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화훼영모화
장지성 지음 / 안그라픽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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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음하기도 어려운 화훼영모화란 '화훼와 영모를 소재로 그린 그림'인데 화훼는 꽃이 피는 풀과 나무이고 영모는 새나 짐승을 의미한다. 그러니 화훼영모화란 한마디로 동식물을 소재로 그리는 그림을 통칭한다고 보면 되겠다. 나에게 더 익숙한 서양미술을 생각해보면, 물론 꽃이나 나무, 동물들을 그린 그림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풍경화의 일부로서이지 단독으로 소재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대신 정물화라는 장르가 있어 그 중 하나로 꽃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 역시 화병에 꽂힌 꽃이지 실제 생생한 자연의 꽃은 아니다. 그러니 화훼영모화란 동아시아쪽에서만 하나의 장르로 발전할 정도로 유행한 회화 형식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현대미술은 제외다. 현대미술은 특정한 소재나 장르를 가리지 않으니까.

 

   아뭏튼 저자는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화훼영모화라는 특정 장르를 뽑아내어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정리한 대단한 작업을 했다고 보여진다. 쓰여진 글 하나하나, 선별된 그림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료를 모으고 조사하고 검증하고 이렇게 글로 옮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고가 있었을 지 짐작만 할 뿐이지만 독자로서는 저자의 그 노고를 편히 앉아 이렇게 낼름 받아먹고만 있으니 감사하면서도 죄송할 따름이다. 사실 이 책은 읽기가 쉬운 건 아니다. 서양미술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언어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한자어로 가득한 용어들이 낯설고 의미를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 초보 독자로서 가장 좋은 방법인 시대순, 작가별이라는 친절을 베푼다. 우선 화훼영모화의 의미, 형식, 사용된 기법, 그림에 담긴 의미 등을 정리한 다음 고려시대까지, 조선시대 초기, 조선시대 중기, 조선시대 후기, 조선시대 말기, 그리고 현대의 화훼영모화로 시기를 나누었고 각 시기별로 특징이나 화풍, 시대적 환경 등을 간략히 언급한 후 시기별로 활동했던 작가별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고려시대까지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 아쉽다. 그저 흔적만으로 그 시대의 화훼영모화를 짐작만 할 뿐인데, 불교가 우세했던 고려시대까지의 작품이 좀 많았더라면 조선 시대 유교가 중심이었던 사회의 화훼영모화와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을텐데 말이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언뜻 보기에는 동식물을 그리는데 화풍이나 기법에 무슨 차이가 그렇게 많을까 싶었는데, 실제 그림들을 보면서 설명을 듣다보니 그런 차이가 진짜 확연히 느껴진다는 점이다. 도식적이고 장식적인 화훼영모화가 점차 서정적으로 변화된다거나, 특징만 잡아서 그리던 그림이 점차 터럭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리는 사실주의로 발전한다던가 하는 변화가 마치 서양미술의 화파의 변화를 보는 듯 했다. 나중에 서양미술화파의 시대적 변화와 우리 미술의 시대적 변화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라고 생각해본다. 아뭏튼 두고두고 한번씩 꺼내보게 될 귀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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