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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벗겨줘 - 빨간 미니스커트와 뱀피 부츠 그리고 노팬티 속에 숨은 당신의 욕망
까뜨린느 쥬베르 외 지음, 이승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지하철에서 주로 독서를 즐기는 나로서는 결백(?)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 동안 꽤나 사람들의 의심 어린 시선을 느끼고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도색적인 표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를 벗겨줘"라는 제목 자체에서 느껴지는 선정적임은 이 책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떤 묘한(?) 상상하게 만드는 선입견이 발동했을 테니 말이다. (오늘도 전철에서 서서 읽고 있는 동안 내내 나를 흘끗흘끗 올려다보는 아주머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수록 난 더욱 당당히 책 표지를 펼친다. 왜? 난 결백하니까!!! ㅋㅋ)
이 책은 사람이 어떤 옷을 선호하고 입으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내면에 숨겨진 트라우마나 강박관념, 혹은 욕구 등을 분석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심리학이라고 분류하기에는 다소 가벼운 에세이적 느낌이 드는바,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아닌, 일반인들의 대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가까운 표현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나를 벗겨줘"란 표현을 "내 안에 나도 알지 못하는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들이 어떻게 겉모습으로 드러나는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달라"는 표현이라는...(굳이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는 거겠지만서도 말이다.)
총 19개의 꼭지로 구성된 이 책은 각 꼭지별로 마치 특정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에피소드들을 일단 이야기하고, 그다음 여러 가지 패션 취향을 통해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잠재적 욕구와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앞부분에는 대개 어린 시절 부모님이나 살아온 환경으로 인해 생기고, 강하게 각인된 것들이 자라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주며, 뒤로 갈수록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통해 알게 되고 분출하고 싶은 개인적 욕구들에 주력한다.
각 꼭지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강하게 느꼈던 것은, 사람마다 어릴 때 부모님이(특히 어머니)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대단한가,였다. 부모님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듣고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그것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받아들이게 되어 있으며, 대개 극단적이고 소모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으로 드러내는 경우, 아무래도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14화에 등장하는 쇼핑중독에 걸린 셀린의 경우 "어린 시절 엄마와 가진 첫 번째 사회적 관계가 내적 안정감을 갖도록 하는 물건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p156)"에 그것이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작용하여 잃어버린 대상을 회복하려는 듯 조금만 불안하거나 외로워지면 제대로 물건을 따져보지도 않고 미친 듯이 물건을 사대는 쇼핑 중독을 보인다. 2화에 등장하는 "나"는 화려하고 과하게 섹시한 차림의 엄마를 보고 자라며 늘 사람들에게 이목의 대상이 되는 엄마가 예쁘고 자랑스럽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자신은 그런 모습으로 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강렬히 사로잡힌다.
개인의 욕구와 같은 경우 서로 다른 욕구와 취향으로 인해 순수한 의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나 위협을 주는 것처럼 보여 멀어질 수도 있다는 11화 "선물"이나 억압된 감정을 분출하고 싶은 욕구를 표출하고자 노팬트를 하게 된다는 내용의 9화도 기억에 남고, 또 다른 사람보다 더 잘나 보이고 싶고, 나를 더 아름답게 꾸미고 싶고, 사랑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표현을 하고 싶어서 그런 옷을 선택하게 된다는 등등의 여러 에피소드들도 나름 인상에 남는다.
확실히 사람들은 겉모습을 통해 사람을 판단하게 마련이고,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옷을 선택하고 그렇게 입는다.(머리모양이나 화장, 장신구 등도 여기에 다 포함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어떤 형태로 표현되든지간에, 어떤 차림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조심스러워져야겠다 싶었던 것은,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그 아이가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적어도 부모로서 자식에게 트라우마가 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나름의 인격적 수양을 해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다는... 이게 뭐... 그런 결론이라면 결론?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