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이야기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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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속이 꽉 찬 미스터리물을 읽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다음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단숨에 읽어버린 책이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서사와 구조와 반전까지 갖출 수 있는지 감탄했다. 어느 장면 하나, 어느 이야기 하나 허투루 들어간 것이 없이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고 말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다.


   아빠와 함께 헌책방을 운영하는 마거릿은 이미 오래전에 죽은 이들의 행적을 쫓아 전기를 펴내는 아마추어 전기작가이다. 그녀와 아빠가 운영하는 책방에는 현대 작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그녀 역시 19세기 이전의 작품들만 읽을 뿐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의 작품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녀는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다. 10살 때 우연히 발견한 출생증명서를 통해 자신이 샴 쌍둥이로 태어났으며 쌍둥이 자매를 희생하고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이 그녀의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어느 날 이런 그녀에게 편지가 한통 배달된다. 바로 금세기의 유명한 작가인 비다 윈터로부터 자신의 전기를 써달라는 내용의 편지인데 그녀는 의아해한다. 자신은 아마추어 전기작가에 불과하고 심지어 비다 윈터의 작품을 읽어본 적도 없다. 비다 윈터는 자신의 사생활 특히 과거가 베일에 쌓여있는 미스테리한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왜 비다 윈터는 마거릿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을까. 편지에서 비다 윈터는 지금까지 자신은 무수한 이야기를 창조해냈지만 이번에는 진실을 말하고 싶다고 한다.


   비다 윈터가 궁금해진 마거릿은 비다 윈터를 만나러 가기 전에 비다 윈터 작품들을 몇 권 읽는다. 책방의 희귀본 금고에 현대문학인 비다 윈터의 작품이 한권 있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아빠에게 듣게 된다. 바로 결함이 있는 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초판본의 제목은 <변형과 절망의 열세 가지 이야기>였는데 열세 번째 이야기가 없다! 아빠의 추측은 원래 열세 번째 이야기가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열세 번째 이야기를 빼기로 결정했지만 실수로 제목 수정을 하지 않은 채 출판되었다는 것이다. 이후로 잘못된 제목의 책은 회수되었지만 이전에 이미 팔린 책들이 있었는데 아빠가 가지고 있는 책도 바로 그 중 한권이다. 비다 윈터에 열광하는 모든 이들이 바로 궁금해하는 열세 번째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열세 번째 이야기가 있긴 한걸까.


   책 초반부터 이런 떡밥들을 마구 뿌려놓은 채 마거릿은 요크셔의 비다 윈터의 집으로 향한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작가는 마구 달리기 시작하면서 독자 역시 작가를 놓치지 않도록 몰아붙인다. 오래된 저택, 출생의 비밀, 유령 이야기, 방치된 쌍둥이, 가문의 몰락, 의문의 죽음, 방화 등 고딕 미스터리물에 등장할만한 모든 요소가 들어있고 이야기의 톱니바퀴는 절대 어긋남이 없이 찰칵찰칵 발단-전개-결말의 순서대로 독자를 이끈다. 겉모습은 미스터리물이지만 내면은 고백과 치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인간이 그동안 숨겨왔던 진실을 토해냄으로써, 그리고 그 진실에 귀기울임으로써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이로움이 담겨있다. 작가의 첫번째 작품이라는데 놀랍다. 이 여운이 가시면 두번째 작품도 만나봐야겠다.


* 추신 : 이 책에는 유머코드가 딱 한 장면 나온다. 마거릿이 피로와 탈진 증세로 왕진 온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장면인데, 의사가 마거릿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무슨 책을 읽고 있나요? <폭풍의 언덕>을 읽으셨나요? <제인 에어>는요? <이성과 감성>은요? 적어도 한번 이상 읽으셨겠죠? 읽고 또 읽고 여러 번 읽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읽었겠지요?


의사의 질문이 황당했지만 마거릿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의사가 남긴 처방을 읽는 순간 뿜을 뻔했다. 의사는 잘 먹고(식욕이 없다는 마거릿의 말에 식욕은 먹는데서 온다..식욕은 돌아오지만 마중을 나가야 한다는 말도 재미있었다) 잘 쉬고 이걸 드세요라고 말하는데... 이것이란 바로..


<아서 코난 도일 소설집> 셜록 홈즈 시리즈.

하루에 두 번, 열 페이지씩,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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