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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세트 (반양장) - 전10권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한줄 한줄을 가볍게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책이라 다른 책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야기의 거대함에 질려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아 아쉽지만, 또 반대로 어느 순간 순간은 오히려 그 구체성이 거대함을 짓누르며 머릿속에 남아있다.
커다란 이야기를 다루는 역사소설은 大河小說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크, 역사를 커다란 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한국어의 센스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서로가 성격을 부여받고 또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 받는 수백명의 캐릭터와 탄력있는 기승전결, 썩 맘에드는 결말이 이 소설의 훌륭함을 말해주지만(캐릭터의 입체성이 없는 부분은 좀 아쉽다. 염상진은 너무 완벽하잖아) 태백산맥은 어쩔수 없는 역사소설이다. 왜 한국의 근현대사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넌센스한 역사인지, 왜 20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우리는 빨갱이와 파랭이 놀이를 하고 있는지, 이렇게 조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문딩이와 깽깽이는 왜 허구헌날 쌈박질을 하는지, 왜 노무현은 노무현이고 이명박은 이명박인지, 20세기를 다 보내고 태어난 우리에게 그 힌트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이 있음이 고맙다.
굳이 E.H.Carr를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이렇게 복잡한 한국사조차 커다란 물줄기에 담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 아닐까. 똑똑하다고 설쳐대는 수많은 전후세대들이 사상이란 무엇인가 논하며 왼쪽이 옳으니 오른쪽이 옳으니 하며 댓글을 달아대는 것이란 어쩔 수 없이 유치한 짓일 수 밖에 없다. 책으로 읽어 머릿속에 만들어 낸 사상이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내 육체와 정신이 없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빚어내고 몸에 배인 사상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유치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창한 말을 하기까지는 치열함이 필요하다.
가끔은 작가의 시선조차 편협함이 느껴져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책을 씀에 있어서도 편협한 시선을 깨끗하게 마저 지울수 없는 것이 또 한국의 역사를 말하는 다른 방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가끔 끄적이는 글이 어쩔수 없는 아마추어의 글이라는 것을 감사하게도 팍팍 느끼게 해주는 소설들이 있어서 좋다. 백일동안 맛있게 읽었다 산맥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