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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왕 6
김연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오후 폐간 이후에는 만화 잡지를 거의 보지 않은 편이고
그냥 한번 지지한 만화가의 작품 위주로 책을 골라 읽는 습관이 있고
최근의 순정만화계의 동향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라, (그보다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게 맞다.)
이 작가의 이름에 대해서 들어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언뜻 본 그림체에서 가벼운 틴에이지물을 연상해버린 탓도 있고,
정작 잡지에서 한 화를 봤을때는 나레이션이 너무 강해서 섣불리 감정이입했다가는 내 심장에 무리가 올 것 같아(...) 당분간 미루기로 했었지만,
감기 걸려서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틈을 타서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건방진(..슬레이어즈 정도??)여주인공에다가
귀여운 학원+판타지물이라서, 요즘 특히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는 게 수긍이 되었다.
그렇지만 그 이유들로, 그리고 캐릭터들이 귀엽고 멋있다는것만이 인기의 비결은 아니겠지.
처음에 읽기 시작했을때는 눈치를 잘 채지 못했지만,
이 만화는 예정된 비극(?)으로, 예정된 결말은 독자에게도 똑같이 던져져있었던 것이었다.
(왜 눈치를 못챘나, 둔하긴!ㅜ.ㅜ)
앞부분에서는 이런저런 주인공의 사건사고들로 웃음과 재미를 엮어가며 전개하고 있지만,
중반에 진입하면서 예정된 결말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선을(, 그리고 독자의 감정이입정도를)
고조시킨다. 독자의 입장에서, 주인공들이 꼭 100%동의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김연주 작가의 장기라고 생각되는
(다른 작품들을 읽어본 적은 없으니까, 일단.)
끝까지 밀어붙이는 서정적인 나레이션은 이 부분에 와서야 극강의 힘을 발휘한다.
말머리만 동동 떠다니는 게 아니라,
나레이션에 감정과 상념이 흘러넘쳐, 보석처럼 반짝반짝거린다.
진실성이 넘치는 감정묘사때문에, 스토리도 빛을 발한다.
파편처럼 떠다니던 단서들이 합쳐져 전체 이야기가 보일때는 감동적이었다.
(7권 내용이 너무 궁금해져버렸다! 하~>ㅂ<)
아름답고 투명한 선들과 명료한 감정과 말로 이루어진 이 또렷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바로 이 작가가 표현하는 '월드'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특히나 순정만화 작가로서는 보물과 같은 재능.
그렇지만 그 또렷하고 아름다운 세상은,
한 곳으로만 쏠려있어서 다른 곳에는 시선을 떨굴수도 없는 간절한 마음은,
<진홍색 의자>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아직 어린 사람들의 것들이라고 생각되어,
그 한결같은 곧은 마음을 가지고 전력으로 돌진하는 소녀, 쥰이 안쓰러워 보일 정도이다.
(그녀의 행동이 다 그러한 한결같은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렇게 아름답고 투명한 유리구슬같은 세계는 절대로 변질될 수 없다.
한번에 깨어져 부서져버리는 수 밖에.
비극이되, 영원한 마음만은 해피엔딩으로 남는 수밖에.
아마도 살아남아서 계속 성장하고 늙어가는 인물들에게만 이건 비극이 되겠지.
이게 내가 생각하는 이 이야기의 고결한 결말.
(아니라도 좋고.^^)
이젠 죽 곧은 마음보다는 한 순간의 마음의 조각이
보다 현실에 가까운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 이야기가 꼭 내 취향의 이야기라고 말하긴 힘들것 같다.
그렇지만
소재가 어떻든,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어떻든,
반짝이는 것은 반짝이는 것.
그것을 다루는 자의 내공이 대단하기까지 하다면,
그 작품에서는 눈을 떼기 힘들다.
"소녀왕"에서는 당분간 눈을 떼기 힘들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