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진실만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한 진실을 담은 책을 써야 한다. 도스토옙스키가 던진 물음. 사람은 자신 안에 또다른 자신을 몇 명이나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그 다른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까?‘ 이 물음을 이제 나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악은 분명 매혹적이다. 그리고 선보다 솜씨가 뛰어나다. 마음을 더 잡아끈다. 내가 전쟁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세계에점점 더 깊이 빨려들어가는 사이, 다른 것들은 모두 빛을 잃고 흐릿해지며 시들해졌다. 거대하고 무자비한 세계다.

바로 그곳, 따스한 사람의 목소리, 과거가 생생히 반추되는 그목소리 속에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감춰져 있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삶의 비극이 담겨 있다. 삶의 혼돈과 욕망이. 삶의 유일함과 불가해함이. 목소리 속에 이 모든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진짜 원본들이.
나는 우리의 감정들로 사원을 세운다……… 우리의 염원과 환멸로, 동경들로, 존재했지만 언제 슬그머니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것들로,

그들은 누구인가. 러시아인, 아니면 소련인? 아니, 그들은 소련인임과 동시에 러시아인이었고, 벨라루스인이었고, 우크라이나인이었고, 타지키스탄인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을 사람도 불쌍하고 읽지 않을 사람도 불쌍하고, 그냥모두 다 불쌍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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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원 루닌이 함께 있었는데,
그가 소비에트 병사는 결코 적에게 항복해선 안 된다는 당의 지령을 우리에게 읽어주었지. 우리에게포로란 없다. 반역자만 있을 뿐이라는 스탈린 동지의 명령이었어. 그러자 병사들이 권총을 꺼내들었어…… 그런데 루닌이 말리는 거야. 그럴필요 없네. 살아야지. 자네들은 젊으니까. 하지만 정작 자신은 총을 쏴스스로 목숨을 끊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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