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화관〉
그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도시민의 일상인 영화관람을 소재로 하면서도, 영화보다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에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관은 도시인의 익명성과 군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공간이다. 〈뉴욕 영화관〉. 그들은 동일한 목적으로 이곳에 모였으나 다만 모두 홀로 존재할 뿐이다. 익명집단으로서의 관객은 단지 서로에게 부재할 뿐이다.
그러나 호퍼는 한 차원 더 비약한다. 그는 영화관의 안내원을 예리하게 주목한다. 영화가 상영되는 시간에 그녀가 느끼는 지루함과 무료함, 처절한 외로움을 침묵으로 포착함으로써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날카롭게 포착한 것이다. 턱을 괸 그녀의 손을 보라. 기둥을 중심으로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과 생각에 골몰한 안내원을 대립적으로 배치한 것, 그녀의 등을 밝히는 노란 조명과 붉은 줄 스트라이프의 청색옷, 붉은 커튼과 의자, 조명, 전체적으로 어두운 청색 등은 우리를 죽음과도 같은 침묵의 심연으로 잔인하게 수장시키는 것 같지 않은가.
조용훈의 그림읽기, 효형출판
앞 글과는 약간 달리 이 글에 대해서는 솔직히 다른 할 말이 없다. 그가 보는 것이 정확할지 모든다.
익명집단으로서 극장에 보인 사람들, 영화가 끝나면 뿔뿔히 흩어지고 마는 연관성이 없는 관계.
그럼 그냥 심통맞게 딴지 할 번 걸어볼라치면....
여기 극장내 사람들은 현재 영화를 보고 있다. 영화를 보기 직전의 다소 소란스러우면서 다른 이에 대해 새침함이나 영화를 보고 나서 일행 외에는 관심없이 소란스럽게 의미없는 또는 과장된 감탄사를 연발하며 나오는 이들이 아니다. 극장에 가면 다소 피곤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며, 그런 사람들에 대한 묘사는 드라마나 영화에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혼자서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 가서 영화보기를 즐기는 사람들은, 같은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보여서 재미있는 장면에서 같이 웃고 슬픈 장면에서 같이 우는 것에 대한 매력을 얘기한다. 누구나 그런 순간은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여기 극장 안 사람들의 관계는 절망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끝나고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헤어지더라도, 같이 웃고 우는데 자기도 모르는 기쁨의 순간을 공유하였을 테니까....
어두운 극장과 달리 청색 옷을 입은 금발의 여인을 둘러싼 색조는 화려하다. 빨강색, 주황색과 노랑색. 차분히 생각을 하는 그녀만 짙은 파랑색이다. 오히려 화련함 속에서 공허함이 대조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서는 절망이 느껴지지 않는다. 정말이다. 우습게 들리지만, 그녀의 섹시한 구두와 커텐 뒤의 올라가는 계단 때문이다. 절망한 여자는 결코 저렇게 섹시한 구두를 신지 않을 것이다. 올라가는 계단은 어둡지 않다. 허술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조명을 켜두었다. 그러한 세심함 때문에 난 이 그림에서 무료함과 외로움은 느낄지언정 처철한 극단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나만의 아마추어적 그림보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