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은 입문학이다
김보경 지음 / 현자의마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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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이란 글자 그대로 글을 소리 내 읽는 것을 말한다. 낭독을 생각하면 TV 역사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서당에서 훈장이 아이들을 모아놓고 큰 소리로 책을 따라 읽게 하거나, 서재에서 선비들이 책을 소리 내 읽는 그런 모습이다. 공부 방법 중에는 책에 있는 글을 베껴 적는 필사도 있었겠지만, 낭독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도 그것이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이 아니었을까?

 

 

언젠가 읽었던 최진석의『인간이 그리는 무늬』에는 낭독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낭송을 하면 읽은 내용이 육체적인 감각을 건드려 내면화하게 됩니다. 육체적 내면화라고 할까요? 아는 내용이 육체화하는 것을 체득이라고 합니다. 터득을 해야 지식이 실천되겠지요. 체득되지 않은 지식은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져 버려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지요.' 268p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앞서 읽었던 책의 낭독에 대한 효과가 생각났다. 그와 함께 눈길을 끈 것은 'SBS 다큐멘터리' 내용이었다. 낭독에 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TV 방송에서 '낭독의 효과'에 대해서 다루었다는 사실이 반갑고,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저자는 '북코러스'라는 이름의 독서 낭독 클럽을 만들었는데, 이 책은 4년 7개월 동안 지속 되어온 클럽에 대한 이야기와 낭독에 대한 저자의 고백이자 체험담이다.

 

 

"활자를 일으켜 세우다! 낭독이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이자 눈에 띄는 효과다. 소리 내어 글을 읽는 행위는 책 속에 갇혀 있던 활자를 일으켜 세워 공간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소리가 만들어내는 이 입체성은 다양한 모습과 역할로 읽는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것은 단어 하나의 의미에서부터 단락과 단락 사이의 맥락에 이르기까지 긴 호흡으로 깊이 있는 독서가 되도록 돕는 안내자와도 같다." 91p - 김지훈 (에디터)

 

책 중간중간에는 '북코러스' 회원들의 낭독 체험기가 실려 있는데, 첫 번째로 소개된 체험기 제목은 '낭독은 활자를 일으켜 세운다'였다. 낭독의 효과에 대해 이처럼 강렬하게 와 닿는 문구가 또 있을까? 책에 붙어있는 어떻게 보면 누워있는 활자를 일으켜 세운다! 활자를 의인화시켜 표현한 문장들이 신선했다. 낭독으로 일어난 활자는 읽는 사람에게 다가가고 깊이 있는 독서를 돕는다고 한다.

 

"책 속엔 수많은 세상이 녹아 스며들어 있다. 저자가 체험하고 상상한 일들과 생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그 내용이 풍기는 의미와 영감에 탄복하면서 상상의 세계를 공유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의 감상과 의지를 좀 더 체감하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두뇌에 입체 정보를 공급하는 방법이다. 바로 책을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 내어 읽는 낭독이다." 96p - 이준정 (미래탐험가)

 

좋은 책을 읽을 때면 그 저자가 쓴 내용에 담긴 의미와 영감에 탄복하고, 기억하고 싶은 문구는 밑줄을 긋곤 한다. 그런데 좀 더 나아가 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그 방법은 낭독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소개된 체험기 제목은 '마음을 일깨우는 시간들'이었다. 낭독의 효과를 설명하는 체험기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낭독은 입체성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마치 묵독이 일차원이나 이차원에 머물렀다면, 낭독은 삼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는 말이 아닐까?

 

 

"도호쿠대학교의 가와시마 류타 교수팀이 51명의 실험군을 6개월 동안 훈련시켜 47명 대조군과 비교한 전두엽 기능 평가 실험 결과에 따르면 낭독을 실시한 후 기억력이 20% 향상되었고, 낭독이 뇌를 워밍업시켜 뇌가 평소보다 활발하게 능력을 발휘했다. 낭독이 전두엽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결론이었다." 124p

 

다큐멘터리 방송 내용에서도 '낭독 시에는 묵독 조건 때와는 달리 듣기 관련 기능 영역과 운동 관련 기능 영역이 활성화된다.' 123p 고 말하고 있었다. 단순히 낭독이 개인적인 체험에서 이런 점이 좋고 저런 점이 좋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가지고 그 효과에 관해서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더 효과적인 독서 방법인 낭독을 가능한 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독서의 가르침은 세속적 성공의 스토리를 들려주지 않는다. 올곧은 삶의 태도와 선악과 옥석을 가리는 이치만을 가르쳐준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고 '나도 독해져서 인정사정없이 약자 위에 군림하고 강자에게 빌어야지.' 따위의 교훈을 얻었다면, 그것은 오독이다. 약자의 공포심을 악용하는 군주의 나약함을 간파하여 공포에 굴하지 않는 강한 심장을 가진자가 되어야지 하고 깨닫는게 옳다." 167p

 

올바른 독서란 무엇일까? 나는 올바른 독서를 하고 있을까? 저자가 말하고 있는 올바른 독서의 가르침을 보면서 한편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인문학에 관한 높은 관심이었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식지 않고, 인문학 관련 강의나 강좌가 계속 호황을 맞고 있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개인마다 나름의 이유와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 목적이 단순히 '세속적인 성공을 위해서'라면, 또는 '너도나도 공부하니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공부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란 속담도 있듯이, 독서와 공부의 목적이 올바른 것이라야 그 결과도 올바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 낭독은 텍스트를 마음속에 고이게 하는 특이한 독서 방법이다. 고이면 흐르게 되어 있다. 흐르지 않으면 썩는다. 썩으면서 시야를 흐리고 관점을 흩트린다. 결국 사물이 어렴풋해지고 사람이 올바로 보이지 않는다. 흘려야 한다. 마음에 고인 텍스트를 흘리는 방법은 쓰기이다. 쓰기는 곧 사유의 한 방법이다. 사유하면서 쓰고, 쓰면서 사유하는 것이다. 사유는 해석이고 창조다." 293p

 

한 달에 한 편꼴로 아주 적은 숫자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독서 낭독은 곧 글쓰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저자의 말에 깊게 공감했다. 매번 낭독으로 독서를 해 오지는 않았지만, 책을 꾸준히 읽고 좋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무슨 글이라도 쓰고 싶은 욕구가 자연스레 생긴다. 때로는 타인이 쓴 좋은 글들이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길 무렵, 나에게 기폭제가 되었던 것은 좋은 리뷰들과의 만남이었다. 그 이후로 용기를 내어 책을 읽고는 꼭 후기를 쓰기 시작했고, 글을 쓰면 쓸수록 사유도 조금씩 천천히 깊어짐을 느꼈다. 사유하면서 쓰고, 쓰면서 사유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에게 쓰기와 사유는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한편으로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문학이란 깨달음으로 안내하는 모든 읽기와 쓰기'라고 정의한다. 몇 년 동안 독서 낭독 클럽을 운영하면서 마음에 아로새겨진 생각이다. 나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문학다방 봄봄'을 오픈한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떤 신호를 보내고 싶을 뿐이었다. 문학이라는 장르가 잊혀져 가는 시대에 '문학'이라는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만남을 잇고 싶다는 신호이다. 이런 신호가 외로운 등댓불이 아니라 호롱불이나 반딧불이어도 만족한다." 318-319p

 

저자는 책과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랑이 글에서 뚝뚝 묻어져 나왔다. 그 사랑은 강렬한 열정을 낳았고, '북코러스' 독서 낭독 클럽을 만들었다. 김주영의 소설『객주』를 낭독하는 또 다른 독서 낭독 클럽을 낳기도 했다. 소설가 윤후명의 소설학당에 등록해서 소설 쓰기도 배운다. 저자에게는 열정이란 말도 부족할지 모른다. 일종의 사명감으로 자신의 집을 줄이고 자금까지 마련해서 인문학 카페 '문학다방 봄봄' 오픈에까지 이른다.

 

낭독은 여럿이서 함께 하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북코러스'는 만 4년 7개월간 18권의 책을 읽었다. 혼자 읽기 쉽지 않은 두껍고 어렵거나 고전인 책을 선정해서 매주 만나서 읽었다. 그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어떻게 모임이 계속 지속할 수 있었을까? 기존의 많은 독서 클럽이 책을 미리 읽고 와서 토론 하거나 생각을 나누는 것에 반해 이 클럽은 모임에 와서 함께 책을 낭독했다. 책을 미리 읽을 필요도 없고, 참가에도 전혀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연령대 또한 다양한 이 모임이 계속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함께하는 낭독의 효과가 가장 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클럽 회원들의 낭독 체험기가 무척 인상 깊었고, 함께 낭독했던 책들이 저자의 리뷰 형식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리뷰 내용이 참 재미있었는데, 소개된 책들을 모두 낭독으로 읽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내가 서울에 살았다면 이 독서 낭독 클럽의 문을 두드려 보지 않았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부끄럽지만, 아직 한 번도 통독해 보지 못한 성경이나 신심 서적으로, 성당에서 여럿이 함께 낭독해 보는 모임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점이었다.

 

낭독은 묵독과 비교하면 책을 읽는 시간도 더 걸린다. 소리 내 읽어야 하는 약간의 수고로움도 감당해야 한다. 함께 낭독하는 독서 모임에 참가할 수 없다면 혼자서라도 낭독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읽어야 할 책이 많다면 그동안 익숙하고 편하게 느껴졌던 묵독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공장소라면 낭독은 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부터 읽는 책은 더욱 효과적인 독서 방법인 낭독을 꾸준히 실천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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