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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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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나는 완도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달 남짓 일했던 학교에서 재계약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미 내정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기에 일단 떠나기로 했다. 체념과 기대가 뒤섞인 채로.
터미널을 벗어난 버스가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하자 이어폰을 꽂고 팟캐스트를 들었다. 인트로가 끝나고 익숙한 멘트가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빨간 책방 이동진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책은 교수님 이야기입니다. 재미없을 것 같죠? 근데 아주 재밌습니다. 흡입력이 남달라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책이길래?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라는 책입니다."
낙방이 예정된 들러리 면접을 앞둔 그 길 위에서 나는 그렇게 <스토너>를 처음 만났다.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 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영문학개론을 듣던 스토너가 이 질문을 받는 장면에서 숨이 멈췄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완도에서 돌아오자마자 들른 도서관에서 펼쳐본 <스토너>는 그랬다. 처음인데 낯설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의 이야기처럼. 이름부터 그랬다. Stone, Stoner. 삶의 모진 풍파를 홀로 버텨내는 바위같은 사람. 고지식하고 융통성없는, 어딘가 답답한 인물. 그런 스토너에게 문학이 말을 건넨다. 신탁은 그렇게 찾아왔다. 그는 금세 매혹당한다. 이디스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하지만 그는 깨닫는다. 문학도, 이디스도 결국은 평생을 두고 감내해야 할 몫이라는 사실을.
신탁은 어떤 면에서 형벌에 가깝다.
"그렇게 문학에 조예가 깊으십니까?"
면접 당일 교감 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 제 나름 문학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과는 역시나 낙방이었다. 그런데 왜 나는 <스토너>를 읽으며 그 순간을 복기하고 있나. 그것도 아처 슬론이 스토너에게 던진 질문 속에서. 전혀 다른 맥락의 두 질문 앞에서 나는 고민했다. 문학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아니면 실패가 예정된 삶을 지속하는 스토너에게서 동질감을 느낀 걸까?
스토너의 삶은 평탄함과는 거리가 멀다. 학자로서 성취는 미미했고, 이디스와의 결혼은 균열투성이였으며, 딸 그레이스의 방황은 그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캐서린과의 사랑은 짧았고, 로맥스와의 대립은 그의 완패로 끝난다. 그럼에도 스토너는 그 무엇도 내팽개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를 악물고 버틴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받아들인다. 불행을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기본값으로 끌어안는다. 스토너의 삶은 체념이 아니라 수용에 가깝다.
누군가는 그의 인생을 '패배자의 초상'이라 폄하할지 모른다. 유연한 처세와는 담을 쌓고 살았던, 바위 같은 뚝심이 문제였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삶에서 숙연함을 느꼈다. 아처 슬론의 질문은 스토너에게 신탁이었다. 신탁은 일종의 형벌이다. 그럼에도 스토너는 그 형벌을 끌어안고 살아갔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단 하나의 삶이기 때문에. 거듭된 패배를 통해 스토너는 자신만의 신탁을 완성했다.
"그렇게 문학에 조예가 깊으십니까?"
2015년 여름, 완도에서 받았던 질문 앞에서 나는 말없이 <스토너>의 책등을 쓰다듬는다. 바위처럼 우직한 한 남자의 생애가, 그가 감내했던 신탁의 무게가 이미 충분한 대답이 되어주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