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정원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3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은 후 야심차게 들여놓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30권짜리 전집. 전집을 들여놓은 지 10년이 지났지만 난 여전히 <그리스인 조르바> 한권만 읽었을 뿐이다. 그 이후로 전집이란건 절대 사지 말아야겠다 생각했고 지금은 사다놓은 전집은 가끔 한권씩이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눈감고 뽑은 <돌의 정원>. 책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선택한 책이었는데 진짜 완독하기 어려운 작품이었다.


   카잔차키스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에 기행집이 꽤 많다. 이 소설 역시 그가 일본과 중국을 여행한 이후 집필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 대한 좀 더 많은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그의 기행문인 <일본, 중국 기행>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책을 집필한 건 1936년, 그러니까 일본과 중국으로의 여행 역시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라고 보자면 일본이 한창 제국주의 야욕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을 시기이다. 책에도 그 부분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화자인 '나'와 중국인 '리테'는 옥스포드에서 함께 학교를 다녔던 동창이었다. 리테에게는 '요시로'라고 하는 일본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화자인 '나' 역시 요시로에게 어느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연인 사이는 되지 못한다. 갑자기 리테가 그녀를 버리고 중국으로 돌아가고 이야기는 나와 요시로가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일본에 잠깐 머무른 후 리테의 초청으로 베이징으로 갈 예정이다.


우리는 일본인이에요. 일본은 아시아를 지도해야 할 책임과 싸워야 할 책임이 있어요..(중략) 중국은 일본 거에요. (p23)


당신이 좋아한다는 일본인들은 원숭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의 과일을 훔쳐가는, 몸집 작은 영리한 원숭이지요. 그들은 힌두족으로부터 종교를,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예술과 문화를, 그리고 백인들로부터 과학과 기술을 훔쳐 왔습니다. (p24)


신, 조국, 천황, 이것이야말로 우리 일본의 삼위일체로서 당신네들의 그것보다 더 진실하고 심오한 이념입니다. 오늘날 이런 영웅적인 원칙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보다 높고 위험한 목표를 위해 개인이 솔선하여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독일, 소련, 이탈리아뿐입니다. (p255-256)


   리테가 갑작스럽게 중국으로 돌아간 이유는 명확하게 나오진 않지만 귀국 이후 그의 행보로 미루어 보아 혁명에 가담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옥스포드 시절의 리테가 아닌 오로지 조국을 위해 자신의 연인마저 잔인하게 처단하는데 스스럼이 없는 인물로 그려진다. 일본인인 요시로나 중국인인 리테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당시의 역사가 증언해주는 것과도 일치한다. 나의 의문은 화자인 '나'의 입장이다. 화자인 '나'는 여자의 육체를 탐하고 특정 인종의 특징을 일반화한 차별적 표현을 사용하는 동시에 굉장히 철학적 고민이 깊은 인물로 등장한다. 가끔은 일본의 제국주의적 열망을 숭배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화자가 작가를 대변하는 인물이라면 카잔차키스는 당시 일본과 중국을 여행한 후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그래서 앞서 말한대로 그의 <일본, 중국 기행>을 읽어봐야 정확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자유를 갈망한다. <돌의 정원>에서도 희망을 정복함으로써 자유롭게 된다는 식의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리스인 조르바>에서는 그토록 명확해보이던 '자유'가 여기에서는 모호하다. 물론 내 개인적인 느낌이다. '정원'이라는 단어도 꽤 많이 등장하는데 내면의 정원, 움직이는 돌의 정원, 도주하는 호랑이의 이미지를 가진 정원 등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되지만 정확히 작가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정원'이라는 개념을 차용했는지 나에게는 와닿지가 않는다. 아..그의 다음 책을 집어드는 때는 언제가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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