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 1337~1453 - 중세의 역사를 바꾼 영국-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이야기
데즈먼드 수어드 지음, 최파일 옮김 / 미지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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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기전에 몇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 있다.

 

- 중세에는 나라의 개념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는 것

- 복잡한 혼인관계로 인해 왕위 계승 서열 역시 수시로 바뀌었다는 것

- 백년전쟁은 후세에 붙인 이름이고 실제 100년동안 한 전쟁이 계속된 것이 아니라 약 100년간 일어난 일련의 전쟁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것

- 잔 다르크가 백년전쟁을 끝낸 것이 아니라는 것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백년전쟁이라는 말은 후대에 붙은 이름이며 잉글랜드와 프랑스 사이에 있었던 이 일련의 전쟁들은 그 시작과 끝을 그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전쟁이다. 그러니까 프랑스 국왕이었던 카페 왕조의 마지막 혈통인 샤를4세가 1328년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지 못한 채로 죽고 샤를4세의 사촌인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가 필리프6세로 프랑스 국왕이 되는데 비슷한 시기에 잉글랜드에서는에드워드3세가 즉위한다. 그런데 에드워드3세의 어머니인 이사벨은 죽은 프랑스 국왕인 샤를4세의 누이이다. 그러니 사실 따지자면 필르프6세보다는 에드워드3세가 오히려 프랑스 국왕의 자격이 좀 더 있는 셈이랄까. 하지만 당시 에드워드3세는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기에는 힘이 다소 미약했기 때문에 그저 잉글랜드 국왕이 프랑스 국왕의 가신 자격으로 보유한 기옌(아키텐 공국)을 유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 기옌 공국에 대해 프랑스는 자신들의 종주권을 주권으로 승격시키고 공작의 영주권력을 지주 권력으로 축소시키면서 에드워드3세를 도발하고 결국 기옌을 몰수한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바로 100여년간 지속될 전쟁의 시작으로 간주되는데 당시에 그런 사실을 알 수는 없었을터.

 

   이 기나긴 전쟁은 기옌공국 하나로만 그치지 않고 에드워드3세의 프랑스 왕위 자격 논쟁으로 번지면서 전 프랑스 영토를 대상으로 한 전쟁으로 확대된다. 그러면서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여 뺏고 빼앗기는 전투가 계속 되면서 100여년을 지속하게 되는 것이다. 백년전쟁을 한권으로 끝내고 싶다면 바로 이 책이 적당한 선택인 것 같다. 일단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다. 작가의 과하지 않은 유머코드 역시 한몫한다. 참고할만한 지도, 가계도, 큰 전투들에서 프랑스군과 잉글랜드군의 대열을 그린 그림들, 각종 삽화들도 이해를 돕는다.

 

   백년전쟁은 명목상으로는 프랑스 왕위나 영토를 놓고 주거니 받거니 했던 전쟁이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돈과 권력'이라는 실체가 숨어있다. 누가 중세를 기사도의 시대라 했던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전투에서 이긴 쪽은 현지 주민들을 갈취하고 슈보시를 자행했다. 슈보시는 전역 내의 모든 건물과 농지, 가축, 사람들을 불태우고 말살하는 작전을 말한다. 몸값을 받을만한 포로들은 살려두어 몸값을 챙기고 재물을 약탈하고 백성들의 항복유무와 관계없이 적이 과세를 하는 토지와 재산을 파괴함으로써 적의 세수를 박탈하려는 목적으로 무수한 마을과 도시들이 불길에 휩싸인다. 아마 백년동안 전쟁으로 죽은 군인의 숫자보다 슈보시로 인해 죽은 백성들의 수가 더 많지 않았을까. 특히 포로들의 몸값으로 부자된 이들이 많아 심지어 백년전쟁이 잉글랜드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니 한심할 노릇. 어디 그 뿐인가. 전쟁에 참전한 수많은 귀족들과 군인들의 죽음으로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백년전쟁은 출세의 시대로도 기억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전쟁이 군비를 감당해야 하는 정부에게는 빚잔치였지만 전투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부를 보장하였으니 그들에게 평화란 곧 '실업'을 의미할 정도였다. 아마도 이런 이유도 전쟁을 그렇게 오래 끌게 한 요인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결국 백년전쟁은 1453년 샤를7세가 노르망디와 기옌을 다시 프랑스의 영토로 수복하면서 끝이 난다. 물론 그때만 해도 이것이 백년전쟁의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이는 아무도 없었겠지만 잉글랜드에서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잉글랜드 왕위를 두고 30년 장미전쟁을 시작함으로써 잉글랜드는 더 이상 프랑스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지게 된다. 백년동안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고 약탈하면서 싸웠지만 잉글랜드는 프랑스 왕위는 고사하고 프랑스 땅 한조각도 얻은 것이 없고 프랑스인들은 자기네 땅에서 일어난 피비린내나는 전투로 인해 끔찍한 고통만 남았다는 사실. 지금의 관계가 그 정도인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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