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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잡사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에 담긴 은밀하고 사적인 15가지 스캔들
김태진 지음 / 오아시스 / 2024년 7월
평점 :
김태진님을 처음 만난 건 아트인문학 시리즈였다. 이탈리아와 파리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역사와 예술을 잘 엮어서 재미나게 술술 풀어주는 방식이 매력적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래서 이번 <명화잡사>가 나왔을 때도 얼른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픽! '명화잡사'는 말 그대로 명화에 관한 잡스럽고 사사로운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니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인 듯 생각되지만 명화에 담겨 후세대인들이 두고두고 감상할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라면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화가와 모델이 된 인물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물론 개인의 삶이라 하더라도 역사가 되어버린 일들도 있지만 말이다.
총 15가지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대표 그림만 15점이지 이야기에 상응하는 그림들은 좀 더 많이 수록되어있다. 어렵지 않아 술술 잘 읽힌다. 다만, 너무 유명하고 잘 알려진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라 새롭다는 느낌은 없었다. 게다가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를 읽고나니 뭔가 교양 수준의 읽을거리들이 시시해진 점도 있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아는 그림이라도, 아는 이야기라도, 미술과 역사의 조합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니까.
책의 구성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점이 느껴진다. 단순히 15가지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의 삶이 전체 역사의 큰 틀에서 어느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조명할 수 있도록 각 챕터의 마지막은 '인문학카페'라는 타이틀로 그림이 그려지던 시기의 역사를 간략하게 기술해 놓았다. 역사가 훅 치고 들어오면 아무리 사사로운 개인적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도 의미가 부여된다. 아무리 유명한 그림이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명화가 있기 마련인데, 역사라는 큰 흐름에서 보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해가 될 때가 있다. <명화잡사>는 바로 이런 포인트를 공략하도록 독자를 '넛지'한다.
화가의 마법이 시간을 붙드는 것이라면
관람자의 마법은 그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이다
<명화잡사> '읽기전에'에서 발췌
명언이다. 좋은 그림은 관람자의 시선을 붙들어 고정시킨다. 멈춘 시간에 사로잡힌 관람자는 그림의 앞, 뒤, 옆에는 뭐가 있을까 상상한다. 이 때 앞, 뒤, 옆은 물리적공간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지난 번 파리 오르세 미술관에 갔을 때 인상파 시대를 VR로 재현한 전시가 있었는데 정말 대단했다. VR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우리는 어느 새 18세기 파리 거리에 와있다. 한 여성 화가가 동행하면서 우리를 인상파 화가들의 집으로 화실로 안내하며 그들을 만나게 되는 컨셉이었는데 이게 바로 위에서 말한 '관람자의 마법'이다. 그림을 보고 그 시대를, 그 장소를, 그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관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