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보이진 않지만 나무에 불면 녹색바람이, 꽃에 불면 꽃 바람, 음~ 바람은...방금 나를 지나간 그 바람은 어떤 바람, 됐 . 을 . 까?-'어떤 바람' - 호시노 선생 시/홍순관 노래' 

  여행 첫 날, 봄베이 공항에서 시외 버스가 있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와서 푸나행 버스를 탔다. 봄베이에서 푸나까지는 버스로 4시간 정도...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여정길이 이 넓디 넓은 인도에서는 시내버스 구간만 하단다. 오후에 탄 버스는 밤이 되어서야 푸나에 도착했다. 정류장이라고는 하는데 백열등 하나가 녹이 바란 철제 벤치를 비추고 있을 뿐이다. 분위기가 참 을씨년스러웠다. 어쨌든 말도 안돼는 영어로 전화를 쓸 수 있는 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 언니가 가르쳐준 번호로 전화를 걸자 곧 나오겠다고 했다. 밤인데도 공기가 더웠다. 15분 쯤 정류장에 앉아있자 언니가 왔다. 스쿠터를 타고..."와~ 이게 뭐야, 언니!" 오랜 만에 만난 언니인데도 나는 반갑다는 말보다 그 말이 먼저 나왔다. "오느라 고생했어~" 언니는 외려 환영의 허그로 나를 맞아주었다. 인도에서는 대부분의 교통수단이 오토릭샤나 스쿠터라고 했다. 학교와 집에 자주 왕래해야 하는 유학생들에게는 요금이 부담스러운 오토릭샤보다 처음 구입이 좀 부담스럽더라도 장기적으로 볼때 스쿠터를 끌고 다니는 것이 낫다고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편히 언니의 집으로 올 수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니? 1년 만인가?" 짐을 내려놓자 마자 우리는 서로 근황을 물어보기 바빴다. 언니는, 1년전에 나와 편의점 알바를 같이 하면서 만나 친하게 지낸 사이다. 언니는 다른 나라에서 유학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전문대 졸업후  독학사로 학사 자격을 따냈다. 그리고 다른 어느 곳도 아닌 인도로 유학을 온 것이다. "어쩜 넌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니?" 언니의 말에 나는 그저 웃었다. "그러는 언니는 달라진 거 뭐 있는 줄 알아?" 잘 지내는 것 같은 언니의 모습에 안심이 됐다. 언니는 내게 편히 입으라고 옷도 빌려주고 자리 한 켠도 마련해 주었다. 씻고 나오니 테이블에 밥이 차려져 있었다. 숨기고 싶었는데 꼬르륵 소리가 들렸나보다. 언니는 내가 밥 먹는 동안 내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또 들어주었다. 언니는 이곳에서 주중에는 계속 학교를 다니고 금요일 오후에는 근처 빈민촌에 나가 잠깐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열어주고 온다고 했다. 주말에는 한인교회에서 한인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하는데, 주로 한글을 가르치거나 종이접기 등의 수업을 한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행 첫 날밤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튿날, 언니와 나는 언니가 다닌다는 교회 목사님을 뵈러 가고 학교 구경을 가는 등 꽤 바쁜 하루를 보냈다. 언니의 영향력은 꽤 컸다. 언니는 한국에서는 잘 몰랐지만 의지가지 없는 외국에서 만나는 한인들 특히 한인 교회로 인해 힘을 많이 얻었다고 했다. 그래서 공부이외에 다른 봉사에도 열심을 낸 것 뿐인데 그것을 교회어른들이 기특하게 봐주었다고 했다. 목사님 댁에서 걸한 저녁을 먹고 언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근처의 찻집에 들렀다. 언니는 내게 인도식 밀크티인 '짜이'를 권했다. 맛이 참 독특한 차였다. 우유와 홍차 외에 다른 맛이 났는데 언니는 인도인들이 차 속에 박하향이 나는 독특한 향신료와 생강을 썰어넣고 끓여서라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혀끝에 조금 아린 맛이 났다.  

 "남자 친구는 있어?"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언니가 내게 물었다. "아니요" "왜?" "글쎄요." 언니에게 송우현에 관해 얘기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혹시라도 오해할까봐서였다. "계속 그 편의점에서 일할 거야?" 언니와 나는 서로의 근황을 늘 메일로 나누고 있었다. "영원히 계속할 생각은 없죠... 그냥 당분간만 더 하려구요. " 내 말에 언니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이 보였다. "여기로 안 올래?" 언니의 제안이 좀 뜻밖이었다. "여기로요?" "응. 와서 공부도 좀 하고 나처럼 봉사도 좀 하면 어떨까 싶어서." 제안은 좋았지만 갑작스러워 나는 생각해본다고만 말했다. 이 곳에 와서 공부하는 것도 봉사하는 것도 다 좋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곳에도 여행을 가야겠다는 지금의 마음은 접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그 밤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난 꿈을 꾸었다. 꽃잎들이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촉감이 부드러웠다. 잠시 눈을 깜박여 보니 어떤 사람이 보였다. 그런데 또 조각뿐이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눈물에 촉촉해진 눈과 얼굴 빛, 그리고 꽃 다발. 그 모든 것들이 다 퍼즐같았다. 맞춰지지 않은 퍼즐... 그는 슬퍼보였다. 그리고 그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고, 눈물을 닦을 손수건을 건네고 싶었다. 임자에게 가지 못하고 여전히 그의 손에 들려있는 꽃다발, 꽃잎마저 떨어진 바로 그 꽃다발을 내가 대신 받아주고 기쁘다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한 그 남자가 내게 하는 말을 들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그리고 마음에는 단호한 결심이 섰다. 아침을 먹으며 언니가 그 전날 밤의 제안을 생각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참 성격도 급한 언니였다. "응... 언니... 나 그냥 한국에 있으려구. 언니 제안은 고마웠지만, 그냥 한국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언니는 서운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존중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일정에 대한 기대보다 인도여행 이후에 돌아갈 한국에서의 일상이 더 기대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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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아웃을 하기 전, 그 남자는 잠시 밖으로 나왔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여행에 지쳐서였는지 지난밤은 잠도 잘 잤다.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누르던 외로움에서 조금 벗어난 느낌도 있었다. 그남자는 꿈 때문이라고 믿고 싶었다. 한국과 달리 인도에서는 'coffee house'라고 쓴 곳에서 몇 가지 메뉴의 음식을 팔기도 했다. 그 남자는 인도식 브렉퍼스트 메뉴인 '푸리'를 시켰다. 여행을 오기 전 가이드 북에서 추천해준 몇 몇 음식 중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메뉴여서이기도 했다. 푸리는 감자에 향신료를 넣어 볶은 것에 동글 납작한 반죽을 튀겨낸 빵과 함께 먹는데 잠을 잘자고 일어난 그에게는 꿀맛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커피 하우스를 나오기 전, 그 남자는 다이어리를 열어 앞으로의 일정들을 보았다. 이제는 이곳 데라둔에서 델리까지, 또 델리에서 봄베이까지, 그리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일정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조금은 긴 여정일 수 있으나 그는 또다시 기대에 부풀었다.  

 그 여자는 탑승한 내내 잠을 잤다. 승무원이 몇 번 음료를 권했으나 그저 사양했다. 어떻게 해서든 아픈 걸 이겨야 해... 그 여자의 머릿 속에는 오로지 여행일정만 들어차 있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수많은 밤을 편의점에서 보내면서, 그 시간동안 일하고 책 읽고 돈을 벌다가 6개월에 한 번 여행을 나오면 그 때마다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루는 거라고 여겼다. 그 여자에게도 10년 후, 20년 후의 꿈이 있었지만 아직 젊을 때, 모든 자기 또래의 여자들이 빨리 이루려고 하는 것들을 조금 느리게 이뤄가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독서불패' 중 가장 좋은 공부는 '독학'이며, 그 이후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던 퇴계 이황의 말처럼, 그녀는 과정이 아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길을 택했다. 부모님 도움을 받고 평범한 대학생이 되서 살기보다는 20살 이후에는 자기 힘으로 살아야겠다고도 결심했다. 독서에 힘을 쏟고 여행을 통해 경험한 바를 토대로 좋은 글도 쓸 수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현재 인생에 누구를 사귄다거나 하는 계획은 없었다. 그동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여자가 용기를 내기도 전에 그들은 다른 사람 옆을 채우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 짝사랑으로만 끝나버렸다.  피로가 풀려가는 느낌이 들자 눈을 떴다. 몸도 어느 정도 나은 것 같았다. 목이 탔다. 화장실도 가고 싶어졌다. 그 여자는 잠시 벨트를 풀고 일어났다.  

델리까지는 버스로 이동을 했다. 워낙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그들을 통해 버스를 탈 수 있는 곳도 알았다. 100루피면 싸게 갈 수 있는 버스가 있었지만 돌아가는 길에도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아 조금 비싼 버스를 탔다. 그 남자는 사실 몰랐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어떤 바람'이 그의 색을 바꿔놓을 줄을... 

 그 여자는 기내식을 나온 것을 모두 먹고 곁들여 나온 간식거리나 고추장은 따로 챙겨두었다. 앞좌석에 있던 중년 아저씨들이 고추장을 더 달라고 승무원에게 떼를 쓰는 것을 보고 웃겨 죽는다고 웃었다. 편의점에 있으면 가끔 중년 아저씨들이 와서 라면에 물을 부어 달라는 둥, 도시락을 데워 달라는 둥의 주문을 한다. 지금 저 승무원이 당하는 일도 자신의 입장과 비슷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승무원이 여전히 그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고 저건 배워야겠구나 싶었다. 음식이 좀 들어가고 잠도 충분히 자서였는지 몸도 많이 나아졌다. 이제 얼마 후면 봄베이 공항에 도착할 터였다.  

델리 공항에 도착한 그 남자는 공항 내 점포에서 기념품등을 사기로 했다. 어머니를 위해서는 독특한 모양의 목걸이을 골랐고, 아버지께 드릴 것으로는 코끼리가 박힌 넥타이와 연꽃 무늬핀을 샀다. 형과 자신, 남동생 삼형제를 위해 마직류의 인도식 셔츠를 집어들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는데 계산대 옆에 진열된 반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얗게 빛을 발하는 은가락지들이... 그 남자는 은 가락지 두개를 집어들었다. 봄베이로 가는 내내 그 남자는 자신의 손에 낀 그 은가락지두개를 만지작 거렸다.  

봄베이에 도착한 그 여자의 코에 커리 냄새가 휘돌았다. 와~ 내가 인도에 오긴 왔구나. 그 여자는 주위를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온통 까만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강한 후추향을 느꼈다. "꼬레아?" 여권을 보고 그 여자를 보며 도장을 찍어주는 그를 보고 여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도무지 못 알아듣겠는 발음이다.  짐을 찾아서 그녀는 공항 내에 카페에 잠깐 앉았다. 서두르는 중에 일정을 진행하면 결과가 좋지 않다는 걸 몇 번의 여행을 거쳐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잠깐 숨을 돌리기로 했다. 인도식 커피는 우유향이 풍부하고 단맛이 강해 커피라기 보다는 커피우유에 가까웠다. 다이어리를 보고 그 여자는 택시부스에서 먼저 요금을 지불하고 지정한 택시를 타야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여자는 커피를 마시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비수기는 비수긴가 보네. 우리 나라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구만' 그 여자는 다시 다이어리로 눈길을 돌려버렸다. 바로 그 즈음, 그 남자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 남자의 눈에 자그마한 동양 여자가 눈에 띄었다. '어느 나라 사람이지?' 그 남자는 카운터에서 커피를 시켰다. 인도카페는 한국만큼 다양한 커피메뉴를 갖고 있지는 않는듯 했다.  

그 여자는 비어있는 줄 모르고 컵을 들다가 안을 보고 내려놓았다. 기지개를 켜던 그녀의 눈에 산악용 베낭을 멘 어떤 남자의 뒷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 사람? 설마...' 그를 잠시 보던 그 여자는 자기의 베낭을 메고 일어났다.  

컵을 받아들고 돌아서는 그 남자의 눈에 아까의 그 여자가 자기 베낭을 메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여자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가 앉았던 자리가 괜찮은 듯 해 그곳으로 갔다. 자리에 앉던 그 남자는 의자 밑에 떨어진 책갈피 하나를 발견한다. 구슬이 박힌 독특한 모양의 스트랩이 달린 손수 만든 듯 보이는 것이었다. 스트랩 끝에는 작은 하트 모양 자물통과 열쇠가 달려있었고. 책갈피 앞면에는 초록색 풀섶에 별처럼 박힌 듯한 들국화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뒤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지. 나비는 꽃에서 꿀만 빨아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준단다.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꽃들에게 희망을 중)' 간절히...나비가 되고 싶다...' 

그 남자는 다시 들국화가 있는 사진을 보였다. 그 국화 속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나비가 보였다. 그리고...바람을 타고 국화향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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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소리에 그 여자의 오빠는 눈도 뜨지 못하고 손을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나야, 오빠"  "응...." 여전히 잠에 취해 있다. 그러나 결국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앉아버린다. "어디라구?" 그 다음 행동은 더 빠르다. 지갑을 집어들고 문도 열어놓은 채 방을 나가버린다. 

 인도에서는 술이 금기시되어 있다고 했다. 이 밤, 그 남자는 맥주가 간절했으나 어디에서도 술을 팔지 않았다. 아니, 관광객이 많은 곳이니 팔만한 곳도 있을 법 했지만, 맥주를 목적삼아 정처없이 방황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의 내면에는 술이 아니어도 취할 만큼의 슬픔이 있었고, 다른 무엇으로는 채우고 싶지 않은 성스러운 감정이 있었다. 그것이 타지마할이 주는 감흥인지 아니면 스스로 너무 센치해져서 그런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맥주를 마시고 싶었고, 정 마실 수 없다면 그냥 이대로 자신의 시간을 흐르도록 내버려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의 파티마는 사막에서도, 이곳 타지마할에도 없었다. 단지 하나 깨달은 사실이라곤, 군을 제대하고 공부를 끝내고 직장을 잡아 안정권에 들어가길 원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들과 달리 그는 이미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의 부모님, 친구들, 동기들 모두 자기의 이런 모습을 본다면 뭐라고 하겠는가? 그는 조금 더 생각에 문을 열어둔다.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지금의 모습을 그저 인정하겠노라고...  

"지금 제 정신이야?" 그 여자의 어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그 몸으로 어딜 가겠다고 그래? 제 정신이냐고 지금?" 그 여자는 어머니가 야단치시는 중에도 자신의 짐을 둘러보았다.  그 여자는 말리는 간호사를 뿌리치고 병원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와서는 마중 나온 오빠에게 요금을 부탁했다. 그리고 지금 여행을 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 나 가야돼. 야단 좀 그만 쳐."  그녀는 어머니를 닮았다. 아버지 없이 친정집안의 도움을 마다하고 억척으로 자녀들을 키워냈던 어머니를 그 여자는 가장 존경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 여자도 열심히 살았다. 그만큼 어머니를 닮고 싶었지만 배우지 않아도 내면화된 어머니의 고집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 가끔 어머니와도 충돌을 일으키게 했다. "어딜 나가, 그 몸으로?" 어머니는 날을 잡으신 듯 했다. "엄마, 내가 간다잖아. 내가 괜찮다잖아. 그니까 기분좋게 보내줘." 그 여자는 정색을 하고 어머니를 바라본다. "안돼!" 어머니도 단호하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자는 하루새 이미 수척해져있는 상태다.  

그 남자는 방으로 돌아와 '연금술사'를 읽는다. 산티아고가 피라미드를 앞에 두고 구푸러져 울고 있는 장면을 읽으며, 타지마할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그 남자는 잠시 눈을 감는다. 피로가 밀려오는 듯 해 잠시 잠이 든다. 그는 지금 걷고 있다. '이건 내 꿈이야...' 잠이 들었으면서도 중얼거린다. 걷고 있다는 사실만 인식할 뿐 어디를 왜 가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자신의 시야에 들국화가 별처럼 박힌 풀섶이 보인다. 사방 군데가 그러하고 자신의 발은 노란 흙을 밟고 있다. 곧이어 눈에 보이는 하늘, 구름... 들판이다. '누구나 꿈에서 그리는 곳에 나도 왔구나...' 그 남자는 또 피식 웃는다. 그 때 그의 눈에 어떤 사람이 보인다. 그 사람은 손바닥만한 잎들을 모아 잎줄기로 그것들을 엮는다. 처음에는 초록풀잎들밖에 안 보이더니 잎으로 만든 담요같은 것이 보인다. 그건 그냥 잎으로 만든 거라 만들어놓고 깔거나 덮으면 금방 찢어지고 망가질거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 남자는 차마 그말을 입밖으로 낼 수가 없다. 그것을 만드는 손길이 굉장히 분주했고, 그 사람은 그것을 평생 쓸 것처럼 공을 들여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작업하는 모습은 빨려들어가리만큼 묘한 매력이 있었다. 그 남자는 어느 새 그 앞에 앉아 구경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저 손만 보였다. 작고 아담한 손. 자기 손의 반밖에 안될 것 같은 작은 손. 그래서 어린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윤기나는 검은 눈에 금방 스치던 미소... 그 남자는 그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눈과 미소와 작은 손.  그 남자는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만든 풀 담요를 그 남자의 무릎에 덮었다.이상하리만치 평온해지던 그 순간, 그 남자는 잠을 깼다. 창 밖으로 모슬림들의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같은 것이 들렸다. 꿈에서 이어지던 평온은 다시 그를 잠으로 이끌었다.  

차 안은 조용했다. 그 여자는 말없이 뒷 자석에 누워 있었다. 오빠는 말없이 운전을 하고 있었고 그 옆의 어머니도 차창 밖만 보고 계셨다. 어색한 시간이었지만, 그 여자는 앞으로 있을 여행 이외에는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결국 그 여자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 여자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꼭 삼시 세끼 밥을 챙겨먹고 밤에 이동하지 않으며 약도 꼬박꼬박 먹겠다고 어머니와 단단히 약속을 했다. 그길로 어머니는 카운터에서 졸고 있던 간호사를 깨워 그 여자에게 주사를 한 방 맞게 한 다음, 당직 의사의 처방으로 사갈 수 있는 모든 약을 구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 여자는 진이 다 빠졌다. 그 여자가 그렇게 누워 깜빡 잠이 들었을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부치고 보딩 패스를 받은 뒤 그 여자는 오빠에게 커피를 부탁했다. "여행 가니까 좋아?" 커피를 건네주며 오빠가 묻는다. 어머니는 화장실에 가셨고 어떤 이야기를 묻고 답해도 상관없을 상황이다. "그럼 좋지." 그 여자가 배시시 웃자 오빠도 한 번 더 웃는다."난 잘 모르겠다. 네가 왜 상태 안 좋은데도 가고 싶은 건지." 그 말에 그 여자가 또 배시시 웃는다."그럼,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가야지..." 그 여자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에 몸도 더워지는 듯하다. "아 참, 그런데 송우현씨라고, 아까 전화왔던데..." 그 여자는 커피 컵을 내려놓고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한다. "어? 진짜? 아까는 왜 못봤지?" 사실 그녀는 오빠가 송우현의 이름을 언급한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누구야?" 그 여자는 통화목록에서 번호뿐인 그의 존재를 모조리 삭제해버렸다. "어, 그냥..." 그는 대답을 피하고 커피를 또 한 모금 마신다. "난 너 남자친군줄 알았는데?" 오빠는 정말 궁금한 모양이다. "아니야, 무슨..." 그 여자가 웃어버리고 다시 커피를 마시자 오빠도 더는 묻지 않기로 한다. "관심이 없는가보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왜 없겠어..난 단지, 내 손을 잡아줄 따뜻한 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인걸...  그 여자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어머니가 오시고 셋은 잠시 담소를 나눈다. 그리고 그 여자는 보딩을 한다. 자리에 앉아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본다. 송우현... 만약 송우현이 입술이 아닌 손을 먼저 잡았다면 그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그녀는 나지막히 한숨을 쉬고 휴대폰 전원을 끈다. 그래, 난 단지 내 손을 잡고 같이 걸어줄 사람을 원했을 뿐이야...그는 다시 소리도 내지 않고 혼잣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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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는 타지마할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야간에 불켜진 타지마할을 볼 수 있는 곳이 누군가의 블로그에 나와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그 남자는 자신의 발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쿠웅.. 쿠웅... 그 남자가 드디어 타지마할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갔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사진에서보다 더 크고 웅장한 모습의 타지마할이 좌중을 압도하는 듯 했다. 그 남자는 카메라를 들어 한 컷을 찍고 멍한 듯 보다가 다시 한 컷을 찍었다. 어느 여인의 죽음을 아름답게 승화한 그 곳. 그 여인의 죽음을 두고 안타까움과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했던 한 남자의 뜨거운 가슴을 보는 듯 했다.  

 그 여자는 떨어지는 수액을 하염없이 보다가 한숨을 내리쉬었다. "땅 꺼지겠다. " 오빠는 또 웃어보인다. 어머니는 이왕에 입원해 있는 거 일주일 채우라고 그 여자의 물품을 챙기러 집으로 가신 터였다. "엄마가 너 몸 추스르라고 이러시는 거니까 너무 그러지 말고 쉬어" 그 여자는 다시  한 숨을 쉰다. "속상해 죽겠어. 조금 있으면 비행기 타러 나가야 하는데 어떻게 그래?" 그 여자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나중에 가면 되지, 나중에. 너 며칠 더 쉰다고 없어질 나라도 아니고, 표 취소해 봤자, 손해 많이 보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일단 몸부터 어떻게 해봐." 그 여자는 돌아누워 버린다.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다.  

그 남자는 말없이 그 곳에 서 있었다. 보면 볼수록 정말 아름다운 전경이었고, 그 시간 속의 자신은 한 없이 작아진 듯 했다. 그 남자의 가슴은 벅차 있었다. 단지 그것을 보고 서 있는 자신을 깨닫는 것 만으로도 한 없이 행복한 자신을 느꼈다. 심지어 아름다운 여인과 그를 사랑하는 남자의 지순한 사랑이 영혼을 채우는 움직임처럼 그를 흔들어 놓았다. 그는 그 순간 말하고 싶었다. 그가 지금 맞닥뜨리고 있는 이 황홀한 시간을, 저 아름다운 타지마할을, 그를 보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달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구 쏟아내고 싶었다.  

그 여자의 오빠가 병원을 나서고 어머니도 그 여자의 고집으로 함께 집으로 돌아간 그 밤, 그 불꺼진 응급실  한 켠에서 그녀는 잠시 혼곤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꿈을 꾸었다. 떨어지는 눈물 방울, 그 뺨,  처진 어깨, 그리고 그의 손에서 시들어 흩어지는 꽃잎들...작은 국화꽃잎들... 그리고 바람...시들었음에도 진하게 퍼지는 국화향을 담은 바람...그 눈... 그 여자는 그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조각조각 흩어지는 퍼즐같았다. 한없이 슬프고 안타까워 그녀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 남자는 옆을 돌아보았다. 아무라도 그의 곁에 있으면 말해주고 싶었다. 그 누구라도 어떤 인연이라도 만나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를 사랑하고 이 순간 뜨겁게 입맞추고 싶었다. 그 때... 바람이 불었다.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그 누구도, 어떤 사람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없었다. 바람만이 그를 맞아 주었고, 그의 가슴으로 썰렁한 기운이 파고 드는 듯 했다. 그 남자는  그 순간 바람으로부터 국화향을 맡았다. 그리움이 머릿 속과 가슴 속을 꽉 메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 '아... 제발 누군가 내옆에...' 그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그 여자가 잠에서 깼을 때, 간호사가 보였다. "괜찮아요? 많이 아프세요?" 둘러보니 다른 환자들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 한 밤중에, 그것도 곤히 자고 있던 체구 작은 여자가 소리조차 내지 않고 숨죽여 울더란다. 그 소리가 너무 애처로워 자던 사람들 모두가 깨었단다. "주사 한방 놔드려요? 많이 아프시면 진통제 한 방 놔드릴께요." 그 여자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과 젖은 베개를 본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 여자가 일어나자 간호사가 뭐라고 한다.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에요. 아프지 않아요...다 나았다구요" 그 여자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꺼내든다. "아직 안돼요. 지금 과로하셔서 일주일은 더 계셔야 한다고 했다구요" 간호사가 말하자, 그 여자는 단호하게 말한다."아니요, 괜찮습니다. 이젠 가야겠습니다." "어디로요?"간호사가 묻자 그 여자가 돌아본다."인도요, 여행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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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자신의 정리된 짐을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비행기를 탈 수 있다. 그 여자는 밤새 일하고 왔음에도 힘든 줄 모르고 짐을 쌌다. 여행을 가야할 이맘 때면 그 여자는 두배의 에너지가 솓는 듯 했다. 잠이 좀 부족한 듯 해도, 먹을 걸 좀 못 먹은 듯 해도 그 여자는 늘 힘이 났다. 눈꺼풀이 잠깐 감기는 듯 해 누워서 침대 바로 옆에 난 창 밖을 봤다. 하늘이 오늘은 더 파란 듯 보였다. 그 여자는 그 하늘을 보며 내일 이 시간에 비행기 안에 있을 자신을 떠올려봤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그 여행이 자신에게 가져다 줄 선물같은 인연들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드리고...잠이 들었다.  

 델리에서는 택시를 잡는 것조차 힘이 든다. 다행히 기차에서부터 함께 해 온 가족들이 있어 그 남자는  공항에서 출발하는 데라둔행 밴을 구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 고맙다는 성의 표시를 해야 할 것 같아 가지고 있던 여비 중 100루피 짜리 지폐와 티셔츠 한 벌을 그들에게 건넸다. 그 가족의 아버지는 완고한 사람인듯 했으나 이 동양인 청년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느낀 듯 말없는 미소를 지었다. 밴에는 자신 외에도 타지마할로 향하는 몇 몇의 외국인 여행객들이 있었다. 동양인도 있었지만 한국인은 자신 하나였다. 3월이 다되어가는 지금, 한국의 청년들은 새 학기 준비에 정신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복학을 앞둔 그도 가슴이 뛰는 듯 했다. 다시 물병을 꺼내 마셨다. 물이 얼마 없었다. 차로 세시간 쯤 가야 하는 타지마할. 노중에 한 번 쉬면서 식사를 한다는 말에 그 남자는 다시 마음을 편히 먹었다. '물은 그 때 한 병 더 사면 돼' 시간이 어서 가기를 바라며 그 남자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그 여자는 두런두런 말소리에 잠이 깼다.  저녁 무렵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어지러움에 다시 누워버렸다.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목과 턱을 만져보았다. '이런....'그 여자는 돌아누워버렸다. 열이 나고 편도가 부어있었다. 당장 내일 비행기를 타고 꽤 터프한 여행을 해야했다. 1년을 계획하며 준비했고 이제 정말 갈 수 있게 됬는데 그만 병이 나버리고 만 것이었다. 그 여자는 기가 막혀서 꼼짝않고 한 동안 누워있었다. '이제 어쩌지...' 밖에서는 퇴근하고 돌아온 어머니와 오빠가 함께 저녁을 준비하는 듯 싶었다. 씻는 소리, 써는 소리, 볶고 끓는 소리 사이사이로 두 사람의 말과 웃음 소리가 났다. '제발 도와주세요....' 그 여자는 조용히 기도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섰다. 포장이 안된 도로를 구비 구비 넘다 선잠이 깬 그였다. 먼지 때문에 목마저 칼칼해 물이 간절했던 그 즈음, 드디어 중간지점에 도착한 거였다. 그 남자는 내리자마자 물을 한병 사고 식당에 들어갔다. 화장실을 찾았지만 변변한 곳이 없었다. 현지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를 한 후, 손을 대고 씻었다. 같이 갔던 외국인들도 그 남자와 같은 절차를 밟는 듯 했다. 관광객이 꽤 가는 곳임에도 외국인을 배려하지 않는 그들의 무지함을 탓하는 서양인의 말에 내심 동의하면서도 헛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이들의 나라에 초대하지 않아도 온 것은 자신들이 아닌가...아침 이후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 남자는 몹시 허기가 졌다. 치킨 커리와 난 몇장을 시켜 식사를 일찍 끝낸 그는 짜이를 한 잔 마시고 한 숨을 돌렸다. 타지에 있다 보면 우리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한다지만, 여행 중의 긴장으로 그는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후가 되어가고 있었고 하늘에 붉게 석양이 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짐, 그 외에 외국인들, 인도인 가족들, 한국의 가족들, 친구들....불현듯 여행 오기 전 숱하게 읽었던 '연금술사'가 생각났다. 표지에서 양치기가 바라보던 하늘, 그 이상향을 그 남자는 보는 듯 했다. 자연이여,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가...그 남자는 나직이 중얼거리고 자연이 하는 말을 들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순간이 영원이 된 듯 했다.  

"너 왜 이래?" 식사 준비를 끝낸 그 여자의 오빠가 방으로 들어섰을 때, 그 여자는 열에 들떠있었다." 정신 차려 봐! 어디가 어떻게 아픈거야?" 오빠는 계속 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오빠..." 그 여자는 괜찮아 보이려고 했다. "나 괜찮아... 좀 쉬면 나을 거야..." 그 여자는 일어나 앉았다. 그러나 몸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질 않아 다시 누워 버렸다. "안되겠다! 얘, 동생 좀 업어. 병원 가야지 안되겠어." 어머니의 말씀에 오빠가 동생을 업는다. 축 늘어진 동생의 몸이 무거워야 할 텐데, 의외로 가볍다고 느낀다.  

그 남자가 밴에서 내렸을 때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그의 몸이 뻐근했다. 그 남자는 우선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타지마할 근처의 숙소는 비쌌다. 그렇지만 달리 선택이 없었다. 그 남자는 방으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다. 하루 온 종일 먼지를 맞고 온 자신을 깨끗이 씻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더 오래 물을 맞았다. 샤워를 끝내고 그 남자는 여권과 간단한 짐들을 챙겨서 숙소를 나왔다. 무엇이든 먹고 싶었다. 지치고 힘이 들었지만 꼭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 여자가 눈을 뜨자 바로 어머니와 오빠의 얼굴이 보였다. 여행을 앞두고 이게 도데체 무슨 꼴이람...그 여자는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렇게 쳐다보면 무안하잖아" 고개를 돌리는 그 여자의 말에 두 사람은 기가 막혀했다. "얘가, 얘가. 사람을 걱정시켜놓고는 한 다는 소리가." 어머니는 그 여자의 귀를 잡아당겼다. "아~ 아퍼~." 오빠는 웃고 있었다. "살만 하냐? 영양제 맞으니까 기운이 좀 나나부지?" 그 여자는 머리 위로 보이는 링겔 병을 보았다. "엄마, 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내일 아침에 비행기 타려면 조금 있다가부터 준비해야 돼." 그 여자는 조심 스러웠다. 제발 자기를 막아서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 말이 되니? 이 몸으로 어딜 가겠다고 그래? 이 참에 쉬고 여행도 가지마. 아니, 너 그 밤에 하는 알바도 그만 둬!" 이래서 조심 스러웠던 거였다. 그여자는 오빠의 얼굴을 보았다. 오빠도 그 순간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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