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의 두 남자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림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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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상가들은 말했대요. 흑인은 흑인일 뿐이다. 흑인은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만 노예다.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만 노예다. (-)차별적인 상황, 억압적인 관계를 얘기하는 거죠. 그러면 이런 경우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떤 impairment를 가진 사람, 손상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때 그 손상은 사실은 손상일 뿐일 수 있다는 거예요. 손상 때문에 장애인인 것이 아니라, 손상은 손상일 뿐인데 그것 역시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서 장애가 된다는 거예요. 특정한 상황과 관계가 뭔가를 할 수 없게 만들 때 장애가 된다는 거죠. 우리가 차별금지법에서 얘기하는 정당한 편의에서 정당하다는 게 뭐에요? ‘뭔가를 할 수 없게하는 그 특정한 상황과 관계 아래에 놓이지 않도록 만드는 행위, 바로 그 행위가 정당한 행위라고 보는 거죠. 그렇게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으면 그 사람이 뭔가 할 수 없게되지 않는 거죠.”(김도현, <장애, 장애학, >, 3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 프로그램, 희망을만드는법, 2014. 2. 8.)



2015년 허핑턴포스트(US)에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살다 마침내 결혼한 노만 맥아더와 빌 노박 커플 이야기가 소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뉴욕에선 동거관계(domestic partnership)을 법적으로 인정받았지만 펜실베니아주로 이사하면서부터는 동거관계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이 서로의 법적인 보호자가 되기 위해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입양밖에 없었다.

 

만약 둘 중 하나가 병으로 입원하게 된다면, 병실에 들어가서 간호할 수 있는 권리는 타인에게는 전혀 없습니다. 만약 빌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는 유일한 동반자임에도 불구하고 간호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법적으로 병실에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지요.”(허핑턴포스트US, 2015. 5. 30.)

 

2014년 발표된 한국LGBTI(이하 성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도 이미 많은 성소수자가 상당히 장기적인 연애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그들 역시 파트너 관계 및 공동 생활을 유지하는 데 가장 시급히 필요한 제도’(복수응답, 3개 선택)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68%)를 꼽았다. ‘국민건강보험 부양-피부양 관계 인정’(45%)이 그 뒤를 이었다. 또한 레즈비언의 98.1%가 파트너십의 제도화를 원한다고 응답했고 특히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2016,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모임 풀하우스는 결혼이 아닌 다른 가족제도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성별이나 성애적 관계 여부와 무관하게, 친밀함을 바탕으로 주거와 생계를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파트너를 가족으로 등록할 수 있는” ‘파트너등록법지지 서명 캠페인을 벌였다. 이 파트너등록법은 2014년 진선미 더민주 의원이 초안을 마련한 생활동반자법과 거의 같다.(한겨레, 2016. 11. 07.) 혈연이나 혼인 관계로 엮이지 않았어도 법률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이 법안의 핵심이다.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진선미 의원은 말한다누구나 삶을 함께 살아갈 특별한 한 사람을 가질 권리가 있고 그게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에 해당한다. 그는 특별한 한 사람을 법률적으로 꼭 결혼한 배우자에 한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고 이것은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것이다. 이미 보편화된 다양한 가족, 기존 법의 바깥에 있는 이들의 삶을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선미 의원이 모델로 삼은 것은 두 이성 또는 동성 성인 간의 시민 결합 제도인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Pacte civil de solidarité)이다. 이 법에 대한 프랑스 사회 고민의 출발점은 아동권의 보장에 있다고 한다. “부모의 결합 형태(결혼 또는 동거)와 무관하게 모든 아동은 동등하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철학이 법안 발의의 밑바탕에 있었다. 동성 부부이든, 여성 부모 가정이든, 혼외 자식이든 구분하지 않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자라야 한다는 철학이다.”(한겨레, 2014. 9. 12.)


동성 커플이 법적으로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동성 커플들과 그들이 함께 키우는 아이들 모두에게 심리·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 미국 소아과 학회 회원들은 LGBT 커플에 대한 보다 포용적인 대중 정책을 펼칠 것을 주장한다. 부모와 자녀 간의 가족 관계를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아이들을 법적, 경제적, 감정적으로 불확실한 지위의 불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허핑턴포스트US, 2017. 2. 22.)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도 이 흐름을 이어받아 이성 간의 혼인에 의한 가족 구성뿐만 아니라 동거노인, 미혼모, 공동체, 동성커플, 비혼커플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 구성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동반자등록법을 제정하겠다는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

 


LGBTI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결과를 좀더 살펴보자. 응답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혐오, 차별, 폭력의 대상이 된다고 느꼈다.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를 향한 증오와 혐오발언이 표출되는 일이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나고(87%),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물리적 폭력 및 괴롭힘이 종종 또는 자주 발생하며(55%), 미디어에 의한 조롱이나 왜곡, 차별적인 묘사가 종종 또는 자주 일어난다(84%)고 답했. 이 때문일까? 응답자 중 28%가 자살을, 35%가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특히 18세 이하의 청소년 성소수자 중 46%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고 53%가 자해를 시도했다. 두 명 중 한 명인 셈으로 위험성이 심각하다. 이는 한국(0.4%, 2013), 전 세계(0.2~0.3%, 2010)의 평균 자살시도율과 비교했을 때도 매우 높은 수치다(마음연결, 성소수자자살현황). 또 성소수자라는 점 때문에 차별이나 폭력을 경험한 이들의 자살시도와 자해시도의 비율 역시 41%48%, 차별이나 폭력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의 경우(21%, 27%)보다 높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자살 위험성을 줄일 수 있을까? 1999년부터 2015년까지 거의 80만 명에 달하는 모든 성적 지향의 학생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줄리아 레이프먼은 동성혼 법제화 이후 매년 자살을 시도하던 청소년 성소수자가 약 13만 명 정도 줄어든 것으로 추정한다. 그는 동성 결혼을 허용하면 성적 지향과 관련된 구조적 오명이 줄어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사 대상자 대부분은 결혼할 일이 없는 고등학생이었지만 자신이 당장 사용할 일이 없다 해도, 동등한 권리를 가지게 되면 학생들은 오명을 덜 느끼게 되고 미래에 대해 보다 희망적이 된다는 것이다.(위의 글, 2017. 2. 22.)


독일에서도 동성 커플의 법적 보호를 위해 2001년부터 등록된 동반자’(registered civil partnership)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인정하면 동성애자 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동반자등록법이 시행된 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됐느냐는 이준일 교수의 질문에 주자네 베어 독일연방헌법재판관은 답한다.

 

내가 알기론 아니다. 아무도 동성애자 증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학생들의 자살이 줄었다. 그동안 여성성·남성성과 관련해 사회적 압박이 많았던 것이다.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에게도 해를 끼친다. 동반자등록법 시행으로 사회가 더 건강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서로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토대를 마련했으며, 동성애자들은 두려워하거나 숨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한겨레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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