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사셨을까? 그분들이 있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지만, 솔직히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내 삶에 대해 생각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직접 살아온 얘기들을 들려주지 않는다면 잘 모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책은 말 그대로 '오베'라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인가 불만스러운 표정에 화가 나 있는 듯한 얼굴을 담고 있는 책 표지는 그에 대해서 미리 이런 사람이라는 듯 설명해주는 듯하다.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삶을 짐작케 하고 자연스레 떠올리게 했다. 이야기는 '오베라는 남자..'로 시작되는 현재와 '오베였던 남자..'로 시작하는 과거가 서로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그녀를 그리며 상상하는 것 중에서 가장 간절한 건, 정말로 다시 하고 싶은 건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집게 손가락을 접어 그의 손바닥 안쪽에 숨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가 그럴 때면 세상 어떤 것도 불가능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워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중에서, 그것이 가장 그리웠다."102p

 

오베라는 남자는 지금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다. 그 이유는 6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또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다음 세상에서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심정으로. 그녀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그중에서 무척 가깝고 사랑했던 사람일수록 그 사람과의 헤어짐이나 죽음은 받아들이기가 정말 어렵다. 마치 건전지를 다 소모해버린 장난감 자동차가 멈추어 선 것처럼, 그 순간은 시간이 멈추어버린 것 같고 내 몸의 각 부분도 함께 기능을 멈추어버린 것 같다.

 

흐르는 시간은 약이 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오베라는 남자에게 아내가 없는 6개월의 시간은 전혀 약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그녀 곁으로 가고 싶어하는 열망만이 깊어갔다. 그 열망은 끊임없이 자신을 버리게 하였다.

 

"주택은 공정했다. 공을 들인 만큼 값어치를 했다.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나았다."129p

 

오베라는 남자는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차례로 잃게 된다. 부모의 공백은 그에게 순탄치 않은 삶으로 다가왔다. 홀로 살아가며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 중에는 좋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가 겪은 시련과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들은 불행히도 사람을 점점 더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람이란 존재가 같은 사람에게 신뢰를 두지 않는다는 사실은 무척 안타깝고 슬프게 들린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각종 범죄에 관한 소식은 세상은 험악하며, 사람을 함부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오베라는 남자 또한 동료로 인해 직장을 잃고, 사람을 믿어 사기를 당하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자신의 집마저 불타버리는 상황을 겪는다. 그리고 그에게 남은 것은 사람에 대한 불신만이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 불신은 그에게 사람이란 존재가 주택만도 못하는 믿음을 낳게 된 것은 아닐까?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189p

 

소냐는 오베라는 남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인정해준다. 그녀는 그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고 사랑해준다. 그녀를 만남으로서 그에게 인생은 더는 전과 같지 않게 된다.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는 그녀를 통해 더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암으로 죽자, 그는 이제는 세상을 색깔로 볼 수 없었다. 다시 세상을 흑백으로 보기 시작한 그는 더 삶을 지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왜 그렇게 타인을 까칠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에게 유일한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던 그녀를 잃은 상실감은 슬픔을 넘어 분노로 바뀌었을 것이다.

 

"마을이 외제차와 통계와 신용카드 빚과 기타 쓸모없는 것들과 더불어 잠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이렇게 오늘 하루도 망쳤다고, 그는 씁쓸하게 확인했다."202p

 

오베라는 남자는 오늘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 실패하고 만다. 이상하게도 항상 마지막 순간이 되면 누군가 자연스레 나타나서 방해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오히려 도와주어야 할 일이 자꾸만 생겼다. 그가 아내를 만나기 위해 다음 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그 시간이 자꾸만 미뤄졌다.

 

그에게 있어서 망친 하루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의미 없이 보낸 하루가 아니라, 단지 이 세상을 떠나는 데 실패한 하루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집 주위 이웃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좋은 일을 하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며 까칠하게 이웃을 대하지만, 감정과는 별개로 그래도 투덜거리며 이웃들을 돕는다는 점이다.

 

번드르르한 말과 좋은 표정과 미소로 남을 속이고 해를 끼치는 사람보다는, 때로는 무뚝뚝하고 화난 표정에 무서운 얼굴이더라도 남을 도와주고 이롭게 하는 사람이 더 좋고 정감이 가기도 한다. 오베라는 남자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이웃들도 그를 점차 좋아하게 된다.

 

매일 죽음을 준비하고 죽음을 시도하다가 이웃들로 인해 매번 실패하는 그 모습이 분명 웃음이 나오는 상황인데도 자꾸만 안타깝고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베라는 남자는 결국 이 세상을 떠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이웃들을 위해 도와주어야 할 일들을 다 마친 후에야 떠날 수 있었다는 듯이.

 

그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평생을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고 묵묵히 또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의 모습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윤제균 감독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라는 인물과 이 책의 주인공 '오베'라는 인물이 자꾸만 겹쳐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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