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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천주교 출판사 - 프랑스 선교사 훈민정음 인쇄 출판 이야기
가톨릭출판사 역사 연구회 지음, 조광 감수 / 가톨릭출판사 / 202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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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어느 사랑방. 책상 위에 놓인 한 권의 책을 두고 선비들이 토론을 벌인다. 누군가는 서양의 천문과 지리에 관심을 보이고, 누군가는 천주라는 낯선 존재를 두고 의견을 내놓고, 또 누군가는 반박한다.
서로 다른 생각이 오가는 가운데,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펼쳐진 책을 노랗게 물들인다. 종이를 넘기는 손끝에도 같은 빛깔이 번진다. 빛은 어느새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겨자씨처럼 환한 빛깔로.
그들은 알지 못했다. 중국에서 건너온 한 권의 책이 훗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닿게 될지를. 소수의 지식인 손에 머물던 서학이 우리말로 옮겨지고, 한글로 필사되고, 인쇄되어 퍼져 나가게 될 줄은.
한문 서학서를 통해 싹튼 신앙은 훈민정음으로 뿌리를 내렸고, 조선에 들어온 프랑스 선교사들의 인쇄 출판을 거치며 가지를 뻗었다.
<조선 천주교 출판사>는 그 긴 여정을 기록한 책이다.
세례를 받은 지 이십 년이 넘었지만, 천주교가 어떤 과정을 거쳐 조선에 뿌리를 내렸는지 나는 거의 알지 못했다. 선교사가 먼저 들어와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천주교를 접한 사람들이 스스로 교리를 공부하고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사실도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구체적인 맥락으로 다가왔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한글을 대하는 프랑스 선교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프랑스어와 어순과 문법이 다른 조선말을 공부하고, 문법을 정리하고, 사전을 만들었다. 목판 인쇄소를 세워 기도서와 교리서를 펴내기도 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 모든 수고를 감당하게 했을까.
나는 그 동력을 사랑이라 부르고 싶다. 하느님께 받은 은총을 세상 모든 이와 나누고 싶은 마음. 국경을 초월한 사랑은 낯선 언어를 익히게 했고, 글자를 새기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수고는 책이라는 물성으로 드러났다.
사랑방에 떨어졌던 겨자씨 한 톨이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기 시작한 순간이다.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쓸어본다. 양각으로 새겨진 훈민정음이 손끝에 느껴진다. 너무나 익숙해서 당연한 글자가 새롭게 여겨진다. 이 문자 안에는 낯선 언어를 배우고, 글자를 새기며, 책을 만들어낸 사람들의 시간이 녹아 있다.
내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피와 땀과 눈물로 점철된 까마득한 시간.
오래전, 조선의 작은 사랑방에 떨어진 한 톨의 겨자씨는 나무가 되었다. 하느님의 신비와 사랑을 품은 한 그루 나무. 나는 지금 그 나무 아래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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