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따니스트 - 모험하는 식물학자들
마르 장송.샤를로트 포브 지음, 박태신 옮김, 정수영 감수 / 도서출판 가지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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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다보니 작년에 읽었던 미우라 시온의 소설 <사랑 없는 세계>가 떠올랐다. 대학 자연과학부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는 모토무라는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애기장대의 세포만 주구장창 들여다 보는 인물이다. 모토무라의 지도 교수인 마쓰다 교수는 '배가 고프다'라는 공복감이 연구의 세계에서는 '알고 싶다'라는 마음과 같다는 말을 한다.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면서 마치 세상엔 그것만 존재한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들 - 그들이 바로 보따니스트, 식물학자들이다.


   식물학의 역사는 식민지의 역사와 분리해서 이야기하기 어렵다. 서구 열강들이 신대륙을 찾아 바다를 누비고 새로운 땅을 발견할 때마다 그곳의 원주민들과 자연을 쑥대밭으로 만들면서 탐욕스럽게 수집하고 갈취하고 재배하고 결국엔 멸종시켜버린 피비린내의 역사가 아이러니하게도 식물학의 발전을 가져왔다. 저자는 800만점이 넘는 식물표본을 소장한 파리 식물표본관의 총괄책임자로서의 경험을 위주로 하여 식물학자들의 모험과 위험 그리고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식물 표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대한 부분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식물 표본에 대해 읽고 있으니 어렸을 때 예쁜 꽃이나 네잎 클로버 등을 찾으면 책 사이에 끼워 납작하게 만들거나 코팅을 해서 책갈피처럼 사용하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물론 식물표본작업은 그런 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함과 정확성을 요하는 작업이다. 단순히 식물표본만 만든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발견한 것인지, 이 식물의 용도는 무엇인지 등에 대한 기록도 작성하여야 하고 어떻게 표본을 만들어야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


   채집하고 표본을 제각했다면 이제 표본을 어떻게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난이도 최상의 작업이 남아있다. 특히 그 표본이 수백년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수집된 것들이라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특히 오랫동안 분류법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린네의 분류법이 DNA의 발견으로 인해 보강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파리 식물표본관의 800만점이 넘는 표본들의 재작업이라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데 그걸 또 해낸다. 앞서도 말했지만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데 신박한 재능을 지닌 식물학자들이라서 그렇다.


   '지구 생태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지구가 1년동안 생성한 자원을 인간이 다 써버리게 되는 날짜를 알려주는 것인데 그 사용 일수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한다. 2000년에는 11월 1일이었는데 2020년에는 8월 22일이었다고 하니 인간이 자연을 먹어치우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결국 식물을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순전히 식물학자들의 공로일터이다. 아니 어쩌면 식민지 시대의 대학살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 지구를 구하게 될런지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는 아니지만 식물 표본이라는 생소한 세계를 알게 해 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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