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주 2 - 제1부 외장, 개정판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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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젓 사려, 조개젓 사려. 초봄에 담는 쌀새우는 세하젓이요, 이월 오사리는 오(五)젓이요, 오뉴월에 담는 육(六)젓이요, 가을에 담는 취[秋]젓이요, 겨울의 산 새우는 동백하(冬白蝦)젓, 전라도 법성포 중하(中蝦)젓 사시오. 어리굴젓·홍합젓·소라젓·꼴뚜기젓·황새기젓·밴댕이젓·권댕이젓·곤쟁이젓·오징어젓·멸치젓·갈치 창자젓, 입맛나는 젓이요, 세월 따라 담근 젓, 오뉴월 배추쌈에는 달고 한겨울 김칫국에도 좋은 어리굴젓이요, 새우젓이오.”

금방 고샅길 안에 있는 주막 어름에서, 트레머리에 녹의홍상(綠衣紅裳) 떨쳐입은 계집 하나가 삽짝 밖으로 쭈르르 달려나왔다. 길소개를 보고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인데, 눈 밑에 푸릇푸릇한 납독 자국이 있는 걸 보니 색주가(色酒家)짜리가 분명했다.
“젓 사려우?”
고쟁이가 발등에까지 처진 계집에게 길소개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내가 공연히 수작하는 줄 알았수?”
계집을 따라 삽짝 안으로 들어서니 썰렁한 초장 술청에 도포짜리 책상물림 서넛이 목판에 둘러앉아 있었다.
“지게 내리시우. 맛깔이나 봅시다요.”
지게를 내리자, 계집이 독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밴댕이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보시오. 맛보는 데 품 달라는 소린 않을 테니.”
계집이 눈시울을 한번 짝 감았다가 손을 고쟁이에다 닦더니,
“밴댕이젓이 어찌 쌉싸고리하오?”
“허, 그런 소리 하지 마슈. 밴댕이젓으로 말하면 젓 중에는 알천이오. 우리 집 논이 서울 흥인문 밖에 있는데 씻나락 한 말을 뿌리면 석섬을 먹소. 우리 집에 크기가 낙산(駱山) 봉우리만한 농우소가 두 필이오. 이삼월에 살이 풀리고 얼음이 녹아 쪽빛 냇물이 흐르기 시작하면 두 필 소에 쟁기를 지워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서 물을 댑니다. 한 필지에 보통 열다섯 두(斗)를 파종하는 논이 여러 자리외다. 팔월이 되어 초승달 같은 낫으로 올벼를 베어다가 타작을 하고 방아를 찧어 키질을 해서 노구솥에 넣고 불을 지펴 밥을 지을라치면 기름이 밥술에 자르르 흐르고 구수한 냄새가 혀끝을 감치지요. 남새밭도 또 좀 기름지고 걸다구요. 배추와 상추가 얼마나 잘되는지 삼사월에 갈아엎고 거름을 넉넉히 주면 이슬을 머금고 비를 맞아서 잎이 담뱃잎처럼 너푼너푼 자라서 연하고 싱그러운 양이라니, 그걸 올이 성깃성깃한 죽바구니에 넘치도록 누르지 말고 담는단 말씀이오. 양지바른 곳에다 바랜 장독에 장을 담그면 그 달기가 꿀맛은 저리 가라지요. 제물포 안산(安山) 바다에서 그물로 곱게 올린 밴댕이란 것이 장에 나오면 그놈을 사다가 석쇠에 구울 제 기름간장을 바르면 냄새가 삼이웃에 진동하것다요. 그러면 상추의 물기를 탈탈 털고는 손바닥 위에 쩍 벌려 눕히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올벼 쌀밥 한 숟갈을 사정 두지 말고 듬뿍 떠서 담고 벌꿀 같은 된장을 얹은 뒤에 구워진 밴댕이나 밴댕이젓갈을 올려 정들여 쌈을 싼단 말씀이오. 그러구선 혜임령(惠任嶺) 황아장수 짐 들어올리듯 두 손으로 들어올려 입을 쩍 벌리고 숨을 푹 내쉰 다음에 입안으로 밀어넣는데, 그때 옆에 앉았던 책상물림이 같이 따라 입을 벌리다가 짧은 갓끈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 이 밴댕이젓쌈 때문이란 것을 아시겠소?”
“그게 정말이오?”
“이 아낙이 되 사람과 겸상을 먹었나, 웬 의심이 그리 많수? 그럼, 내가 없는 소릴 반죽 좋게 씨부렸단 말이우?”
“아유, 난 그 밴댕이젓보다는 젓장수 입이나 한번 쩍 맞췄으면 좋겠소.”
“여러 말 말고 젓이나 들여다가 기둥서방 별반에다 올려보시오. 아낙의 궁둥이에다 쩍 하고 입을 맞춰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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