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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 개정판 ㅣ 스피노자 선집 5
베네딕트 데 스피노자 지음 / 서광사 / 2007년 10월
평점 :
묻는다.
이 책이 어떻게 '개정판'인가? 묻긴 했지만, 독자는 출판사와 역자로부터 납득할 수 있는 대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전혀 "개정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구판과 비교해 보면 알겠지만, 그저 오탈자 바로잡고(그나마 거의 눈에 띄는 부분도 아니다) 편집과 장정을 바꾼 책에 불과하다. 번역은 거의 그대로이고, 역주도 바뀐 것이 없다. 결국 오자 수정과 몇몇 번역어 수정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런 책을 출판사는 "개정판"이라고 하는가?
책의 뒤 표지에는 "이번 개정판에서는 다시 한 번 원문을 참조해서 가능한 한 오역을 바로잡고 해설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을 보충하려고 하였다"라고 써있다. 그렇다. “원문을 참조해서 가능한 한 오역을 바로잡고 해설에 있어서도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 “개정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역자나 출판사는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보충했다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려고 하였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부분을 얼마나 개역했는가? 새로 판을 뜨고 장정을 바꾸면 "개정판"이라 하는 것이 서광사의 관례인가?
그런데 "개정판을 내면서"라는 옮긴이 서문을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나온다. "옮긴이는 스피노자의 철학이 현대 철학에서 재조명되고 있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16년 전에 우리말로 옮긴 <에티카>를 다시 한 번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잘 보시라. 역시 '손질했다'는 것이 아니라 '손질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결과물로 미루어 역자와 출판사가 손질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거의 안하셨다는 얘기가 되겠다. 그래도 "손질했다"고 말하진 않았으니 변명할 거리는 있는 것인가?
그리고는 옮긴이 서문 마지막 부분에서 "옮긴이는 <에티카>의 초판에 나타난 오자(誤字)들을 수정하였으며 위에서 짧게 언급한 개념들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 몇 가지 용어들을(예컨대 노력, 욕망, 충동 등)을 정리하려고 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다.
여기 '정리하려고 하였다'는 식의 표현은 매우 두루뭉수리해서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다. 번역 용어를 바꿨다는 것인가? 아니면 역주나 역자 용어해설 같은 곳에서 그 용어들에 대해 설명했다는 것인가? 구판과 비교한 결과 후자는 아니다. 그렇다면 기존에는 다른 번역어를 썼는데, 이번에 '노력, 욕망, 충동'등의 번역어로 대체했다는 뜻인가? 역자와 출판사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혀주어야 했다. 그렇다 해도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기는 여전히 미흡하겠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알라딘의 책 소개를 한 번 보자. "데카르트, 라이프니츠와 함께 대륙합리론을 대변하는 근대철학자인 스피노자의 저서들 가운데 그의 합리주의 철학이 가장 체계적으로 나타내며 윤리학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책. 1990년에 첫 출간한 것을 오자를 정정하고, 용어를 정리하여 재출간하였다." 그렇다. 이게 정확한 책 소개에 가깝다. 그저 오자 정정하고, 노력, 욕망, 충동 등의 몇몇 용어를 정리하여 “재출간”한 것이다.
이 책과 함께 김기현의 <현대 인식론>(민음사)도 함께 구입했었다. 이 책 또한 기존 책의 내용은 오자 정도만 바로 잡고 재편집하고 새롭게 장정해서 나온 것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써있다. "신장판"이라고...
서광사에서 이 번에 새롭게 출간된 <에티카> 또한 "개정판"이 아닌 "신장판"이라 했어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상도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