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 폭력과 여성 인권
정희진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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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적이지만 익숙한 관계를 끝내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러한 관계가 구체적인 폭력으로 매개되어 있다면, 이때는 관계의 청산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탈출”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것이다. 그러나 “탈출”이 쉽지 않기에, 카프카의 말대로 새로운 인식이 시작된다는 첫번째 징표는 죽고 싶은 심정이다. 자기 인생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제까지의 삶은 견딜 수 없어 보이고 다른 삶은 도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 여성학을 공부하는 즐거움 못지않게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여성의 삶을 “분석”하고 규명하는 것과 여성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사이에 어떤 불가피한 간극이 있다는 느낌이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해방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때때로 비참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 아닐까? (-)

“아내 폭력”(아내에 대한 폭력)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은, (-) 한국 사회의 “아내 폭력” 대처 방식이 인권과 성 평등gender equality 관점에서가 아니라 지나치게(가부장적인) 기존 가족 보호의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
한국에서 “아내 폭력”이 처음 사회 문제로 제기된 것은 1983년 여성 폭력violence against women 추방을 운동 과제로 내세운 「여성의 전화」가 창립되면서부터다. 이후 쉼터(피난처) 마련 운동, 성폭력 특별법과 가정 폭력 방지법 제정 운동을 거쳐 “아내 폭력”은 여성 폭력의 대표적인 영역이 되었고, 1990년대 한국 여성 운동이 성 인지적 관점gender perspective을 획득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
(-) 여성주의 관점에 입각한 몇몇 연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연구들은 가족과 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가부장적 통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들은 가족을 사회 기본 단위 혹은 휴식처라고 간주하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간에는 차이(사실은 “위계”)가 있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가해자의 폭력 행위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 이들은 “아내 폭력”을 “일탈”(비정상) 행위로 보면서 주로 폭력 가정의 인구학적 특성에 주목해 왔다. 즉 폭력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 무엇인지 고찰하는데, 이때 주로 등장하는 상황들은 가해 남편의 의처증, 스트레스, 알코올, 열등감, 경제적 무능력, 분노 등이다. 하지만 이것은 폭력의 원인이기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남편의 행위 자체가 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한편, 폭력당한 아내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연구들은 오랜 폭력으로 인한 폭력의 결과(무기력, 보복의 두려움, 자아 의식 상실, 판단 능력 결여, 모순에 가득 찬 폭력 대처 기술 등 피해 여성의 상태)를 마치 폭력의 원인인 양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가정 폭력을 극소수 일탈 가정의 문제 혹은 개인 심리의 결과로 보는 관점은 상당히 뿌리 깊다. 가정 폭력이 가부장적 가족 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모든 아내들이 다 맞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갖는다. 안 때리는 남편도 많고 안 맞는 아내도 있으므로, 그것은 결국 개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과 관련된 이슈는 언제나 사적인 문제로 취급되는 편견의 결과일 뿐이다. 예를 들어 전 국민의 1% 정도가 절도 피해를 입었다면 그 누구도 이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 절도범의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한 문제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분석되고 국가 사회적 대책이 세워질 것이다. 그러나 “아내 폭력”은 거의 모든 통계에서 50% 이상이 경험하는데도 여전히 개인적인 일로 간주된다. 성폭력 등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일 경우 언제나 이와 비슷한 논리가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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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 폭력”에 대한 가족 유지적 접근이 과연 “아내 폭력” 문제의 대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부정적이다. (-)
만일 어떤 사람이 가정이 아닌 길거리에서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다면, 당연히 가해자를 처벌해야지 치료하거나 상담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아내 폭력”이 전쟁, 고문, 조직 폭력 등 일반적인 폭력과 다른 것은 그것이 단지 “가정”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행사한다는 점이고 그로 인해 오랫동안 은폐,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Copelon, 1994) 바로 이 부분을 지적, 비판하지 않는다면 “아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

시대와 지역, 종교, 인종, 계급, 교육 수준, 일부일처와 일부다처제를 막론하고 인류가 공통적으로 경험해 온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아내 폭력”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도 “아내 폭력”에 대해 언급한 기록들이 남아 있는데, 조선 후기 유학자였던 이덕무는 “남편과 시부모가 성질이 포악해서 때리고 구박하여 집에 못 있게 하더라도 친정에 돌아가는 것은 배반이 아니겠는가”라고 적고 있고(이덕무, 1744 ; 조주현, 2000 : 23에서 재인용) 조선 시대 여성들의 생활 지침서였던 내훈 2권 부부장에는 “남편을 아버지같이 섬길 것이나, 혹 그릇된 일을 간하였다가 매를 맞는 일 있더라도 노하기는커녕 전혀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한국 여성 개발원, 1990 : 37).
서양에서도 “아내 폭력”은 고대 바빌론 시대부터 현대 산업 자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다(Stets, 1988 : 2-3). 로마 시대 남편들은 아내를 벌 주고 죽이고 마음대로 이혼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와 귀족들이 자기 농노를 때리듯이 “정기적으로” 아내를 구타하였고 당시 여성들이 산 채로 불태워진 이유는 “혼외의 아이를 낳았을 때, 자위했을 때, 아이를 돌보지 않았을 때, 남편에게 호통치거나 잔소리가 심할 때, (남편의 구타로 인한 것일지라도) 유산했을 때”였다(Davis, 1975 : 252-264). “아내 폭력”은 종교 교리, 법률 등으로 성문화成文化, 보장되었는데 그 내용은 주로 아내의 의무와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식사를 늦게 준비했거나 다른 남자와 말을 하는” 등 도리를 지키지 않은 아내를 남편은 언제든지 처벌할 수 있었다(Archer, 1994 : 312-313). 16세기 러시아에서는 남편이 언제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아내를 때릴 수 있는가를 명기한 가정 법령을 선포하기도 하였다. 현대 사회주의 국가도 예외는 아니다. 1980년대 소련 타지크 공화국에서는 첫날밤 신부의 순결 검사 관습과 남편의 구타에 못 이겨 분신자살하는 여성들이 1년에 30-40명에 이르러 그들을 “살아 있는 등불”이라고 불렀다(하니 로젠버그, 1991 :53-55).(-) 19세기 영국의 관습법은 “엄지손가락 법칙”rule of thumb이라고 하여 매의 굵기가 남편의 엄지보다 크지만 않으면 아내 구타는 정당하다는 원칙을 발전시켰다. 영어의 대략적으로 잰다는 뜻의 “눈대중”rule of thumb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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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약 42%는 이전 또는 현재의 파트너에 의해 죽은 것이다. 방글라데시, 브라질, 케냐, 태국은 50%를 육박하며 파키스탄에서는 전통적인 여성 억압 문화인 퍼다purdah의 영향으로 80% 정도의 여성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받는다. 볼리비아 정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매해 10만 건 정도 행해지고 95%는 처벌되지 않는다고 보고하였다. 미국에서 아내 구타는 강간, 자동차 사고, 강도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외상의 이유이며 여성이 다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이라고 여겨진다. (-)
지난 5년간 미국에서 “아내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의 수는 베트남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의 수와 비슷하며 미국의 소아마비 환자 모금본부에 의하면 임신중 남편의 구타가 기형과 유아 사망의 주 원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다(피처드 겔즈, 1998 : 12-13)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내가 처음부터 가정 폭력, 아내 구타, “아내 폭력”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고 있는 것과 아내 폭력을 “아내 폭력”이라고 표기하는 점에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것 같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아내에 대한 폭력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용어가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가족 폭력family violence·아내 구타wife battering/beating·구타당하는 아내battered women/wives·학대당하는 아내·학대당하는 부인·매맞는 아내·아내 학대wife abuse·아내 폭행wife assault·부부 폭력marital/conjugal violence·배우자 학대spose-abuse·가부장적 테러리즘patriarchal terrorism 등이다.
기본적으로 용어의 선택과 사용은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다. “아내 폭력”을 어떤 용어로 표현할 것인가는 곧 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낸다. 가정 폭력은 그동안 가정에서 연장자 남성에 의해 교육의 차원에서 당연히 행해졌던 관습을 폭력으로 정의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고, 무엇보다 대중적인 설득력이 있다. (-)가부장제 사회의 “안식처로서의 가족” 관념에 빛추어 볼 때 “가정”과 “폭력”은, 병렬될 수 없는 일종의 이문 융합으로서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가정 폭력은 아동 학대, 노인 학대 등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폭력을 포괄하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고, “아내 폭력”을 성 중립적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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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학대는 구타보다는 광범위하지만 다소 심리적, 성적 학대에 치중하는 듯한 어감을 준다. 아내 구타는 여성 운동 진영을 비롯하여 그간 한국 사회에서 비교적 널리 사용되어 왔지만 “구타”는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기에 부족하다.

남편은 만날 “나는 목을 조른 것이지 때린 것이 아니다. 내가 언제 너 팔뚝 같은 데 때렸냐? 너는 때리는 게 뭔지 모른다. 내가 때리면 그때 너는 최소 사망이다. 이건 안 때린 거다” 그러면서 자기는 때린 적이 없대요(35세, 주부, 고졸 여성).

“구타하다”를 뜻하는 영어의 “batter”는 격렬하게 연타당한다는 의미로 구타당한 상태battered는 두들겨 맞아 찢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이처럼 구타는 물리적 폭력, 혹은 때리는 행위만을 의미하기 때문에 “목을 조른 것이지 때린 것이 아니”라는 가해자의 주장 앞에서 피해 여성은 대응할 논리를 찾지 못한다. 1990년대 초 성폭력 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 아내 구타가 성폭력이냐 아니냐의 논쟁 역시 구타가 가지는 표현 상의 한계에 기인한 바 크다.
부부 관계에서 신체적 폭력이 없는 언어적, 정신적 폭력은 발생할 수 있어도 언어적 폭력이 없는 신체적 폭력은 없다. 이 글의 증언자들은 특히 남편의 언어 폭력에 대한 고통을 호소했다. 언어 폭력은 육체적 폭력만큼 아내를 절망케 하는데, 대체로 여성의 성sexuality과 관련된 것이 많고 매우 여성 혐오적이다. (-)

구타를 하는데 그 다음에 꼭 아이를 데리고 가출을 해요. 아이가 이제 3개월인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추운데(아이가 얇은 옷을 입은 상태) 우유도 안 주고 차 같은 데 방치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미치는 거지요. 핸드폰도 꺼놓고 연락이 안 되니까. 남편이 때려서 두 번 유산했고 이 애는 (구타로) 7개월 때 양수가 터져 1킬로그램으로 출산했어요. 3개월 간 인큐베이터에 있던 애예요(31세, 사무직, 대졸 여성).

이처럼 “아내 폭력”은 강간, 성적 학대, 의처증, 남편의 경제적 통제 혹은 무능력, 집요한 협박, 알코올 남용, 시집 갈등, 유기적 성격의 외도, 폭언, 잠을 재우지 않음 등 언어적, 심리적, 육체적, 경제적, 성적, 정서적 폭력을 동반하기 때문에 “구타”나 “매”는 여성의 폭력 경험을 협소한 의미로 축소하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내를 함부로 대하는 행동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적 폭력과 같은 “사소한” 폭력은 폭력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본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은 곧 폭력을 일상화, 정상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여 폭력의 개념을 폭넓게 정의한다는 의미에서 아내에 대한 폭력, 즉 “아내 폭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_정희진_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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