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주주금석 논어 세트 - 전2권 - 한학자 김도련 선생이 풀어 쓴
김도련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 『주주금석 논어』는 청람 김도련 선생의 『논어』 주석서이다. 드물게 주자의 집주와 함께 다산茶山의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 외에 여타 주요 주석서의 내용을 아울렀다. 이 책은 1990년에 현음사에서 처음 간행되었다. 간행 직후 13세기 성리학 수준에 맴돌던 한국 유학의 『논어』 이해를 새롭게 한 저술이란 높은 평가를 받았다. (-)

책 제목을 ‘주주금석朱註今釋’이라 했다. 주주는 주자의 집주이고, 금석은 다산의 관점에 입각한 선생의 해석을 뜻한다. 먼저 주자의 풀이를 충실하게 보여준 후 다시 한 번 쉬운 풀이로 설명했는데 주자의 해석과 생각이 다를 경우 다산을 중심에 두고 선생의 관점을 포함시켰다. 이것이 이 책이 여타의 다른 『논어』 주석서와 구분되는 차별점이다. 특별히 주석 부분에 공력을 많이 쏟아 다산을 포함한 제가諸家의 풀이를 아울렀다.

주자와 다산의 『논어』에 대한 이해는 사뭇 달라서 한자리에 펼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주자의 집주는 역대의 학설을 집대성한 역작이지만 자신의 사상 천명을 위해 무리하게 논의를 전개한 부분도 없지 않았다. 다산은 『논어고금주』에서 주자의 오류를 200여 군데나 지적했다. 『논어』를 관통하는 기본 개념의 하나인 ‘인仁’에 대한 해석만 해도 판이하게 달랐다. 주자는 인仁을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여 형이상학적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다산은 초기 유교 경전을 천착해 인仁을 아버지와 아들, 임금과 백성, 주인과 피고용인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말한 실천적 윤리 개념으로 이해했다. 어떤 면에서 다산의 『논어고금주』는 주자 서를 맹목적으로 신성시했던 조선 성리학의 교조주의를 극복한 신사고의 선언이었다. 이 판이한 입각점에서 출발한 두 책을 선생은 한 권의 책 속에 주석을 통해 녹여서 독자들이 차이를 비교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선생께서는 2012년 7월에 오랜 투병 끝에 세상을 뜨셨다. 올해로 3주기를 맞는다. 선생은 초등학교 졸업의 학력임에도 출중한 한학 실력으로 대학교수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후 고문 연구에 평생을 매진한 학자이시다. 선생에게 이 책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90년대 초 교수 초년 시절 필자는 주말마다 정릉의 선생 댁으로 가서 글공부를 했다. 한 5년가량 한시漢詩를 배우고 옛글을 읽었다. 아침 10시에 가면 보통 오후 3~4시는 되어야 나올 수 있었다. 매번 공부의 여가에 당신이 어릴 적 글 읽던 이야기, 서당의 풍경, 처음 선생님을 찾아가 혼나던 사연 등을 들려주시곤 했다. 연암 문장의 위대성을 침을 튀며 설명하다가 이내 사마천의 문장이 어디서 힘을 얻었는지로 화제가 옮아갔다. 흥이 오르면 당신의 득의작得意作을 소리 내서 읽어주셨다. 좋은 문장은 읽을 때 글자 하나하나가 빳빳이 서 있고 나쁜 글은 겉만 멀끔하지 읽으면 비실비실 쓰러진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난다. 「온달전」이 어째서 걸작인지를 설명하실 때는 신이 나서 흥을 주체하지 못하셨다. 서하객徐霞客 같은 이름도 이때 처음 들었다. 옛 문장을 고성대독高聲大讀하실 때면 내 어깨까지 덩달아 들썩여졌다.

한번은 앉은뱅이책상 아래서 낡아 다 떨어진 『논어』 두 책을 꺼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 선생! 이게 무슨 책인지 알아?” 그러고는 열 살 전후 집에서 10여 리 떨어진 서당을 다니며 글공부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는 이랬다.

쉬운 글만 배우다가 『논어』를 시작하니 갑자기 어려워진 내용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 나오는데 어떤 사람이 서당 앞에서 자기 집에 있던 책 몇 권을 들고 나와 팔고 있었다. 그중에 한글로 풀이된 『논어』가 보였다. 책을 펼쳐보니 평소 알 수 없어 애타던 풀이가 너무도 친절하게 나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책을 사겠다며 그 사람을 데리고 10여 리를 걸어 집까지 왔다.

“아버지! 저 책을 사주세요.” 상황을 짐작한 아버지가 따라온 사람에게 책값을 물었다. 곁에 계시던 당신 친구 분이 책값을 듣더니 펄쩍 뛰며 전주 시내 서점에 가면 훨씬 싸게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그 비싼 값을 주느냐며 야단을 했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이 이랬다. “여보게! 저 아이가 이 책을 만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책값이 만 냥짜리가 될 터이고, 한 냥짜리 책으로 읽으면 그 값밖에 안 될 것일세. 책을 보겠다고 10리 길을 사람을 데려왔는데 책값을 깎겠는가?” 그러고는 어머니더러 그 사람에게 쌀을 내주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신이 나서 책을 와락 뺏어 들고 품에 안고 어루만졌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사 때 쓰려고 남겨둔 쌀을 뒤주 바닥에서 박박 긁던 소리를 들었다. 당시는 일제 말기로 공출이 심해 끼니를 잇기도 어렵던 때였다.

이후 그 책은 하도 읽어 책장이 나달나달해지고 표지가 떨어져 나갔다. 여러 번 해지고 낡은 것을 깁고 새 표지를 씌워 소중하게 간직해왔다며 내게 보여주셨다. 책의 여백마다 선생의 메모가 빼곡했다. 지금도 이 책만 보면 그때 뒤주 바닥을 긁던 바가지 소리가 들린다시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겨울날 추운 서재에서 낡은 책을 쓰다듬으며 뜨거운 눈물을 떨구시던 그날 오후의 일이 오래 두고 생각난다. 선생은 그때 해주신 아버님의 말씀을 잊지 못해 ‘이 『논어』를 기필코 만 냥짜리 책으로 만들어야지’ 하는 다짐을 숱하게 했다. 그로부터 47년이 지난 1990년에야 그 꿈을 이루었다. 이 책은 이제껏 수백 종의 『논어』 번역서가 간행되었지만 안목 있는 분들이 최고의 번역서로 꼽았던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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