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랫말 아이들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개정판 어른을 위한 동화 12
황석영 지음, 김세현 그림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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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들려오는 것은 먼 비행장의 프로펠러 소리였을 것이다. 고요와 평화를 흩어버리는 요란한 바람 소리. 가만히 누워 그 소리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경험해보지 못한 전후 시기로 건너간다.

전쟁 직후, 불탄 자리에서도 쓸 만한 것을 추려내고 소식 없는 사람들을 잊어버려야 하는 시기. 살아남기 위해 피난길에 오르면 곳곳에 간장 끓이는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시체들이 아무데나 내동댕이쳐져 있었던 그때의 아이들은 어떠했을까? 폭격기를 보면서도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도 날아다니는 비행기에 대한 호기심이 앞설지도 몰랐을 아이들은.

사람들이 서로 죽였고 죽었던 시기를 지나 살아보려고 애쓰던 때. 바로 그런 시절에 한 아이와 꼼배의 아내가 죽었다. 단 두 사람의 죽음. 그러나 고통의 값은 그 수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 명이 죽건 한 사람이 죽건 고통의 값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동네 사람들은 죄책감을 피하는 방법으로 약한 사람, 저항할 수 없는 사람을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꼼배는 동냥 올 적마다 그 집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놀리던 아이들을 위협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누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가가 일으켜세워 옷을 털어준 사람이었다. 아이들 이름을 거의 빠짐없이 외우고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는 어느 동네 사람도 아니었다.

아내를 잃은 후 꼼배는 고통 속에서 하나씩 돌을 놓아 다리를 만든다. 성치 않은 팔로 겨울에 만든 다리다. 흐르는 물속의 돌은 말이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다리의 이름을 불러준다. 비극의 강물 앞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용서의 다리를 놓고 서로에게 건너가는 것 같다고, 그렇게 기억의 공동체는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쓰고 싶지만 내게는 되풀이 될 비극에 대한 예감만이 저 침묵의 무게로 남아 있다. 연기와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쥐들은 살고자 구멍을 뛰쳐나왔다. 쥐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놀이하는 아이들의 천진한 눈빛과 몽둥이였다.

학살당한 시체들을 태우는 풍경마저도 아이들의 구경거리가 되던 시절에 어느 한 떠돌이 거지를 집어 감정을 이입한다는 것도 어쩌면 위선이고 사치일 것이다. 그는 돌을 나르며 자기 몫을 했다. 마을 노인들의 ‘밥값은 하고 갔군’이라는 말은 결국 우리 모두 살아내야 하고 살아내야 할 한 시기의 동지의식이었으리라. 꼼배는 그후 어디로 갔을까.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 가슴 어딘가 묵직하게 자리하는 돌의 무게인 듯싶다.


201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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