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기술
제니스 A.스프링 지음, 양은모 옮김 / 메가트렌드(문이당)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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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우리 민족을 일컬어 "한의 민족"이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 속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해코지를 당하거나, 그 어떤 억압을 당할지라도, 참고 또 참고,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살아온 탓에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그래 쌓이는 게 "한"이란 소리 아닌가 싶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하고, 조금 과장되게는 화가 나기도 했다. 속에 쌓이는 게 있다고 그때마다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내 속 시원해질 때까지 내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까지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부당하게 당하는 불이익(이건 너무 얌전한 표현 같은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다... 으으으) 앞에 그저 순응하고 인내만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다.

물론 누구를 용서할 일 자체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크든 작든 간에 우리는 누군가와 갈등을 겪게 되고, 상처를 주거나 받는 일을 겪는다. 이런 일과 맞딱뜨렸을 때, 이제까지 우리가 배워 온 도덕적 잣대는(굳이 기독교관까지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다른 사람이 내게 피해를 주더라도 우선은 먼저 참고, 내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말한다. 또한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도록 종용했다.

기독교의 윤리는 이보다 더하긴 하다. 상대가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어주고, 잘못한 사람을 끝까지 용서할 줄 알아야 한다고 끊임없이 쇄뇌한다. 그리고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너무나 쉽게 몰고 간다. 그러나, 정작 그게 어디 쉽던가. 겉으로는 참는 듯, 용서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속에 "한"과 "화"가 무한대로 쌓이지 않던가. 실제로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배워 왔던 "용서"의 문제에 있어, 도덕만큼 우리 자신은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용서의 기술>은 그런 의미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이 "용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태까지 너무나 당연시 여겨 왔던 용서에 대해 실질적인 부분들을 꼬집고, 겉으로는 용서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쌓아두눈 "거짓 용서"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속으로 한을 쌓아두지 않도록, 진정으로 용서하는 방법과 상대방에게 용서를 받는 방법 등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 준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인격이나 성품이 보다 높은 경지에 올라 스스로 '내적 치유'를 해나가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런 경지에까지 오르는 사람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과 대안이 필요하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용서의 기술"은 이러한 실질적인 '내적 치유'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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