 띄곤 합니다. 출.사. 나온
거지요.
어렸을 적 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카메라 하나로 시작된 벤의 사진도 아버지의 압력으로 결국 변호사의 넥타이가 되고 맙니다. 벤도 그냥 그렇고 그런 동호회 아저씨가 된거지요.
아버지의 원대로 벤은 변호사로서 괜찮은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적으로 탄탄하며 미래도 안정적이지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가정도 꾸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벤과 아내는 사이가 좋지 못합니다.
벤의 아내는 주부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 소설가이지요. 벤은 늘 아내를 응원하나, 아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자신의 욕망을 벤의 탓으로 돌리다가 기어코 사이가 멀어지고야 맙니다.
나
쁜 상황은 최악의 사건으로 이어져 벤은 아내의 내연남이자 바로 길 건너에 사는 사진가 게리를 의도치 않게 죽이게 됩니다. 사실
벤은 게리의 시건방진 태도와 허풍이 싫으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그에게 질투를 느끼고 있었어요. 게리는 벤이 그토록 갈망하던
사진가이니까요. 꼴보기 싫은 마음이야 굴뚝같았겠지만 정말 없애 버릴 생각은 없었어요. 벤은 극악무도한 악당이 아닌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깐 말이에요.
이처럼 벤은 우연한 계기에 우연한 실수와 우연한 두뇌회전으로 지금의 자신을 버리고, 그토록 갈망하던 사진가라는 욕망의 옷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훔쳐 입은 옷이 편할 리가 있었을까요?!
소설 내내 거짓을 꾸며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벤은 모든 상황을 자기 뜻대로 만들어 가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로 끌려가는 꼴이 되고 맙니다.
벤이 사진을 통해 바라는 건 무엇이었을까요? 명예? 그것도 좋았을 거예요. 돈? 앞날이 창창한 변호사란 직업을 봤을 때 그건 아닌 거 같네요. 그럼 꿈?
이
이야기 속에서 벤은 자신이 되고자 하는 어떠한 모습에도 가까이 다가 간 적이 없지요. 벤 뿐만 아니라 벤이 만난 다른 인물들도
그렇습니다. 벤은 게리로 살면서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고, 아내는 소설가로서 성공하지 못해 히스테리만 가득해졌으며, 게리는 허풍만
늘어뜨리다 벤에게 죽임을 당했지요. 중간중간에 나오는 기자나 편집장 등등의 꿈도 허망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벤이 만들어낸
사건으로 장미빛 인생을 바라지만 모두 다 허깨비처럼 사라져 버리지요.
벤에게 게리는 새로 그린 얼굴이에요. 벤에게는 픽션보다 구체적인 현실의 삶이 더 필요했을 거에요. 아이러니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픽션같은 일들이 많은 것 같지 않나요? 반면에 픽션은 생각보다 현실같지 않은 일들만 그리지요.
만약 이 모든 사건의 인물들이 실존한다면 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현실속에 매치시켜본다면 어떤 사진가랑 이미지가 어울릴까요? 아내는 어떤 작가랑 어울릴까? 편집장은? 기자는? 친구는?
누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