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이들
P. D. 제임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작품의 한국판 제목인 <사람의 아이들>보다 영화가 사용한 영어 원제 <칠드런 오브 맨>으로 더 익숙한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1984> 이후 이렇게 근미래를 시대로 설정한 디스토피아 소설은 처음이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인 테오가 쓰는 일기의 날짜는 2021년 1월1일로 시작한다. 작가는 굉장히 소수의 인물들만을 가지고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낸다. 독자는 그마저도 대부분을 테오라는 인물의 일기를 통해 접하는데, 테오는 50세 정도의 수동적이고 염세적이고 관조적인 성향의 이혼남으로 '죽어가는 인류에게 가장 보람없는 과목'인 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서 현재보다는 과거에 침잠하면서 그저 시한부 인생을 판정받은 말기암 환자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사는 인물이다.


   공간적 배경은 영국. '오메가'라고 불리우는 인류의 마지막 세대가 태어난 지 20년이 지난 시점이다. 인류는 이미 생식능력을 잃어버렸고 20년동안 새롭게 태어난 아기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 세대인 오메가 세대는 애지중지하게 버릇없이 키워지기도 했지만 미래가 없는 미래에 스스로를 방치하며 사회의 위험 세대가 되고 말았다. 학교는 존재 이유가 없어지고 모든 사회적 인프라는 도시에만 집중되면서 시골은 점점 황무지가 되어간다. 아무도 힘든 일을 하려하지 않으니 못사는 나라에서 인력을 수입해오고 노인들에게는 암암리에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가 된다. 자신만만했던 호모 사피엔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앙으로 지구에서 멸종한 종의 목록에 조만간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지협적이고 지루하고 답답하게 흘러간다. 잉글랜드 총통이라는 자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을 틀어쥐고 나라를 통제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 안주하면서 산다. 사실 인류의 멸종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는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보일법한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어차피 지구는 망해. 언젠가는 태양이 폭발하거나 차갑게 식을 것이고 우주의 작고 보잘 것 없는 미립자 하나쯤 그저 파르르 떨다가 사라지겠지. 인간이 멸망하고야 말 운명이라면 이 보편적인 불임 현상은 오히려 그 어떤 방식보다도 고통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 .....(중략)...나는 앞으로 편안하게 살 생각이네. 더 이상 안락하지 않은 날에는 보르도산 포도주 한 병과 함께 마지막 남은 알약을 미련없이 털어넣으면 그만이지. (p81)


   그러다 작은 반란이 일어난다. 현재 총통의 독재에 저항하는 작은 무리가 총통의 사촌이자 고문을 맡기도 했던 테오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면서 테오의 수동적이고 염세적인 생활에 변화가 일어난다. 반란 자체는 사실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 고작 5명이 무엇을 바꾼단 말인가. 하지만 그 중의 한명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태가 반전된다. 오메가 세대로 끝날 줄 알았던 인류에게 다시 알파 세대가 생길 수도 있다는 희망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진짜 희망일까. 독재자가 죽고 테오가 독재자의 반지를 획득한다. 새로운 희망인 알파와 생식 능력을 지닌 알파의 엄마인 줄리언을 보호하는데 쓸모가 있다는 이유로 잠깐동안 반지를 가지고 있을 생각이지만 테오는 이제 절대 권력을 의미하는 반지뿐만 아니라 절대 희망을 의미하는 아이의 보호자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해피엔딩인가? 그저 인간의 비루함을 보여주는 결말일 뿐이다. 결국 작가는 희망을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인간이란 종은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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