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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의 기술 - 다큐멘터리스트는 무엇을 발견하고 어떻게 설득하는가
김옥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질문의 예술 텍스트클럽 다섯번째 시간
출연: 김옥영 다큐멘터리스트, 시인 / 진행: 유희경 시인
파랑새극장 2021/4/8(목) 19:30분
*이하 내용은 강연 내용을 부분적으로 타이핑한 것이라 맥락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으며 받아적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을지 모릅니다.
유희경: 공공그라운드 다섯번째 질문의 예술을 준비하면서 기획자들은 발견, 이라는 단어를 질문으로 치환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다른 해석, 다른 발견의 필수적 태도는 무엇일까? 그 키워드는 질문이었고 그 질문을 발견해나가는 일이 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김옥영: 사실은 제가 책을 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책이 안 나왔으면 작년 저의 생산실적은 0이었을 텐데. 제가 원래는 시인이었어요. 시 쓰다가 느닷없이, 시인들은 시가 돈이 안 되니까 알바를 했는데 방송사를 갔더니 부장님이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데 다큐멘터리를 하라고 하셔가지고 하다보니까 이게 굉장히 재밌는 거예요. 잘 보이려고 여기저기 뒤져봤는데 책이 없었어요. 외국 서적은 한국과 상황이 다르기도 하고. 경력이 쌓이고 다큐가 이런 거구나, 깨닫기 시작하면서 저처럼 답답할 후배들을 위해 책을 써야겠다, 그 생각을 한 지가 20년은 된 거 같아요. 너무 바쁘니까. 한번은 어느 재단에서 책을 쓰라고 자금도 지원했는데 결국 제가 쓰지 못해서 돈을 반납했어요. 포기했어요. 훌륭하신 분들이 많으니까 누군가가 쓰겠지 했는데 책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도킹이라는 인터넷 웹진에서 저를 이렇게 충동질을 하면서, 선생님 책을 한꺼번에 쓰려고 하면 힘들고요. 연재를 하면 쉽게 쓸 수 있습니다, 꼬드겨서. 정말 3년 동안 죽을 뻔했습니다. (웃음) 마감이 올 때마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그걸 했는데 결과적으로 책이 나왔어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에스제이문화재단과 도킹 편집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희경: 다큐멘터리스트로 통산 40년.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이 일을 하는 건 두 가지겠죠. 돈이 되거나 성취감/만족감이 있거나. 돈은 안 될 거 같은데 이걸 하게 된 추동력이 무엇입니까. 그게 발생한 첫 순간이나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지요.
김옥영: 어떤 일을 계속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매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어딘가에 매혹되는 것이거든요. 방송사에 처음 들어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그때는 필름의 마지막 시대였어요. 방송도 영화처럼 필름으로 만들 때였고. 저는 방송사에서 시키는 대로 밤샘 준비를 해서 글을 쓰라고 해서 방송은 다 그렇게 하는 줄 알고 또 했죠. 필름을 조금 잘라서 붙이고 그걸 보고 글을 쓰라고 하고, 또 잘라서 보여주고 글을 쓰라고 하고. 그런데 그 프로가 문학기행이었어요. 윤동주를 다루고 있었고 제가 너무 좋아하던 시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장고형이어서 하룻밤만에 원고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데 하룻밤 만에 편집과 원고가 끝났어요.
필름을 붙일 때는 소리가 없어요. 그림만 조각조각 있는 걸 보고 글을 썼는데 종편(종합편집)할 때 음악과 내레이션과 자막과 오디오가 다 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눈앞에서 봤으니. 이건 그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거였어요. 거기 매혹되었다고 생각해요. 시를 써서 보통 사람보다 이미지에 익숙한 사람이었는데 그게 마음속에 있는 거였지 눈앞에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때 영상 이미지가 가지는 힘에 매혹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다큐멘터리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이 장르의 목표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다큐를 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아요. 그런데 가끔 진짜 그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광주는 말한다>라는 다큐멘터리를 처음 했어요. 한국방송 중에서는 처음으로 광주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거예요. MBC에서 한 편, KBS에서 한 편. KBS에서 제가 했어요. 부들부들 떨었거든요. 너무 막중한 사명감 때문에. 최근 <김군>이라는 영화를 한 감독이 자기가 기사를 하나 찾았다고 보내줬어요. 한겨레 기사였는데 놀랍게도 그 당시 다큐 시청률이 칠십몇 프로였대요. 전남 지역은 구십구프로. 말해지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강했던 거예요. 방영하던 시간에는 광주 시내에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고 했거든요. 다 그걸 보느라. 우리가 다큐에 대해 갖는 기대와 열망과 힘을 그때 처음 느낀 거 같아요. <광주는 말한다>가 저의 필모그래피의 첫번째에 놓이는 이유가 다큐멘터리가 우리 사회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느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활자 매체에서는 광주를 다루었지만 영상으로는 다루지 않았어요. 광주의 실체가 무엇인지 실상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기총소사가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실증적 증거로 다루는 다큐멘터리였고. 마지막 도청 앞에서 군가를 부르는 장면이 지금까지 잊히지 않거든요.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힘, 우리가 앞으로 이런 걸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그때 막연하지만 강력하게 느낀 것 같아요.
최근에는 재작년에 제가 치매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했어요. 우연히 외국에서 돌봄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다룬 동영상을 봤어요. 누워만 있던 환자가 이 사람이 두 달 케어를 하니까 걸어다니고 운동하고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사기가 아닌 거예요. 우리가 외국 자료 가지고 와서 하면 사람들이 저하고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아서 이 사람을 우리나라로 데려와서 우리 환자를 두 달 정도 케어해서 그 효과를 봐야만 사람들이 믿겠구나 싶어서. 저희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셨어요. 요양병원에서 어떻게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제가 온갖 군데 전화를 해서 그 사람을 인천시에서 초청해서 두 달 동안 관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정말 보람을 느꼈어요. 그 영상을 보고 연락이 지금까지도 제게 오는데 우리가 요양병원이라든지 요양원에서의 간병시스템, 환자들을 다루는 방식 이런 게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게 발화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코로나 때문에 눈에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고 그게 최근 제 보람 중 하나예요.
유희경: 엄청난 일이고 책임감도 막중할 텐데, 다큐멘터리라는 말을 들으면 사실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데. 필름은 눈에 보이는 현상 그대로를 기록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보는 사람들은 놀랄 준비가 되어 있는 거지요. 내 나름대로 답을 갖게 되면 질문하는 자로서 올바르지 않은 거 같기도 하는데 질문하는 자로서 균형을 갖추는 태도는 무엇인가요?
김옥영: 답정너. 답을 정해놓고 질문하는 건 짜고 치는 고스톱이죠. 아직도 방송에서 그러고 있는 거 많아요. 봄 되면 기자들이 유원지에 가서 질문하잖아요. 나들이 오니 어떠세요? 좋다고 답하겠죠. 이런 게 무의미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행이에요. 관행을 저는 싫어해요. 의심하지 않고 관습을 추종하는 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이 다큐멘터리가 되게 하는 데 중요한 것은 현장이 말하게 한다는 게 다큐멘터리스트의 기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다큐가 저지르는 실수가 말로 다 설명하려고 하거든요. 교조적이 되는 거예요. 내 말을 버리고 현장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하고 현장 이미지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게 다큐멘터리스트가 가질 수 있는 태도죠. 감독은 현장 이미지를 조직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조직해서 어떤 이미지로 만들어내는가가 감독의 기술이죠. 현장이 포착한 이미지를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바로 질문의 기술이죠.
사실은 저희도 사전취재를 다 합니다. 답정너는 필요없다고 했는데 원하는 답이 있을 순 있어요. 사전질의할 때는 사람들의 방어가 허술해져서 속 이야기를 해주는 편이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그렇지 않아요. 하수는 그렇게 하죠. 저번에 하셨던 그 얘기를 해주세요. 하지만 안 한단 말이에요. 상수는 그 말이 나오게끔 질문을 던진단 말이에요. 그 말이 안 나오면 질문을 바꾸어 던져보는 거죠. 질문을 변주해서 그 사람 스스로 말을 하게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희경: 질문의 기술을 익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완두콩 한 알도 느낄 수 있는 공주의 예민함. 그런 건 천부적인 건가요?
김옥영: 저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천성적으로 ‘질문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순박하고 순수한 젊은 시절을 보냈어요. 너무 순수해서 부끄러워요. 시집 표지도 하얀색이야. 표지가 너무 순결해서 부담스러워요. 문학동네 편집장한테 다른 사람은 다 색을 넣어주시면서 제 표지는 왜 하얀색일까요. (웃음)
질문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심하는 훈련입니다. 의심은 나쁜 게 아닙니다. 관습적인 걸 추종하는 게 나쁜 겁니다. 관습을 의심하지 않는 게 나쁜 거예요.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권력자가 부리기 쉬워요. 우리는 의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해요. 과연 이게 의심할 만한 것인가 아닌가에서부터 출발하죠.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해요. 왜?라고 묻는 의심의 습관. 인터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술은 뭔가. 사람은 항상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의식하고 질문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제가 이렇게 그럴 듯하게 멋진 말을 하는 걸 의심하라는 겁니다. 말을 멋지게 한다고 해서 현혹되면 안 되고 항상 의심하는 습관을 가지자.
유희경: 최근 본 것 중에 인상 깊게 본 다큐가 있다면.
김옥영: 관습적인 다큐가 많습니다. 방송 다큐는 특히 그렇고. 최근 젊은 피디들에 의해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만 굉장히 관습적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에 의지해 말씀드리면 관습을 전복할 필요가 있다. 전혀 새로운 풍경이나 어떤 것에 부딪혔을 때 긴장하지 않습니까. 낯설게 하기 기법처럼 갑자기 생경한 것을 마주하면 긴장하고 주목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 어떤 것을 주는 다큐를 좋아하는데 작년에 본 다큐 중에서 박문칠 감독이 <보드랍게>라는 다큐를 상영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가 위안부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에요. 김순악 할머니가 주인공인데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시기 전에 살아온 이야기를, 일반 사람들은 부끄럽다고 생각할 부분까지 구술하신 것을 활동가들이 받아적어서 기록으로 만들었어요. 제가 감복한 지점은 이 다큐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질문이었어요. 위안부 이야기가 과연 지나간 이야기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위안부 이야기 들을 때 일본이 나쁜 놈인가, 이런 관점에서 보는 게 일반적입니다. 김순악 할머니는 일본이 패망하고 나서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기가 유곽도 하고 술집도 하는 드러내기 힘들어하는 과거를 가졌어요. 그런 자기 생에 대해서 너 참 애썼다, 고생했다, 이렇게 아무도 보드랍게 말해주지 않았어, 구술을 해요. 그래서 보드랍게라는 제목이 붙은 거예요. 젊은 여성들이 김순악 할머니의 구술을 낭독하는데 그들이 누구냐면 성폭력 피해자들이에요. 그 여자들이 구술을 낭독함으로써 무엇이 생기는가, 위안부 문제가 흘러간 과거 역사가 아니고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하는 남성중심주의의 역사가 그 과거로부터 지금으로 이어오고 있고 그 과거와 지금은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의 성폭력 피해자와 과거의 일본 위안부 피해자가 맞물리면서 그런 울림을 갖게 하는 거예요.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습적 사고를 전복했다는 점에서 이 다큐는 우리가 한번 봐야 할 가치가 있다, 생각해서 추천드렸습니다.

유희경: 사전 질문은 크게 세 개고요. 라디오프로처럼 사연을 읽어드릴게요. 익명 처리를 해서. 첫번째 질문: 90년대생 팀장. 어떻게 팀원들과 소통하고 관계맺어야 할지.
김옥영: 다큐멘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이긴 한데요. 저는 일반적으로 질문의 종류가 세 가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번째로 우리가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 두번째는 의심에서 나오는 질문.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연하지 않아서 물어보는. 마지막은 질문을 빙자한 다른 것입니다. 형태는 질문이지만 질문이 아닌 것. 대략 질문의 범주는 이 세 가지에 속한다고 생각하는데 두번째의 의심은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사회현상을 보거나 사건을 보거나 그럴 때 갖는 것이기 쉽고요. 보통은 첫번째 질문은 무해한 질문입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내가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데 저도 잘 물어봅니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그다음 말을 조심해야 하는 거죠.
제 책에서 한 문장을 읽어드리고 말씀드릴게요. 6페이지 보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그 질문을 독백이 아니라 대화의 형태로~ 우리의 질문으로 치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게 팀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팀 내 관계를 강화하고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개인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의 질문을 만드는 것이죠. 개인적인 얘기를 하겠습니다. 방송작가를 30년 했어요. 방송작가들은 방송사에서 위계구조상 비정규직이고 피디보다 항상 아랫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만들 때는 작가님, 작가님, 하며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부당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도 부당한 일이 있었고. 옛날부터 많이 있었습니다.
너는 왜 그런 일을 당했니, 너는 왜 그런 일을 했니, 이거는 개인적인 질문입니다. 개인적인 질문에 그치면 네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잘못된 태도를 한 윗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차원의 대화가 오가야 합니다. 이게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방송사 위계구조상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인식하면 이건 방송작가라는 직종의 문제가 됩니다. 그래서 kbs에서 구성작가협의회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어느 날 새까만 신입 후배 두 사람이 제게 오더니 조직을 만들어야 하겠는데 선배님이 회장을 맡아주십시오, 했어요. 저는 그런 거 되게 싫어합니다. 시인일 때도 무슨 협회, 동인, 하나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마음은 너무 싫은 거야. 나는 부족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kbs의 유일한 계약 작가였고. 내일 가서 못하겠다고 얘기해야지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괜히 찝찝한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 날 가서 하겠다고 얘기했어요. 왠지 쪽팔리는 기분이 들어서. 그렇게 구성작가 협의회가 만들어졌죠.
한 개인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우리의 질문이 발생하는 거예요. 방송작가는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마땅한가? 그럼 방송작가라는 직종 전체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질문이 생기는 거죠. 개개인에게 질문을 해서 관계를 좋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 우리의 질문을 만들어주는 것이 좋다. 그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그 팀은 진실한 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희경: 두번째 질문. 학교의 부조리 속에서 바꾸려는 노력. 3년만 있다 떠날 곳에서 무엇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가?
김옥영: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해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세상에 불만이 많아요. 회의주의가 되는 거예요. 떠들면 뭐하나, 세상은 안 바뀌는데. 우리가 의문을 갖고 질문을 하더라도 이런 질곡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제가 대본을 받고 이 질문을 읽고 깊이 생각해봤어요. 저와 비슷한 사람이에요. 사사건건 의심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다큐에 관련된 얘기라고 꼭 이 일에 관한 얘기는 아니지만 원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줄 읽어보고 174쪽. 다큐멘터리의 시작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며~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162페이지. 대상을 들여다보는 것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된다. 나는 왜 이 대상에 끌리는가.
끌림을 분노로 바꿔보시면 돼요. 나는 왜 이 대상에 분노하는가, 이 대상에서 보는 것은 무엇인가. ~ 개인적인 끌림이 ~ 왜 타자에게 가닿아야 하는지 ~ 대화의 기술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제가 이 질문을 읽고 깊이 생각했을 때 아니 내가 분노해봤자 세상 안 바뀌는데 별이나 보고 살지 이렇게 얘기하고 말아요. 그런데 별이나 보고 살고 있게 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을 해봤죠, 왜 그럴까. 우리가 정말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질문을 하게 되면, 세상을 바꾸려면 저런 사람이 필요할 거야, 라고 하죠. 그 사람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질문을 한다면 세상이 안 바뀌면 그 질문은 결국 무의미한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영웅이 되려고 하나? 영웅이 안 되면 인생이 황이잖아요.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습니다만 저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어요. 저 자신을 위해서, 저 때문에 그러는 거 같더라는 거죠. 우리는 언제나 인생에서 순간순간 이런 질문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너라는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그때 우리는 선택을 하는 거죠. 우리가 세상에 대해 질문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침묵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방관하는 인간이 될 것인가.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가지고 바꿀 수 있어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어떤 사람이면 좋겠는가라는 자기의 상이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새까만 신입 두 사람이 조직을 만들어야겠다고 할 때 너무 하기 싫었는데 승낙했던 그 원형.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어떤 사람이어야 할 것인가를 자의적으로 선택한 거예요. 매트릭스 영화에 보면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주는데 파란 약을 먹으면 세상의 참혹한 진실을 몰라도 되고 빨간 약을 선택하면 아주 가혹한 진실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네오는 빨간 약을 선택했죠. 우리는 선택하는 존재라는 거죠. 그 선택은 외부에 있는 목적이 아니라 일의적으로는 내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하는 선택이라는 거죠. 이 사연을 보내신 분도 기획에 관련된 얘기를 읽어드린 이유가. 타자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문제를 발견하는 인간이 되기로 선택한 거예요. 그게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에 가깝기 때문에 선택한 건데 제가 깊게 생각해봤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이걸 그냥 천성이야, 나는 원래 이래,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회의가 엄습해올 때 사실은 대답을 스스로 잘 못하게 돼요. 저도 이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고 아 내가 나를 선택한 거구나, 내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 선택한 것이고. 그런데 세상이 좀 변화하면 좋겠어. 그래서 제가 sns에 글을 아주 정성들여 씁니다. 일의적으로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나의 질문이 우리의 질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확산되면 큰 목소리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있었던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서 큰 목소리가 된 거예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의 마음에 가닿아서 같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면 좋겠다는 생각에 sns를 아주 중요하게 씁니다. 다른 곳에 써서 옮겨요.
희경씨가 말했던 것처럼 그런 사람 옆에 있으면 귀찮을 수 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수 있거든요. 어떻게 타자에게 절실하게 가닿을 수 있는지 대화의 기술을 탐구해야 한다고. 타자를 움직이는 건 아주 중요한 거예요. 이렇게 귀찮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기술이.
유희경: 마지막 질문.
김옥영: 우리가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은 그 현상의 실체를 정확히 깨닫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교에서 강의할 때 질문 잘 못합니다. 학생들이. 더군다나 뭘 물어보면 대답도 잘 못해요. 제가 갑자기 질문하면 강의실 안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지거든요. 특수한 현상이 아니고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저는 우리 교육 풍토에 굉장히 문제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좀 달라질 수 있어요. 저희 교육받아온 과정상에서는 사지선다가 지배적이었어요. 항상 모든 일에 정답이 있는 거예요. 네 가지 중 하나는 정답이야. 그래서 정답을 말하지 못할까 싶은 두려움이 우리 안에 있어요. 틀린 답을 할까봐.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에게 굉장히 막강해요. 이게 우리나라 유교적 전통의 가장 나쁜 폐습이 체면사회라고 생각해요. 틀리는 걸 두려워하는 게 나 자신 때문에 두려워하는 게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 싶어서 두려워하는 거예요. 내가 틀린 질문을 하는 사람으로 보일까봐 두려워하는 거죠.
이것은 본인 잘못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누적돼온 사회적 압력에 의해 이렇게 된 거예요.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모든 것에는 정답이 있다고 가르쳐온 교육 풍토. 우리 사회와 삶에는 정답이 없는 것도 맞고 정답이 여러 개인 것도 맞다. 인생을 항상 고정태로, 모든 걸 쉽게 생각할 때는 정답이 하나고 고정돼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이 아닐 수 있어요. 눈부시게 움직이는 이론 속에 우리가 있어서 현상을 알고 나면 안 두려워요. 내가 질문을 못하는 거, 이건 우리 사회의 문제예요. 이게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깨닫는 순간 극복하게 되는 거죠. 이것은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고 이렇게 교육을 받아온 결과이구나, 다른 사람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까 두려워하는 거였구나. 알게 되면 극복할 용기가 생기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나. 이게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인데.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질문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질문을 발견하지 않았는데 좋은 질문을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멋진 질문은 없고 진짜 질문만 있습니다. 뭔가에 진짜 의문을 가져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훈련이 필요한 거예요. 좋은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의심하는 훈련. 가령 앞에서 선생이 떠들고 있는데 말과 말 사이에 있는 모순을 간파하는 논리적 훈련도 필요하고요. 사회현상에 대해 한쪽으로 근거 없이 몰아치는 구호적 이야기. 근거를 찾아보고 의심해야 해요.
여러분 부모님 카톡으로 이상한 메시지 오잖아요. 저에게는 하나도 안 옵니다. 제가 어린 시절 대부분을 마산에서 보냈어요. 경상도잖아요. 전형적인 한나라당, 국힘당 지지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는데 여고 동창들이 처음에 그런 걸 보냈어요. 그래서 너 이런 거 보내려면 이 말이 맞는지 틀린지 근거를 찾아서 보내라. 제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하는 기사를 다 찾아 첨부해서 보냈어요. 그러고 나서는 아무도 안 보내요. 훈련을 하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굉장히 귀찮아도 다 찾아옵니다. 누가 뭘 얘기하면 그걸 반박하는 데 신념으로 하면 안 되고 이게 다큐멘터리스트의 습성이라고 할까요. 찾아보는 건 습관이 되어 있어서 그렇게 하고 있고. 제대로 질문을 발견했다면 표현하는 건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요. 질문을 발견했다면 표현은 저절로 돼요. 그건 발견한 순간 생각 속에서 말이 되어 있는 거예요. 정확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앞으로 점점 더 심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가짜뉴스의 폐해가 심각해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데는 품이 들어요. 내가 근거를 찾아봐야 돼요. 귀찮아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주체적인 개인으로 설 수 있다 생각합니다. 우리가 질문을 찾고 그걸 말로 하는 과정은 이 한 분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고 우리에게 누구나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사람들을 열심히 봅니다. 길거리 다니는 사람들도 있지만 sns 사람들, 영화를 만들거나 글을 쓰거나 하는 사람들. 사람들을 보면 그 시대의 흐름이 보입니다. 이 시대의 욕망이 무엇인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슬퍼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다큐멘터리는 지금 이곳의 예술이다, 얘기하는데. 현재의 예술이라는 거죠. 과거를 이야기할 때도 그건 현재를 위해서 이야기하는 거죠. 사람들의 관심이 가닿는 그곳에 우리의 혁명이 있습니다.
김옥영: (다큐멘터리) 작업을 할 때는 인간적이면 안 되는데요. 사실 실수를 하면 안 됩니다. 저는 구멍이 좀 많습니다. 그러나 일을 할 때는 저를 아는 후배들은 완벽주의자라고 하거든요. 제가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스타일입니다. 방송은 실수를 하면 안 돼요. 그날은 사람이 죽어도 방송이 나가야 돼요. 그래서 실수를 안 합니다.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제가 최근에도 어디 지원하려고 트레일러를 젊은 감독하고 만들었는데 경험이 없으면 그냥 소재가 있으니까 이 대상을 이렇게 찍자, 하고 가요, 그런데 저희는 플랜b를 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는 경우에는 이렇게 해야 되겠다, 생각을 하고 가요. 그래야 실수를 안 할 수 있는 거예요. 트레일러도 제출해야 되는 날짜가 있기 때문에 그게 예상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펑크가 나는 거예요. 저는 그게 기본적으로 습관이 훈련이 되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