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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군대다 - 여성학적 시각에서 본 평화. 군사주의. 남성성, 청년학술 56
권인숙 지음 / 청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군사화 된 일상
두만강을 세 번 건너 중국으로 그리고 다시 남한으로 망명해 온 북한이주여성 ‘최진이’씨의 책 ‘국경을 세 번 건넌 여자’를 읽고 나는 얼마간 혼란스러웠다. 또 그녀를 직접 만난 이후에도 혼란은 여전했다. 아니 더 했다. 여태 알고 있었던 것보다도 북한의 빈곤은 나의 상상을 넘어서는 상태였고,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인권적인 폭압의 일상은 나를 참담하게 만들었다. 통일에 관해 어떤 물음을 만들어나가야 할지 난감 그 자체였다.
그동안 미국의 북한인권개입에 대해 거칠게 비판하였는데, 이제는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 우리가 말할 차례이다. 그럼에도 침묵하고 있는 지금의 우리 상황이 갈등으로 와 닿았다. 행여나 통일운동에 악영향을 미칠까 혹은 그동안 쌓아온 북한과의 우호적인 관계들이 사그리 물거품이 될까 하는 생각에 나는 내 눈을 가리고 입을 닫고 만다. 그런데 이런 나의 고민들이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총체적으로 흔들리며 충돌하는 게 아닌가.
대의를 위해선 소의를 희생해도 좋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는 언제나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해왔다.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희생, 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성차별 문제, 가족의 화목을 위해 희생되어져야 하는 여성의 목소리까지 언제나 대의보다 덜 중요한 소의로 분류되어지고 침묵 당해왔다. 그래서 최근 몇 년간 내 화두의 중심엔 ‘민족’과 ‘군사주의’가 있었다. 여성을 침묵하게 만드는 억압의 방식들을 찾아내고자 하였으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따라 나의 ‘평화 〮인권’운동의 방향들이 움직여지고 있었다.
2003년, ‘우에노 치즈코’의 ‘내셔널리즘과 젠더’와 ‘정현백’의 ‘민족과 페미니즘’을 읽을 때까지도 나는, 여성은 국가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단지 ‘강한’ 국가에서 ‘약한’ 국가로 수위조절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권혁범’(『국민으로부터의 탈퇴』), ‘임지현’(『이념의 속살』,『우리안의 파시즘』), ‘조한혜정’ 등을 통해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운동권 내부의 폭력성에 대한 자기 비판과 성찰은 어느정도 있어왔다.
그러나 ‘군사주의’와 ‘군사화’ (이념적 가치 체계로서의 군사주의의 일상화. 사회화)라는 개념으로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를 분석하고, 80년대 학생운동의 군사화와 성별화, 징병제, 군대 폭력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건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자는 군사화야말로 여성과 평화의 중층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국가주의를 강화시킬 수 있는 역사적 경험의 뿌리는 일본에 의한 식민화와 강대국에 의한 분단과 한국전쟁의 경험(p38)’이었으며, 강한 국가만이 평화를 선택할 수 있고, 국민의 운명 결정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아가 ‘이런 사회에서 국민정체성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국가방어의 역할이고, 한국에서 이를 결정짓는 것은 징병제’라 말한다.
물론 "여성도 강한 국가 건설과 국가 방어를 위해서 다양하게 참여해 왔으나, 이는 미군지기 주변의 매춘여성, 군인의 아내, 새마을 운동지도자 내지는 참여자, 공장여공, 가정주부의 역할(p53)"이었다. 이런 국가 단위의 평화의 지향은 여성을 다양하게 동원하지만 동시에 주변화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 대해 이 책과 하루를 사이에 두고 읽은 ‘아메리타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의 ‘김연자’의 말이 떠올랐다. 김연자는 기지촌 25년간의 경험을 통해 기지촌을 만들고 관리해온 남성국가의 위선을 비판하면서 “내 보지가 알고 보니 나라 보지였더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그녀의 몸 자체가 군사화 된 여성의 몸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리고 ‘권인숙’은 이런 국가주의 폭력과 반공주의에 맞섰던 저항세력의 내부 역시나 군사화 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학생운동의 이중구조, 폭력시위, 성별화 된 시위방식, 남녀대학 간의 위계질서 등을 통해 80년대 학생운동 내부의 성별화 된 군사화를 설명해 나간다. 또 조직체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국가와 민족지향이 강할 때는 남성중심의 문화가 우세하게 되고, 특히 전투적 상황이 강조될수록 여성의 갈등은 사소한 문제로 환원되어 버리거나 침묵하게 되는 것들을 80년대 이상적인 여성활동가로 활약했던 ‘김상인’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드러낸다.
결국, 80년대 학생운동은 일상적 가치에 대한 도전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운동이였으며, 운동권 내부의 성별화 된 전략들은 여성활동가들에게 자기 부정과 소외를 경험하게 할 뿐이었다. 학생운동권 내부에서 인정받는 여성활동가로 살아남는다는 것은 여성으로서의 자기 경험을 부정하고 명예남성으로 자신을 세워나갈 때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김상인’의 경험을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학교 교실에 엎드려서 엉엉 울었던 기억, 애국가만 울리면 부동자세가 되어 내 무의식을 국가주의로 강화시켜내던 기억들, 언제나 전시상황임을 주지시켰던 교련시간,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어하던 자신을 쉼없이 ‘쁘띠 브루조아의 근성’이란 것으로 밀어내던 대학시절, 민중문화를 살려내야 한다는 ‘강한’ 문화의식으로 장구를 잡고 북을 잡고 탈춤을 추던 기억들, 서구적 미의 가치에 길들여진 여성들을 비판하며 웨딩드레스와 화장을 거부하던 20대의 관념들이 꾸역꾸역 아프게 올라왔다.
올바른 문화에 대한 이해가 몸보다도 머리로 먼저 하고 말았던 그 불편했던 시간들이 이후 자연스럽게 나의 일상으로 스며든 것은 오히려 여성주의라는 안경을 쓴 이후였다. 만약 20대에 여성주의를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나는 ‘약한’ 남성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와 유사한 성격의 소유자인 ‘김상인’의 과거는 나에게도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부분들이었다. 그녀의 고백처럼 우린 다 같이 ‘뽕을 맞은 세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강한’ 국가와 ‘강한’ 저항과 ‘강한’권력을 누리며 지나온 386운동권 세대이다. 그래서 더욱더 우리 세대는 자기 내부의 ‘권력’에 먼저 맞서야 한다는 자기 반성이 동반되었다.
4장 ‘징병제’와 5장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과 남성성’에 대한 글들은 개인적으로 오래 전에 이미 다른 지면을 통해 읽어왔던 내용들이었다. 그러나 내 경험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다시 읽게 되니 4년 동안 붙잡고 온 우리의 ‘평화운동’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성별화 된 군사화를 더 분명하게 정리해내고, 우리 사회 평화운동이 부재한 이유를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저자는 ‘전쟁발생에 대한 기피욕구는 강하지만, 평화유지가 평화운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상식’이 일반화‘된 점과 ‘평화운동은 비폭력운동이며, 그것은 무기력한 운동 혹은 약한 운동으로 인식’되어 있음으로 해서 우리 사회 평화운동이 부재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덧붙여 집권세력은 저항세력에게 무장해제의 논리로 비폭력 평화운동을 운운하였고, 그것은 저항운동의 힘을 약화시킨다는 두려움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보았다. 일부에서 평화= 여성, 통일= 남성으로 성별화 된 운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저자의 지적에 더욱 공감이 간다.
‘정희진’은 ‘구체적 일상, 개인들 사이의 관계의 민주화 없이, ‘정치’ 개혁이나 역사의 진보가 가능할 수 없다. 그래서 일상의 정치학 핵심은 성별관계 즉 젠더’이며,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에 저항하는 여성주의는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민주주의를 대립시키지 않는 사유방식’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성주의야말로 현실을 읽어나가는 유용한 인식론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화를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읽어나간 이 책은 우리 일상의 군사주의를 들여다 보게 만들며, 성별화 된 일상들을 다시금 관찰하게 만든다. 이것이 비록 상처로 점철된 일상의 기억들이라 하더라도, 이전의 ‘나’를 한단계 성장시킬 것이란 믿음으로 책을 덮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