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 하자!"

"싫어"


동정 없는 세상은 시작부터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뭘 한번 하자는 건지. 뭐가 싫다는 건지.

"동정"이라는 말부터도 이미 童貞同情이라는 두 개의 의미를 떠올리게 하니,

시작이라고 별의별 생각 다하게 만드는 거야 뭐 당연지사.


수능시험과 기말고사까지 모두 마치고 성적이 나오기 전까지 12년의 기나긴 학창생활에서

처음 맞게 되는 자유로운 시간을 맞게 된 주인공 준호.

그에게 목표는 오로지 총각 딱지를 떼는 것.

친구 경식의 말처럼 섹스를 해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말을 미친놈 지껄임인 듯 대충 흘겨도

정작 24시간 내내 준호가 생각하는 것은 여자친구 서영과 어떻게든 섹스를 해보는 것이다.


뭐, 어른이라는 말은 "어루다"라는 옛말과 "사람"을 의미하는 "이"가 합해진 말이며

여기서 "어루다"는 섹스를 한다는 의미라는 것

그러니 섹스를 해봤고, 또 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이며, 이것은 아이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른들만의 특권이자 성역인지라

(이거 다 <아내가 결혼했다>에 나오는 말이다. 쩝)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섹스를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어불성설은 아니겠으나

<동정 없는 세상>이 말하는 초점은 이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성장통을 겪듯,

포르노에 나오는 섹스만 상상하며 환상적인 황홀경을 누리고 싶은

욕구 충천함이 중심이지 않을까.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압박과 억눌림 속에 이제 벗어날 수 있는

이팔청춘 춘향이와 이몽룡도 '사랑가' 부르며 별짓거리를 다하던 시절도 다 지나

이제 스무 살, 성인식을 코앞에 둔 청춘들에게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취미에 맞는 것도 없고, 게다가 대학이 되게 가고 싶은 것도 아닌 주인공에게

인생 절대절명의 미션은 아마도 동정을 떼어버리는 것이었을는지도 모른다.

동전 짤랑거리며 담배를 사는 것보다는 천원짜리 한방이면 폼나게 살 수 있는

남자다운 담배 88라이트를 고집하는 주인공은, 그러나 여전히 덜 자란 아이임이

작품 내내 새록새록 드러나 한없이 주인공이 귀엽게 느껴지고

이와 동시에 박현욱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작품 전체에 녹아 읽는 재미를 더하니

책을 손에 잡은 지 불과 2시간 못 미쳐 이 중편소설을 다 읽고야 말았다는.


<아내가 결혼했다>, <새는>, <동정 없는 세상> 식의 역순으로

박현욱이란 작가가 쓴 책을 어제부로 모조리 다 읽어버린 셈이 되었다.

몇 명 되지 않는 등장인물과 그리 다양하지 않은 에피소드들로 중장편을 재미있고

맛깔나게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박현욱 작가의 내공이자 힘이라는 생각을

새삼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이 외에도, 우리나라의 교육문제나, 사람들의 선입견,

포르노로 인해 잘못된 성개념을 갖게 되는 것들

인생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고 그렇게 살 수 있음 참 좋겠다는 생각들 등등

책을 읽는 그 짧은 순간에도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기도 했고.


마지막으로

한 권의 책을 읽으면 다음에 무슨 책을 읽을까,가 대개 결정나게 마련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이 아니라 영화를 봐야겠다 싶었다.

<마님 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비 오는 날의 도색화>

ㅋㅋㅋ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