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넘버원 여탐정 에이전시 1
알렉산더 매콜 스미스 지음, 이나경 옮김 / 북앳북스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좀 빨리 읽는 편이다. 만화책은 남이 한 권을 끝낼 즈음에 두권, 세권을 읽기 때문에. "그림만 보고 넘기냐" 고 묻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책을 리뷰하는 곳에 자기 독서 능력을 적어내려가는 어이없는 자식이란 소리 듣기전에 얼른 본론으로 들어가면, 이 책은 그런 빨리 읽는 성향으로 인해 만족과 아쉬움을 한꺼번에 가져다 주었다. 거의 자정 가까이 집어든 보통 페이퍼백 두께의 책을 한시간 조금 넘겨 보고 나서, 밤이 너무 늦기 전에 이런 재미있는 얘기의 끝을 보게 된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또한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너무 빨리 봐서 더 이상 읽을 것이 없게 된게 너무 아쉬워서.

설정은 기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의 변형이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탐정 사무소를 열고 하얀색 미니밴을 몰며 오후의 한잔 부시 차를 사랑하는 35세 여인. 허나 런던의 번화가나 조용한 시골마을 대신 여기서는 광활한 아프리카의 자연이 배경으로 등장하고, 다루는 사건도 그 변치 않는 자연을 따라 느긋하게 흘러간다.

추리의 요소는 별로 없다. 게다가 장편의 요소가 있긴 해도 구성 자체가 단편의 모음이기에 다루어지는 문제는 거의 어이가 없을 정도로 금방 해결된다. 탐정의 입장에서 서술되기에 그다지 기묘한 맛도 없으며, 몇몇 챕터는 아예 사건이 없기도 하다. 다루는 문제들이 절대 소소하지 않지만 - 실종, 납치, 사고, 살인, 사기 등등 - 쇼킹함을 주는 서술은 커녕 주인공의 과거 불행을 다루는 부분에서도 담담하기만 할 뿐. 게다가 외모 지상주의가 판치는 요즘 같은 시기에 '키보다 허리둘레에 축복받은' 여인을 탐정으로 내세운 것도 의아하다.

근데 재미있는 이유는? 옆집 아줌마 같은 음마 라모츠웨의 푸근한 활약인 것 같다. 마치 카운슬러처럼 인간의 감수성을 많이도 아니고, 살짝 자극하는 그녀의 사건 접근법이 미소짓게 만든다. 또한 실수나 허탕치는 과정도 여과없이 그려지기에 그녀의 삽질을 목격하며 같이 웃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런 코믹함이 모든 대소사를 별것 아니게 보이게 만드는 건지도 모른다. 백인들에 의해 행해진 수탈의 역사, 혹은 못된 남자들과 맞물린 주인공의 가족사에 이르면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최근 외국에 갔을 때 서점에 들렀다가 [다빈치 코드]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이 책 원판 시리즈 전권을 보았다. 잔인함이나 야함을 전혀 담고 있지 않으면서도 책이 팔리는 것은 복잡하고 바쁜 현대의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아프리카의 느긋함과 달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착 만연한 짝짓기 놀음이나 엽기적인 범죄행각에 질리신 분, 잔잔하면서도 궁금증을 약간 돋울 만한 이야기를 읽으며 머리를 다소 식히고 싶은 분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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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ey 2004-08-1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시리즈는 정말 읽으면 기분이 환해져요. 누군가는 '초원의 집'이 떠오른다고 하더군요. ^^

panda78 2004-09-0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의 풍광 묘사도 너무 멋졌어요. ^^
추리 소설이 아니라 그냥 소설로 읽어야 할 책인 듯. 추리는 너무... 별 거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