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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
이계삼 지음 / 녹색평론사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일곱시 반인데 너무 밝네. 부끄럽게. 죽거나 더 나은 걸 만들어야겠네. 여덟시 이십분. 아직도 밝아. 음, 이제 여기에 아무 재미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할 수 있는 걸 내가 좋아하는 선에서 충분히 해보고 더 해보고 또 해보았는데도. 삼겹살 먹고 싶다. 부속고기를 잔뜩 넣은 순대국 먹고 싶다. 아니면 부추를 잔뜩 넣고도 더 넣은 추어탕. 이제 나는 뭐해야 하나. 압도적인 게 있으면 좋겠다. 나를 박살내는 거. 음, 해야 하는구나. 뭘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해야 하는구나. 음, 나를 위해서. 그리고 또 나를 위해서. 음.. 누가 재미를 줄까? 이제까지 해온 방식으론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이 재미 없다. 일로 만나 이야기하는 건 재미있다. 거기엔 아직 꾸민 모습이, 아직 꾸민 모습의 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꾸민 모습은 진짜다. 꾸민 채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진짜이다. 그럼에도 이 반대편, 꾸민 게 아니라 솔직하거나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야 하고 생각하는 영역에서의 행동, 삶들은 너무 지루하고 지겹다. 이제 할 걸 다 했다. 나는 거짓으로 재미있는 체하는 수밖에 없다. 뭐가 재밌을까? 똑똑한 사람, 똑똑한 사람을 보고 싶다. 말을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직관하는 사람, 아는 사람, 그냥 보면 아는 사람. 음, 잘생긴 사람, 몸 좋은 사람 그런 것은 그냥 색깔 같은 거지. 아, 나는 노랑을 좋아해, 하지만 그 노랑으로 뭘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언지 솔직해져야 한다고 느껴서 무섭다. 그리고 그런 게 있다고 믿는 걸 솔직하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순진하게 느껴진다. 즉 거짓말 같다. 귀찮다. 모든 솔직한 마음은 귀찮음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보았는데 그것들은 내가 바쁘다고 믿게 만들거나, 지루하다. 달랠 길이 없다. 같이 다니면 사람은 초라하고 사람이 초라하지 않으면 내가 초라하다. 둘이 멋지면 내가 둘을 못 견디고 혼자 있으면 미쳐버리지 않는 이상 안 괜찮다. 이 지루한 일이 지루하다는 걸 알면서도 거듭한다. 거듭하고 또 한다. 저번에 잘 안 되었는데 또 한다. 그리고 다시 한다. 누가? 내가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이제 완전히 끝난 거 같다.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그 사람은 이미 내게 왔던 사람이다. 이미 만나봤고 헤어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거듭 만나면서 그들이 완전히 내게 무미로 남을 때까지, 아무 맛도 없어질 때까지. 세상의 재미가 내게는 그저 읽고 쓰는 것에 있는 것만 같다. 그게 사실이라면 좋겠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느낀다. 저번에 해봤는데 잘 안 됐어. 하지만 다시 하지. 좋았던 적도 있거든. 음, 이번에 좋지 않아도 나는 또 하지. 좋을 수 있거든. 좋든 안 좋든 그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바도 아니야. 그냥 무엇이든 해. 음 너무 안타깝다. 너무 빨리 다 해버렸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버렸다. 하면 안 돼, 하고 금지해둔 게 있었다면 그걸 동력으로 살아보았을 텐데. 하고 싶은 걸 해보았다. 원없이.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지루하게 느껴진다. 흥미로운 걸 하고 싶다. 싸우는 일. 사람들이 다 죽여야 한다고 믿는 어떤 대상이 되고 싶다. 그런 위치에 있고 싶다. 지켜주고 싶고 보호하고 싶지만 지지함을 드러낼 수 없고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해야 하는 그런 대상이 되고 싶다. 그런 의미가 존재할 것 같다. 미움받고 싶다. 모두에게 미움받고 돌이킬 수 없이 미움받고 싶다. 그러면 나는 그에 맞서는 힘으로 뭔가 활활 타오를 수 있을 거다. 언제 포기해도 상관없지만 그 상관없음으로 적절히 삶의 동력을 얻다가 이길 수 있는 순간에 포기하고 싶다. 처음부터 그만두면 되었지만 그만두지 않은 채 노력에 노력을 거듭하다가, 발버둥치고 발버둥치다가 탁 놓고 싶다. 행복하다. 감당하기 힘들게 어렵거나 지루하다. 값싼 빵. 충분히 배부른 빵. 적은 돈으로 더이상 먹기 힘들 만큼 먹을 수 있는 빵. 내 삶은 딱 그런 거 같다. 딱 그 정도. 그 빵을 팔아야 하는 젊은 알바생이 나름의 이유로 열중하지 않는다면 누가 사가도 상관없는 이미 체념된 상태의 마감을 앞둔 가게의 빵 그 매대 위의 기다려짐으로. 체념된 상태. 포기했다고 말했지만 내가 포기한 게 아니라 포기된 상태.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의미가 없다. 그걸 굳이 꾸며보기에도 피로감이 든다. 사람들하고 놀아. 그건 재미있다. 와 놀고 또 놀고 재밌다. 일은 의미를 준다고, 일은 기쁨을 준다고 방금처럼 나는 말할 수 있다. 그게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룰 가망 없는 허황된 가정처럼. 그 가정법의 형태로만 제시되는, 뼈대 없음, 가능성 없음. 아무 가망이 없어. 병을 앓거나 그래서 고통에 압도당하고 괴로워하거나. 그래도 살고 싶다. 오늘 샤워하면서 계속 생각한 것은 살고 싶음이었다. 일찍 죽고 싶지 않다.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아프지 않으면서. 확정된 고통, 예고된 고통 앞에서 뭘 하나? 나는 강한가?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무엇도 가르치지 않는 다만 육체적인 고통 앞에서 뭘 배우고 어떤 의미로 몸부림쳐야 하나? 살고 싶지 않다. 다만 죽고 싶을 뿐이다. 죽어야 한다. 재미가 없다. 아무것도 지금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흥미를 느끼는 게 있다면 이야기에 대한 허기다. 이야기를 보고 듣고 읽고 반응하고 싶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게 될지 궁금하다. 그 호기심이 지금의 동력이다. 그걸 끌어내지 못하는 작품은 없다. 나쁜 작품 좋은 작품 그런 건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어지는 거, 더 가깝다고 느껴지는 작품을 찾아야 할 정도로 긴급한 것뿐이다. 너무 배가 고파서 폭식하는 사람처럼. 천천히 먹어도 되고 느리게 먹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억울함으로 이상하게 부당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화낼 대상 없음의 분노에 대해서. 살고 싶다. 너무너무 살고 싶다. 그리고 아주 오래 살고 싶다. 아주 오래 살아서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고 싶다. 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 내가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하지 않아서 그 고통을 다 느껴야 하고 그 고통을 어떻게 완화시킬 수 있는지 모른다는 거. 나는 멍청하지만 햄버거를 먹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돈이 없지만 오늘 이계삼님의 책은 샀다. 잘했다 나 새끼야. 책? 읽지도 않는데 왜 사? 라고 하지만 내 경우에 안 사면 안 읽는다. 나는 이 모든 책을 다 끌어안고 싶다. 배가 고프다. 부침개 냄새가 나는 버스. 손가락 끝에 힘이 빠진다. 장도 실컷 보고 밥도 먹고 간다. 초코파이가 들어 있는 쇼핑 봉투가 부끄럽다.
2014. 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