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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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초자아에서 이상 자아로. 배후로서의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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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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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한병철,『피로사회』

: 깊이 심심하기

 

 

<1>

 

2012년 출간되어 큰 이슈가 되었고,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꾸준히 읽히며 논의되고 있는 한병철의『피로사회』를 읽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의 논리를 시원하게 한계 지으면서 자신의 논지를 펴는 모습이 대단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가 거장의 이론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한병철이 주장하는 논지의 핵심은 우리의 사회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전환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규율사회’를 분석했던 이론을 가지고 오늘날을 규정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는 것이지요.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푸코의 규율사회는 더 이상 오늘의 사회가 아니다. 규율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고 그 자리에 완전히 다른 사회가 들어선 것이다. 그것은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사회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라고 불린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이다. 23(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이제는 외부의 권력이 개인을 감시한다기 보단, 사회의 주민 스스로가 자기를 감시한다는 것이 한병철의 진단입니다. 여기서 감시자는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라고 믿는 개인에 의해 탄생된 ‘이상 자아’입니다. ‘이상 자아’는 끊임없이 ‘현실 자아’를 압박하고 그 간극을 메우기를 강요합니다. 이상 자아에 비하면 현실의 자아는 온통 자책할 거리밖에 없는 낙오자죠(103).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깊어 화해할 수 없게 되는 지점에서 우울이 도래합니다. ‘이상 자아’를 탄생시키는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라는 메시지는 물론 사회적인 것이고요.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인간을 반영한다. 28

 

한병철은 ‘규율사회’와 ‘성과사회’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배후에 동일한 원리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산성의 향상’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더욱 가속화된 발전을 위해 타자에 의한 착취에서 자기 착취로 전환합니다. 자기 착취는 기만적인 자유의 느낌을 동반하는 한에서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효율적입니다(110).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하나의 층위에서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한다.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 생산성이 일정한 지점에 이르면 규율의 기술이나 금지라는 부정적 도식은 곧 그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성의 향상을 위해서 규율의 패러다임은 ‘성과의 패러다임’내지 ‘할 수 있음’이라는 긍정의 도식으로 대체된다. 생산성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면 금지의 부정성은 그 이상의 생산성 향상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 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성과주체는 복종적 주체보다 더 빠르고 더 생산적이다. 그렇다고 능력이 당위를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다. 성과주체는 규율에 단련된 상태를 유지한다.(···) 능력은 규율의 기술과 당위의 명령을 통해 도달한 생산성의 수준을 더욱 상승시킨다. 생산성 향상이라는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25

 

힐링 바람이 불기 전에 오랜 시간 출판계를 주름잡았던 테마가 자기 계발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직장을 잃으면 다른 치즈를 찾아가라고 조언해주는 책도 있었고, 새벽이나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설계하라는 내용도 있었죠. 누구는 유대인처럼 살라고 했고, 또 누구는 7가지 습관을 몸에 베이게 하라고 했습니다. 여하튼 방법에서의 차이는 있지만 핵심은 같았습니다. “지금 네 삶은 시궁창일지 모르지만, 너도 큰 성공을 할 수가 있어. 나의 가이드를 쫓아오기만 한다면.” 저도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마음에 안 들지만, 책에서 나왔던 성공모델을 쫓아가면 영광의 날이 올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니,

 

‘아··· 안되잖아.’

 

누구나 영광을 차지 할 수 있을 것 같이 묘사되어 있지만, 사실 영광의 자리는 한정적입니다. 평가의 룰이 상대평가 방식이라면 학우들이 다함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더라도 소수만이 A+를 받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의 구성 방식이 소수에게만 영광의 자리를 내어 주는 식이라면 우리는 성공담의 주인공이 되기보단 성공담의 소비자에 머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이상 자아’는 무한한 가능성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중심에는 ‘너와는 다른 나’라는 일말의 자족적 개성(나는 평범하지 않아)이 있습니다.

 

근대가 낳은 노동하는 동물에 대한 아렌트의 서술은 오늘날 성과사회에 대한 관찰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노동을 통해 인류의 익명적 삶의 과정 속에 용해되어버릴 만큼 자신의 개성이나 자아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노동사회는 개별화를 통해 성과사회, 활동사회로 변모했다.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거의 찢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자아로 무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수동성과는 정말 거리가 먼 것이다.(···) 후기근대의 노동하는 동물은 정확히 말해서 전혀 동물적이지 않다. 그는 과도하게 활동적이고 신경과민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40~41

 

한병철은 이러한 자기착취적 굴레 때문에 인류의 문화적 성취의 힘이 되었던 ‘깊은 심심함’이 상실되어 간다고 개탄합니다.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32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강박, 자기 자신의 그림자를 추월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집니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파국으로 끝날 뿐입니다(101).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병철은 니체를 인용해 ‘사색적 삶’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니체가 표명하는 것은 바로 사색적 삶의 부활이다.(···) 사색적 삶은 오히려 몰려오는, 또는 마구 밀고 들어오는 자극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며, 시선을 외부에 내맡기기보다 주체적으로 조종한다. 아니라고 말하는 주체적 행위를 통해 사색적 삶은 어떤 활동과잉보다도 더 활동적으로 된다.(···)

순수한 활동성은 그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연장할 뿐이다. 진정 다른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려면 중단의 부정성이 필요한 것이다. 행동의 주체는 오직 잠시 멈춘다는 부정적 계기를 매개로 해서만 단순한 활동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우연의 공간 전체를 가로질러 볼 수 있다. 머뭇거림은 긍정적 태도는 아니지만, 행동이 노동의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을 막는 데 필요불가결한 요소이다. 오늘날 우리는 중단, 막간, 막간의 시간이 아주 적은 시대를 살고 있다. 48~49

 

이상 자아를 살찌우는 사회 메시지는 신비화된 자유입니다.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긍정의 힘은 의심을 억누르며, 무한한 세계를 향해 맹목적으로 달리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긍정적인 사고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정도에 있습니다. 새가 두 날개를 통해 날듯이 긍정적인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는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지나친 긍정성의 과잉이 목격되고 있습니다. 이상 자아는 부정적 사고를 불순하게 여깁니다. 하지만 부정적 힘이 없다면 돌이켜 생각하기는 불가능해집니다. 긍정적 힘, 긍정성의 과잉은 오직 계속 생각해나가기만을 허용하기 때문입니다(53).

 

사색적 삶이 개인적인 제스처라면 “깊은 피로”는 하나의 대안 공동체를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깊은 피로는 정체성의 조임쇠를 느슨하게 풀어놓는다. 사물들은 반짝이고 어른거리며 가장자리가 흔들린다. 사물들은 더 불분명해지고 더 개방적으로 되면서 확고한 성질을 다소 잃어버린다. 그리고 이런 특별한 무차별성으로 인해 우애의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타자들과의 사이를 가르는 경직된 경계선은 거두어진다. “그런 근본적인 피로 속에서 사물은 결코 그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것들과 함께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사물들이 수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은 모두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피로는 깊은 우애를 낳고 소속이나 친족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탈진의 피로는 긍정적 힘의 피로다. 그것은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

한트케는 내재적 성격을 지닌 피로의 종교를 구상한다. “근본적 피로”는 자아의 논리에 따른 개별적 고립화 경향을 해소하고 친족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어떤 특별한 박자가 일어나 하나의 화음을, 친근함을, 어떤 가족적 유대나 기능적 결속과도 무관한 이웃관계를 빚어낸다.(···) 무위를 향해 영감을 불어넣는 저 “오순절의 모임”은 활동사회의 반대편에 놓여 있다. 한트케는 거기 모인 사람들이 “언제나 피로한 상태”라고 상상한다. 그것은 특별한 의미에서 피로한 자들의 사회이다. “오순절-사회”가 미래사회의 동의어라고 한다면, 도래할 사회 또한 피로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0~73

 

한병철은 이상 자아에 의해 고갈되는 피로가 아닌, 하나의 공동체를 만드는 계기가 되는 ‘근본적 피로’를 현 세태에 대한 대안적 힘으로 봅니다. 그것이 행해졌던 역사적 사례로 “오순절 모임”을 들고 있죠. 오순절 모임은 초기 기독교 운동이 가능하게 했던 피로의 공동체였습니다.

 

 

<2>

 

정말 오늘날 규율사회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졌는가? 라고 질문하고 싶지만, 경향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볼 때 한병철의 논의 중 가장 허술한 부분은 마지막입니다. 그는 ‘오순절-사회’를 미래사회와 같은 선상에 두면서 대안적 피로사회에 대해 말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순절’ 모임이 가능할 수 있었던 맥락에 대해서는 어물쩍 넘어가고 맙니다. 그는 그저 ‘근본적 피로’라는 신비로운 개념을 활용하여 오순절 모임의 결과들만 나열하고 있죠.

 

오순절 모임이 혁명적인 기독교 운동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라는 카리스마적 존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두 차례의 집단적 신비체험을 통과한 후에 가능했죠.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후 그의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모일 수 있었던 이유는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응집력이 극대화 된 계기는 오순절 성령 체험을 통해서였습니다. 부활한 예수는 ‘성령을 받아라’라는 지시를 끝으로 승천하게 됩니다. 남겨진 제자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예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밤낮 기도했고 성령의 임재라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오순절 사건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저 ‘“근본적 피로’는 대안적 공동체를 만들어 낸다”라며 손쉽게 이야기 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오순절 모임이 탈국가적이고, 탈민족적이며, 탈혈연적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수라는 카리스마적 존재의 진리 설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유대교 사상과 달리 예수는 모든 인류가 구원의 대상이며, 신 아래 평등하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이를 믿는 모든 사람은 국가, 민족, 혈연과 상관없이 형제, 자매라고 선언했죠. 가난하고 핍박받는 이웃이 있는데 호의호식하고 있다면 자신의 형제를 외면하는 파렴치한이 되고 맙니다. 신은 특정 민족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인류 모두를 자녀로 삼았고, 그렇기에 모두가 서로 아끼며 사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예수는 복음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주장 때문에 결국 예수는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을 달고 처형당하지만, 그 진리에의 선포 때문에 오순절 모임은 대안적 공동체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한병철은 오순절 모임에 대해 언급하고 근본적 피로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맥락을 세심히 다뤄주지 않습니다. 한병철은 오순절 모임을 “개별적 고립화 경향을 해소하고 친족관계에 의존하지 않는 하나의 공동체”로서 호출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사건은 거의 2000년 전 사건이고 그 때 살았던 사람과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순절 모임이 하나의 혁명적 사건이자 혁신적 공동체의 도래였다는 점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하나의 소중한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나이브한 연결은 막연함만을 남깁니다. 오늘날의 세태에 대해 도전적인 철학적 테제를 가지고 명쾌하게 정립한 것에 반해 대안적 공동체에 대해서는 신비롭게 처분하는 모습은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의 ‘깊은 심심함’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인 것 같네요.

 

<3>

 

철학을 포함한 인류의 문화적 업적은 깊은 사색적 주의에 힘입은 것이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는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다양한 과업, 정보 원천과 처리 과정 사이에서 빠르게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 이러한 산만한 주의의 특징이다. 그것은 심심한 것에 대해 거의 참을성이 없는 까닭에 창조적 과정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저 깊은 심심함도 허용하지 못한다. 32


저는 성공한 자영업자의 아들입니다. 남들 잘 때 깨어 일을 시작했고 남들 쉴 때 한 번 더 뛰셨죠. 시대적 흐름도 부모님을 응원했겠지만, 그 수고의 강도는 더 없이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도 이것이죠.


“잠은 잘수록 늘기 마련이다.”


부모님의 수면시간은 여간해서는 5시간을 넘기지 않았고, 저에게 지속적으로 했던 훈육은 이 같은 성격의 것들이었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그리고 자기계발에의 강요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강박적으로 자기계발서 및 잠언집들을 탐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잠시라도 그냥 허비되는 시간이 생기게 되면 무엇을 해서든 그 공백을 메워야만 안도가 되는 사람이 되었죠. 하루를 마무리하며 이부자리에 누웠을 때 만족감과 실망감을 결정짓는 잣대도 공백의 시간을 얼마나 철저하게 제거했느냐에 달렸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성실한 숨죽이기가 창의를 낳아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속된 건 오히려 소비였고 창의는 자기 자리를 잃어갔습니다.


언젠가 작가 박민규의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창작의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심심함’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심심함이라니. 그는 심심해야만 온갖 생각들을 하게 되고, 거기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심심함이라는 것이 ‘깊은 심심함’이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타인들의 세계를 강박적으로 학습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창의가 발생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그들의 세계를 나의 세계가 어떻게 조작하여 흡수하고 갱신의 계기로 삼는가가 아는가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기 세계에만 침잠해서는 안 되겠죠. 박민규 작가도 고전 탐독과 폭넓은 다독을 부연하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심심함의 강박으로 타인의 세계를 삼키기만해서는 자신의 이름이 모호해지는 경향성을 막을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심심함을 견디고 나의 세계에 침잠된 이름들을 건져내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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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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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게 된 이유는 총과 균과 쇠를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것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을까? <총균쇠>는 이 질문과 치열하게 싸우면서, 세계불평등의 기원을 해명한다. 우리를 키운건 팔할이 위치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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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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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제레드 다이아몬드,『총균쇠』

: 우리를 키운건 팔할(어쩌면 그 이상)이 위치빨이었다!

 

 

 

<1>

 

막연하게 궁금했습니다. “왜 서구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는 동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들은 여전히 ‘우가자카 우가우가’하고 있었던 것일까?” 하고. 현생 인류가 탄생한 이후 각자 흩어져 터전을 잡게 되었지만, 어쨌든 객관적으로 같은 시간을 보내왔을 텐데 말이지요. 그런데 이 궁금증은 비단 저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사자들에겐 더 절실한 질문이었겠죠.

 

2세기 전까지 모든 뉴기니인은 아직도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유럽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 금속기에 자리를 내어준 석기를 그들은 여전히 사용하고 있었으며, 마을에는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백인들이 들어왔고, 그들은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강요했으며 쇠도끼, 성냥, 의약품에서 의복, 청량음료, 우산에 이르기까지 뉴기니인들도 금방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물건들을 잔뜩 들여왔다. 뉴기니에서는 그러한 물건들을 통틀어 ‘화물’이라고 부른다.

(···)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간단한 질문이지만 그것은 얄 리가 경험한 삶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다.(강조는 인용자, 이하 동일) 15쪽.

 

이 책의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궁극적으로 뉴기니의 정치 지도자인 얄리의 위의 질문을 해명하기 위해 이 같은 방대한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구문명이 다른 문명권에 진출하여 그 지역들을 복속시킬 수 있었던 힘은 ‘총’과 ‘균’과 ‘쇠’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다른 문명권이 아닌 서구문명권에서 이 힘을 획득할 수 있었을까요? “최종 빙하기가 끝나던 B.C. 11000년경까지는 아직 모든 대륙의 모든 인간이 수렵 채집민”이었는데 말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 B.C 11000~A.D. 1500년에 각 대륙의 발전 속도가 제각기 달랐던 것이 곧 1500년의 기술적 · 정치적 불평등을 낳은 것(16~17쪽)”이 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자는 “민족마다 역사가 다르게 진행된 것은 각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다(32~33쪽).”라고 단언합니다.

 

지금의 서구문명의 토대가 되는 지역은 흔히 비옥한 초승달 지대(서남아시아/지중해성 생식지)라고 불리는 일대입니다. 독립적으로 식량생산이 시작된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한쪽 극단에는 식량 생산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시작된 지역들이 있다. 다른 지역으로부터 농작물이나 가축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수많은 토종 식물을 (그리고 더러는 동물도) 가축화 · 작물화한 경우다. 현재까지 증거가 확실하고 세부적인 사항까지 검토된 곳은 다섯 지역밖에 없다. 근동이나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도 부르는 서남아시아, 중국,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의 안데스산맥 일대와 어쩌면 그와 인접한 아마존 강 유역까지, 그리고 미국 동부 등이다(그림 5-1). 160쪽

 

독립적으로 식량생산을 했다고 해서 그에 따른 문명적 이득이 지역적으로 균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기도 달라고 무엇보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작물화 될 수 있었던 야생식물이나 가축화가 가능했던 야생동물의 종류가 달랐습니다.

 

블룸러는 세계에 존재하는 수천 종의 야생 볏과 식물 중에서 종자가 가장 큰 56종을 가려내어 일람표를 작성했다.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종들은 모든 볏과 식물의 중간 값에 해당하는 종자보다 적어도 열 배 이상 무거운 종자를 가진 것들이었다. 그런데 사실상 그 모두의 원산지는 바로 지중해성기후대거나 그 밖에도 계절에 따라 건조해지는 환경들이다.

더 나아가 이 식물들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하여 유라시아의 지중해성기후대에 속하는 몇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그곳의 초기 농경민들은 선택의 폭이 엄청나게 넓었던 셈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훌륭한 56종의 볏과 식물 중에서 자그마치 32종을 독차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칠레의 지중해성기후대에는 그 같은 우수종이 2종밖에 없었고 캘리포니아와 남아프리카에는 각각 1종씩,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에는 아예 전무했다. 219쪽.

 

인류사에서 결정적인 도약을 가능하게 했던 농경의 도입은 기본적으로 “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식물이 그 지역에 있었느냐?” 하는 전제조건을 묻게 합니다. 유라시아 대륙은 그러한 맥락에서 특혜를 받았지요. 작물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짧은 거리 안에서도 생태학적으로 다양했던 것은 네 번째 이점과도 관계가 있었다. 그것은 소중한 농작물의 야생 조상 뿐 아니라 가축화된 대형 포유류의 야생 조상도 풍부했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서남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지중해성기후대에는 가축화하기에 적합한 야생 포유류의 수가 적거나 아예 없었다. 그와 대조적으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는 대형 포유류인 염소, 양, 돼지, 소가 매우 일찍부터 가축화되었다. 221쪽.

 

따라서 위대했던 건 특정 지역에서 살았던 인종이 아니라 그곳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살지 않았던 다른 대륙과 지역의 여러 인종들은 개발이 가능한 자연적 조건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이러한 기막힌 운 덕분에 유라시아 지역은 “결과적으로 근대에 들어오면서 더 진보된 기술, 더 복잡한 정치조직, 그리고 다른 민족들을 감염시킬 수 있는 더 많은 유행병을 갖게 되었(238쪽)”습니다.

 

하지만 위치빨의 영향력은 단순히 특정지역에 작물화 혹은 가축화가 가능한 자연계가 있었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전파 가능성입니다. 앞서 봤듯이 유라시아 대륙의 전체가 자연적 풍성함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크게는 두 부분,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입니다. 그런데 유라시아는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와는 상반된 대륙이 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대륙 축의 남북인 반면, 유라시아는 동서축입니다. 이러한 지리적 차이는 문명의 전파에 결정적이었습니다.

 

농작물과 가축이 얼마나 빠짐없이 전해졌느냐는 점에서도 축에 따른 큰 차이가 있었다.(···) 서남아시아의 창시 작물 및 가축의 경우, 서쪽으로 유럽과 동쪽으로 인더스 강 유역에는 거의 대부분이 제대로 전해진 반면 안데스에서 가축화된 라마와 알파카, 기니피그 같은 포유류는 어느 것도 콜럼버스 이전에 중앙아메리카에 전해지지 못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농작물은 왜 그렇게 전파 속도가 빨랐을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부분은 바로 이 장의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던 유라시아의 동서 축이다. 같은 위도상에 동서로 늘어서 있는 지역들은 낮의 길이도 똑같고 계절의 변화도 똑같다. 그리고 일치하는 정도는 좀 덜하지만 질병, 기온과 강우량의 추이, 생식지나 생물군계 등도 서로 비슷한 경향이 있다. 273~282쪽.

 

유라시아의 동서 축은 전파에 대단히 유리했습니다. 반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남북 축은 전파에 있어서 끔찍한 조건이었습니다. 남북 축은 기후나 계절 따위가 현격이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작물들이나 가축들이 급격한 환경적 변화를 견뎌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배우게 되었던 부분은 ‘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총’과 ‘쇠’는 얼핏 들어도 문명의 대결에서 결정적이었을 거라고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균이라니. 세균맨?··· 스페인을 비롯한 구대륙의 문명인이 신대륙에 들어가 원주민을 학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한 학살을 자행한 존재가 있었는데, 그것은 구대륙의 병원균이었습니다.

 

스페인인들이 유리했던 것은 바로 천연두 때문이다. 이 병은 1520년에 스페인령 쿠바에서 감염된 한 노예와 더불어 멕시코에 도착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유행병은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즈텍족을 몰살시켰으며 그 속에는 쿠이틀라우악 아즈텍 황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마치 스페인인들은 무적임을 알리려는 듯 스페인인은 내버려두고 인디언만 골라 죽이는 이 수수께끼의 질병 때문에 아즈텍의 생존자들은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약 2000만에 달했던 멕시코 인구가 1618년에 이르렀을 때는 약 160만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고고학적인 발굴과 미국의 해안 지방을 처음 밟은 유럽인 탐험가들의 기록을 자세히 검토한 결과 인디언들이 처음에는 약 2000만명에 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대륙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 한두 세기에 걸쳐 인디언의 인구는 최대 95%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디언들이 죽은 주된 요인은 구대륙의 병원균이었다. 인디언들은 그런 질병에 노출된 적이 없었으므로 면역성이나 유전적인 저항력이 전혀 없었다. 322쪽.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이었던 적은 다름 아닌 새롭게 전이된 병원균이었습니다. 이 병원균들은 대부분 가축화된 동물에게서 인간으로 옮겨진 것들입니다.

 

인류의 근대사에서 주요 사망 원인이었던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의 질병에서 진화된 전염병들이다.(···)

질병은 인간을 죽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므로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중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희생된 사람이 더 많았다. 299~300쪽.

 

농경이 발달하고 가축화에 성공한 문명은 일찌감치 가축으로부터 전이된 병원균을 경험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그 과정에서 병원균의 학살에 대한 면역체제의 발전이 가능했습니다). 구대륙의 문명권이 그랬었죠. 하지만 작물화하거나 혹은 가축화할만한 야생자원이 없었던 신대륙에서는 이러한 병원균은 완전히 생소한 것이었고, 따라서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문자를 비롯한 발명품의 발전도 환경적 차이에 의해 발전의 계기가 판이하게 달라졌습니다. 농경이 가능하게 되고 그에 따라 생산량이 증대된 문명권에서는 문자가 중요한 도구로 부상합니다.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식량 생산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는 세력을 낳았고, 이는 곧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정치 제도의 발전은 문자의 필요의 증대와 맞물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식량 생산량이나 인구 파악 등을 위해서는 간소한 도구가 필요한데

문자는 그 역할에 적합한 발명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앙집권적 정치 체제로 발전하지 못한 문명은 문자가 딱히 필요치가 않았습니다. 인구밀도도 낮았고, 생산량도 낮다보니, 간소화된 추상적 도구가 활용될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죠.

 

그 외의 여러 발명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동기부여가 될 만한 환경이 있어야 합니다. 구대륙에서는 짐을 끌만한 가축들이 있었기에 바퀴가 중요한 발명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가축이 없었던 지역에서는 바퀴가 단지 장난감의 일종이었고, 그래서 기술적 차원에서 발전되기는커녕 사라지고 맙니다.

 

특정 대륙의 문명이 고도로 발전을 하게 되었고, 이 문명권은 다른 대륙의 문명을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대륙별 문명의 현격한 격차를 보고 의아해합니다. “왜 서구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는 동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에 살던 원주민들은 여전히 ‘우가자카 우가우가’하고 있었던 것일까?”하면서요. 그런데 지역적 차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된 합당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발전된 문명권에서 볼 때는 여전히 수렵채집민으로 사는 지역의 인종들이 한심해 보입니다. 무식하고 무력하게 느껴지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인종이 혹은 조상이 열등해서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오랜 경험을 통해 발전해 왔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다만, 그 궤적이 달랐을 뿐이죠. 그건 전적으로 그들에게 전제된 환경적 요인 때문이었습니다. 작물화 혹은 가축화할만한 적절한 야생 동식물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정주형 생활보다 수렵채집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궤적으로 발전해왔던 것뿐이죠. 그래서 이 책의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의 격차가 일어난 이유는 인종적 우월함이 아니라 우연한 환경적 조건이 결정적이었다고 본 것입니다.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얄리의 질문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에 대답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신들은 백인(서구문명)들에 비해 위치빨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2>

 

얄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느 정도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크게 두 가지 숙제가 더 있습니다. 하나는 근대에 세계를 털기 시작한 문명이 초승달 지대의 후예들이 아니라는 점과 두 번째는 오랜 인류사에서 기술 발전의 최전방에 있었던 중국이 최근 250여년 사이에 서양에게 그 지위를 빼앗긴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입니다. 먼저 첫 번째 숙제부터 풀어보자.

 

어째서 유라시아 내에서도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이나 인도가 아니라 하필 유럽의 사회들이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를 식민지화하고 기술을 선도하고 현대 세계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우세하게 되었을까?(···) B.C. 8500년부터 그리스가 흥성하고 그 뒤를 이어 이탈리아가 흥성하기 시작한 B.C. 500년 이후까지, 서유라시아 일대에서 동물의 가축화, 식물의 작물화, 문자, 야금술 등의 중요한 혁신은 거의 모두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 또는 그 부근에서 이루어졌다. A.D. 900년경 이후 물방아가 급격히 늘어나기 전까지는 알프스 서쪽이나 북쪽의 유럽은 구대륙의 기술 및 문명에 중요한 공헌을 한 일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지중해 동부, 비옥한 초승달 지대, 중국 등지에서 개발된 문물들을 받기만 했다. 심지어 1000~1450년에도 과학과 기술은 주로 인도에서 북아프리카까지의 이슬람 사회로부터 유럽으로 흘러드는 쪽이었다. 이 시기에는 중국이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고 있었는데, 식량 생산을 시작한 시기가 거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필적할 만큼 빨랐기 때문이었다.

(···) 물론 유럽이 흥성한 직접적 요인들을 지적할 수는 있다. 유럽은 상인 계급과 자본주의가 발달했고 발명품에 대한 특허권을 보호했으며 절대군주나 무거운 세금이 없었고, 또한 경험주의적 탐구 정신을 중시하는 그리스적·유대교적·기독교적 전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직접적 원인들에 대해 우리는 궁극적인 원인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그곳은 원래 가축화·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 천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이 같은 간격이 사라져간 과정은 강성한 제국들이 점차 서쪽으로 옮겨진 경로를 통해 상세히 더듬어볼 수 있다. B.C. 4000~3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국가들이 탄생한 후 처음에는 힘의 중심이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등의 제국들 사이를 번갈아 이동하면서 줄곧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B.C 4세기 말 알렉산더대왕 치하의 그리스인들이 그리스로부터 동쪽으로 인도까지 정복하면서 드디어 힘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는 돌이킬 수 없는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B.C. 2세기에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힘의 중심은 서쪽으로 더 이동했고 로마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다시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이동했다.

이 같은 이동의 주요 요인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금방 자명해진다. 오늘날에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느니 ‘전 세계 식량 생산의 선도 지역’이라느니 하는 표현이 터무니없게 들린다. 옛날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속했던 많은 지역이 지금은 사막, 반사막, 스텝으로 변하거나 토양이 심하게 침식되거나 염분이 너무 많거나 해서 농업에 부적합한 땅이기 때문이다. 623~625쪽.

 

다소 길게 인용했지만 간략히 말해보면,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성취들은 유라시아 대륙 축에 따라 전파될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점은 사라져 갔습니다. 게다가 오랜 세월에 걸친 기후 변화에 따라 비옥했던 그곳은 점점 척박해져갔습니다. 결국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성취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기후 변화에 따른 이점을 얻을 수 있었던 방향으로 문명사적 힘은 이동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숙제의 경우는 어떨까요? “내가 제일 잘나가”라고 하며 의기양양했던 중국은 어쩌다 반식민지의 치욕을 당했던 걸까요?

 

콜럼버스가 다섯 번째 시도에서 수백 명이 넘는 유럽의 군주 가운데 한 명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 것은 바로 유럽이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대포, 전기 조명, 인쇄술, 소화기 등등 무수한 혁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처음에는 유럽 일부 지역에서 무시당하거나 희한한 이유로 반대에 부딪혔지만, 일단 한 지역에서 채택만 되면 결국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유럽의 분열에서 비롯된 이 같은 결과는 중국의 통일이 빚어낸 결과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중국 조정은 해외 항해 이외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따금씩 중단을 결정했다. 14세기에는 정교한 수력방적기의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산업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났고, 세계의 시계 제작 기술을 선도하고 있던 기계식 시계를 파기 또는 사실상 전폐해버렸으며, 15세기 말 이후에는 기계장치나 기술 전반에 걸쳐 후퇴하게 되었다.(···)

중국이 정치적·기술적 우위를 유럽에 빼앗긴 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부터 이해해야 한다.(···) 유럽의 해안선은 섬에 버금갈 만큼 고립되어 있는 큰 반도가 다섯 개나 있어 매우 들쭉날쭉하며 각각의 반도에는 모두 독립적인 언어와 민족 집단과 정부(그리스, 이탈리아, 이베리아, 덴마크, 노르웨이·스웨덴)가 들어섰다. 반면에 중국의 해안선은 훨씬 완만하며 별개의 중요성을 갖게 된 곳은 인근 한반도밖에 없다. 

중국이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내부의 장애물이 그리 대단치 않았다는 점은 처음에는 이점으로 작용했다. 북중국, 남중국 해안 내륙이 각각 다른 농작물, 가축, 기술, 문화적 특징을 낳아서 그 모두가 차후 통일된 중국에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연결성은 불이익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어느 한 폭군의 결정은 당장 혁신을 중단시킬 수 있었고 또 실제로 그 같은 일들이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유럽의 지리적 분할 상태는 서로 경쟁하는 수십 또는 수백 개의 독립 소국과 혁신의 중심지들을 만들어냈다. 그중에서 어떤 국가가 특정 혁신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또 다른 국가가 그 일을 했고, 따라서 이웃 국가들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에게 정복당하거나 경제적으로 뒤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629~633쪽.

 

유럽의 해안선은 다섯 개의 큰 반도로 이루어져 만성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반면 중국은 큰 대륙과 완만한 해안선 덕분에 통일이 용이했다. 중국의 만성적 통일은 이로운 점이 많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고, 특히 최근 250여년 사이에는 매우 나쁘게 작용했다. 이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균쇠』는 문화인류학 분야의 기념비적인 성과물이라고 평가되는 책입니다. 읽어보니 납득이 됩니다. 꽤나 간소한 핵심 논증의 축이 있고,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방대한 자료를 제공합니다.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지리학, 언어학 등 각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절묘하게 활용하여 총체적이고 통합적인 분석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일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역시 상대적으로 최근의 역사에 대한 부분입니다. 인류사에 있어서 지리/환경적 조건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명이 발달하게 되면서 그러한 자연조건들은 초기 인류사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감소합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게 되는 것이 문명에 의해 파생된 문화적 논리이지요. 예를 들어 사회학의 거장인 막스베버는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태동과 관련해 서유럽과 중국의 종교에 대해 연구한 바 있습니다. 그는 서구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중국의 종교는 자본주의 발전에 유효한 성격을 갖지 못했다고 분석했죠.

 

근대에 와서도 여전히 지리/환경적 영향력이 행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조상들에게 어떤 유산을 물려받았느냐도 굉장히 결정적인 요소로 작동하고 있죠. 다만 그럼에도 오늘날의 문명적 차이의 결을 좀 더 세밀하게 살피기 위해서는 문명이 발전하면서 형성된 문명(문화)자체적 논리도 비중 있게 살펴야 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총균쇠』에 대한 아주 적절한 타격은 아닐 것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최근의 역사에 대해서는 에필로그에 부분적으로 견해를 피력한 것이기도 하고요(<1>에서 정리한 내용이 본 연구물의 핵심이죠). 다만 저로서는 하나의 독서 숙제가 더 생긴 셈입니다. 『총균쇠』의 부피로부터 온 피로감이 조금 가시면 다시 관련 독서를 지속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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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라이더 - 대한민국 세금의 비밀 편 프리라이더 1
선대인 지음 / 더팩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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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조세제도의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대안에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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