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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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갑자기 하지만 새삼 얻은 깨달음 - 왜 수백년 혹은 수천년 전의 책을 읽어야 하는가. 바로 예나 지금이나 사피엔스들이 사는 세상과 본성이 별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 19세기의 프랑스 공무원 사회를 풍자한 발자크의 작품이 오늘날 대한민국에도 촌철살인이 될 수 있다니! 19세기 프랑스는 몇번의 혁명을 겪고 왕정과 공화정이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시대의 특정 직업군을 풍자하고 까발리는 풍자문학이 성행했다고 한다. '~의 생리학'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타난 이러한 작품들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고 하는데 발자크 역시 이 시류에 합류하여 <공무원 생리학>과 <기자 생리학>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공무원도 공무원이지만 당시 프랑스 기자들 역시 기레기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우리나라도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명제 하에 너도 나도 공무원이 되겠다며 대학입시보다 더한 경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공무원 시험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1800년대 프랑스 사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만일 그대가 아이에게 물려줄 연금이 없다면 어떡하지?

(중략) 만일 그대에게 동산이나 부동산이 없다면 가장 큰 사회적 가치 가운데 하나인 이름을 물려주면 좋은데, 이것도 없다면 어떡하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대체할 만한 재능이라도 있으면 좋은데, 이것도 없다면?

그렇다고 해서 제발 이런 원색적이고 처절하며 잔인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우리 아이는 공무원이 될거야!"

아, 나도 안다. 지금 이 시대에 행정직만큼 선망하는 게 없다는 것을. 고등학교에는 이런 꿈을 가진 아이들이 득실하다.

본문 p35-36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일 처리 방식은 도마 위에 오른다. 한번이라도 공무원을 상대하면서 분통 터지는 경험을 했던 이들이라면 발자크의 통쾌 유쾌 상쾌한 씹는 글들을 읽으며 기분을 풀어볼 수 있으리라.

낭비는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각 부처끼리 서로 공모하면 된다. 그러면 낭비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유출'을 하려면 시급하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공사를 하면 된다. 철로를 놓는 대신 기념탑을 세우거나 마차를 끄는 말들의 마구를 새로 달아주면 된다..(중략)

본문 p30

그가 뭘 먹고 사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자기 봉급은 먹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본문 p53

이렇게 '좋아요'를 백번이라도 누를만한 공감백배 되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프랑스 관료 조직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번역자의 주석이 꽤나 많이 있는 편이긴 하지만 발자크가 쏟아내는 문장들에 대한 온전한 공감은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한번쯤은 읽어 보면 좋을 작품이다. 물론 300여년 전과 지금이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이 절망이 될 지 위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책에는 '임시직'에 대한 단상도 포함되어 있는데, 역시나 지금과 단 한치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임시직'은 자신이 노력하면 언젠가 정규직이 되리라 믿고 있지만 그 천진함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에는 불평등과 절대 정규직으로의 전환을 꿈도 꿀 수 없는 계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임시직들의 천진함도 오래 가지 못한다. 청년은 곧 차장과 자기 사이에 존재하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알게 된다. 이 거리는 그 어떤 수학자도, 그러니까 아르키메데스도, 뉴턴도, 파스칼도, 라이프니츠도, 케플러도, 라플라스도 측정하지 못했던 거다. 0과 1사이에 그렇게 큰 거리가 있다니.

본문 p111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비슷할 것이 분명한 공무원의 습성과 본질에 대한 발자크의 13가지 명제를 증명하거나 반박해 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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