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지음, 윤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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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처럼>을 읽고 단번에 다니엘 페낙의 팬이 되었지만, 세상에 읽을 책이 천지라, 이제서야 그의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저자 자신이 열등생이었던 점을 고백하면서 시작하는 이 책은 어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열등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보통 지금 잘나가는 사람이 자신은 열등생이었다라고 고백하는 것은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나 요즘은 자신을 디스하면서 은근슬쩍 치켜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있어 믿음이 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저자는 진짜 열등생이었나 보더라. 알파벳 a를 외우는데 일년이 걸렸다는데! 저자의 아버지가 말씀하시길, "걱정할 것 없어. 어쨌거나 이십육년 뒤면 알파벳은 완벽하게 알게 되겠지"...라고 하셨다니, 열등생 인정! 하지만 저자는 기적적으로 '익사의 위기'에서, '자살의 몸짓'에서 기어이 그를 낚아낸 선생님들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 선생님들한테 바치는 오마주일 수도, 아니 어쩌면 현재의 모든 열등생들을 구원하는 것이 선생님들한테 달려있다는 절실한 웅변일지도 모르겠다.

 

내일은 금세 오고 날들은 반복되고 우리의 통학생은 여전히 학교와 집을 오가고, 그의 정신적 에너지는 학교에서 발설한 거짓말과 집에서 소용된 반진실, 학교에 제공한 설명과 집에 내놓은 합리화, 부모에게 그려 보여준 선생들의 초상화와 선생들 귀에 흘려놓은 집안 문제 사이의 거짓된 일관성의 미묘한 망을, 양쪽에 걸린 극소량의 진실을 짜내느라 진이 빠진다. 왜냐하면 부모들과 선생들은 결국 언젠가는 만날 것이고 그 피할 수 없는 만남을 생각하고 그 면담의 메뉴가 될 진정한 허구를 끊임없이 공들여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정신적인 활동은 모범생이 숙제를 잘하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우리의 열등생은 지쳐간다.(p94)

 선생이 거짓말을 모른 척하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좀 더 깊숙이 숨겨진 이유인데, 명석한 의식에 비춰보자면 대충 이런거다. 즉 그 아이가 교사라는 내 직업의 실패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를 발전시키지도 공부시키지도 못한 채, 그저 내 반에 들여놓고 그 아이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안심하는 것이다....학생의 과거, 가족, 친구들, 교육제도 자체를 결집시키는 수많은 질문은 성적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명, 즉 '기초부족'이라는 설명을 양심적으로 작성하게 해준다. 다시 말해 그것은 뜨거운 감자다! (p97)

 

   요즘 우리네 학교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선생님이 얼마나 있을까라고 물어본다면 선생님들의 아우성을 듣게 될까? 물론 선생님들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고 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정상적인 학생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선생을 필요로 하는 학생이 정상적인 학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선생의 역할을 온전히 정당화 해주는 학생', '배우는 일 자체의 필요성부터 시작해 모든 것을 선생에게 배워야 하는 그런 열등생'이야 말로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학생인 것이다. (오호..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미 모든 걸 알고 있고 알아서 하는 학생들에게 선생이 필요하기나 하는 걸까? 저자는 그런 선생들을 이렇게 묘사한다.

 

아이들 각자는 자기 악기로 소리를 내고 있는 건데, 그걸 거스를 필요가 없어요. 좋은 학급이란 발맞춰 행진하는 군대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같은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요. 만일 그들이 땡땡거리기만 하는 작은 트라이앵글이나 브롱브롱 소리만 나는 갱바르드를 물려받았다면, 적절한 순간에 최선을 다해 내는 그 모든 소리, 그들이 훌륭한 트라이앵글과 나무랄데 없는 갱바르드가 되는 일, 그래서 각자의 기여가 전체에 부여한 음악의 질에 자랑스러워하는 일이죠. 조화에 대한 감각은 그들 모두를 발전시키고, 조그만 트라이앵글은 마침내 음악을 알게 되는 겁니다. 아마도 제1바이올린만큼 화려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똑같은 음악을 체험하는 거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에게 제1바이올린 주자만 중시하는 세상을 믿게 한다는 거에요. 어떤 동료들은 자신이 카라얀인 줄 알고 시골의 마을 합창단 지휘를 견디지 못하는 겁니다. (p162)

 

   교사 자신이 카라얀인 줄 알고 트라이앵글이나 캐스터넷츠를 연주하는 아이들을 못견뎌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상태의 아이들을 상상하지 못하는 무능의 상태에 빠져있는 교사들에게 일침을 날리는 직언이다. 이런 선생님한테만 우리 아이들이 배울 수 있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너희 선생들은 하나같이 똑같아! 너희에게 결핍된 건 무지한 상태에 대한 강의야!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온갖 지식의 경연대회를 통과했을 때, 그 때 너희가 갖춰야 할 최초의 자질은 너희는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의 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해내는 능력이어야 해!" (p361)

 

 

    선생님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마구마구 홍보해본다. <소설처럼>이 무작정 책읽기를 강요하는 부모에 대한 일침이었다면, 이 책은 날개가 부러져 기절한 제비를 되살리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하는 교사의 위치에 있는 이들을 일깨우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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