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남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7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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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경리 여직원인 자닌은 보러 갔다. "우리 곁을 떠나시겠군요...... 이젠 부자이시니까요....... 정말 이 동네에 머무르지 않으실 생각인가요? 당신처럼 어수룩하고 외로운 분이 어디서 사시려고?...... 아, 그렇지. 가정부를 둘 수 있으시겠네요......"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다. 한동안 그녀는 내 가슴속에서 쥘리에트를 대신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다. 그녀는 장시간 계산대에 붙어 있도록 길들여져 움직일 줄을 몰랐고 비만증만 더해갔다. 자닌은 내가 남들과 다르게 볼품없는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 남들과 다를 바 없다. 난 우리 시대의 모든 인간처럼 회의적이고, 꿈도 사는 목적도 없으며, 삶이 피곤하여 쉽사리 지쳐버리니 가능한 한 적게 일하고(달리 방도가 없으니), 이 회한과 권태에서 벗어나려고 술과 좋은 음식을 즐긴다.



뤼시엔은 자리를 뜨며 내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후회하는 듯이. (-) 우리는 서로 원망할 이유가 없었다. 그녀는 어쩌면 우리의 사랑이 실패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고 상상할 만큼 순진했다. (-)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사랑은 태산도 넘고 무쇠도 부수며 온갖 장애를 넘는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우리가 집어치우고 포기하는 것은 우리의 무능 때문이다. '위대한 사랑'은 포기가 무엇인지 모른다. (-)

 

 

(-) 영화를 본 후에는 잠깐 산책을 했다. 멍하니 진열장을 바라보다가 여자들을 보려고 조금 정신을 차려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가끔 영화를 한 편 더 보러 가기도 했는데, 대개 범죄영화였다. 혹은 선술집 테라스에서 맥주를 한두 잔 비웠다.

살짝 심심했다. 일요일 오후보다 쓸쓸한 것이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젊은 아버지가 아이의 손을 잡고 가고, 배가 부른 아내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을 보면 그들을 죽여버리든가 내가 죽어버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맥주 서너 잔째부터는 모든 것이 우스꽝스러워졌고, 심지어 유쾌해지기까지 했다. (-)

 

 

"일요일 어떻게 보냈어? 재미있었나?"

"너무 웃어서 배꼽이 아플 지경이야."

자크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마누라와 함께 영화관 가는 것을 싫어했다. 혼자서 아니면 다른 여자와 가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혼자 가는 것이 싫었는데, 막상 화면 앞에서는 그것도 잊어버렸다. 나는 내가 본 영화 줄거리를 이야기하지 못했다. 나는 움직이는 그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쫓고 쫓기고, 서로 싸우고, 큰 소리를 내며 총으로 서로 죽이는 걸 보았다. 자크는 영화를 선별했다. 아무거나 보러 가지 않았다.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본 영화에 대해 내게 길게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도 나만큼이나 지루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털어놓지는 않았어도 말이다. (-)



나는 반항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체념하지도 않았다. 무엇을 체념해야 할지, 또는 기쁘게 살려면 어떤 사회를 설계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슬픈 편도 즐거운 편도 아니었으며, 그저 머리에서 발끝까지 거기 있었다. 이런저런 사회가 무엇을 한다 해도 이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일 뿐이라는 세계관에 사로잡힌 채. (-) 그렇지만 나도 두세 번쯤 반항심을 느낀 적이 있었다. 때로는 사업상의 식사 후에 익명의 사원이나 이사회의 나리들이 사무실을 감사하러 오는 일도 있었다. 이는 이십사 시간 전에 예고됐다. 우리는 쓸고, 닦고, 수염도 단정히 바싹 깎고, 빳빳이 다림질된 작업복을 입은 채 나리들을 기다렸다. (-) 그들은 우리에게 인사말을 건네지도, 우리의 인사에 답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들은 보관 기록과 서류를 검토하고 사장의 설명을 들었다. (-)

그들 뒤로 문이 닫히자마자 자크 뒤퐁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저들을 먹여 살리는 거야. 우리의 땀과 고생이 저들을 살찌우는 거라고."

자크 뒤퐁의 단언은 표현 그대로라면 조금 과장되었다. 그나 나나 나름대로 편하게 앉아 살았을 뿐 땀 흘려 일한 적은 없었으니까 내 분노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자들 얼굴이 불콰한 꼴로 봐서 머지않아 뇌일혈로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자크 뒤퐁과 나는 무엇인가? 두 인간, 30억 마리의 다른 벌레들 사이에 낀 두 마리의 가련한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그 나리들도 우리 부류의 30억 마리 중 예닐곱일 따름이다. 그들을 누구로,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사회가 바뀌건 말건 나는 그 부산물일 뿐이었다.



(-) 호텔에서 보낸 마지막 날들은 기쁜 동시에 우수에 찬 나날이었다. 모든 과거, 자닌과 쥘리에트와 뤼시엔, 회사에 가느라 매일 지나다니던 거리, 술집, 이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인생은 아름답다. 사무실의 먼지와 쓸데없는 서류 나부랭이 사이에서 보낸 삶. 꼽추 노파 청소부가 무척 애를 쓰건만 일손이 부족해서 저녁에 퇴근해 돌아갈 때까지 헝클어진 채 있곤 하던 호텔 침대. 아침마다 일어나기, 출근부가 여태 있기를 바라며 미친듯이 회사까지 달려가던 일. 지각하지 않아서 출근부에 서명할 수 있었을 때의 환희, 출근부를 걷어가고 삼십 초 후에 도착했을 때의 격분. 이 모든 것이 뒤늦게 발견한 행복으로 보였다. 먼지와 혼잡한 길, 나처럼 일터로 모여들던 사람들, 수많은 잿빛 얼굴들, 우리 각자가 자기도 모르는 채 간직하고 있는, 구름에 지나지 않은 태양을 감춘 얼굴들, 이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었다. 과거란 항상 아름답고 다정하며 그리운 법인데 이를 너무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에게는 장래의 가능성 같은 것이 필요하다. (-)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후회하니, 이는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준다.



감자튀김을 곁들인 청어가 도착해 일종의 몽상에서 나를 끄집어냈다. 보졸레 포도주가 나오자 나는 한 잔을 채웠다. 잔을 입에 대기 직전 구름이 열리더니, 백색 식탁보, 접시, 청어, 술병에 햇살이 홍수를 이룬다. 단숨에 잔을 들이켜니 마치 태양도 내 속으로 함께 들어가는 듯하다. (-) 나는 아직 젊고, 내 인생에 햇살 드는 나날은 아직도 않이 남아 있으리라. 고개를 돌려 식사중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다른 빛 속에서 사는 다른 인간들이다. 다시 접시에 코를 박았다. 아무런 식욕도 없이 습관적으로 식사하러 왔는데, 햇빛 때문인지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 커피를 마신 후에 생크림을 얹은 초콜릿 케이크를 시켰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앉아 거리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한 번도 못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무척 좋았다. (-) 집에 들어서니 또다시 긴 여행에서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수위 아주머니가 커튼을 빠끔히 열고 내다보곤 다시 닫는다. 계단을 오르는데 3층에서 한 부인이 강아지를 끌고 나왔다. 개는 나를 보고 짖어댔다. 그녀는 개를 향해 "필루슈, 가만있어"라고 말하더니 내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낯선 사람을 보면 짖지만 곧 익숙해져요."

"괜찮습니다, 부인. 괜찮아요."



나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대낮이 더 나았다. 어두워지면 불안해졌다. (-) 거리가 어두워 반쯤 암흑인데도 나에게 안도감을 주던 웅성대는 군중이 기억난다. (-) 두려워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모든 것이.(-) 나아졌다. 일종의 쾌활함이랄까. 자주 이렇게 유쾌해지고 갑자기 행복해지지만, 이런 느낌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곧 사라진다. 내게는 슬픔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하나 있지만,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이란 내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들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들을 응시하는 것. 아주, 아주 주의깊게 바라보면 갑자기 이 세상 모든 것을 마치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것은 이해할 수 없고 이상해졌다.

 

 

내가 보았던 모든 길과 도시, 거리, 그리고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을 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려고 애썼다. 나는 이 세상에 던져졌고, 그런 사실을 마치 난생처음 안 사람처럼 새삼스레 깨달았다. 가끔 느끼곤 하던 세상의 이런 생소함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그것은 나 그리고 우리가 습관에 따라 으레 해왔던 배우나 엑스트라 역할에서 벗어나, 세상에 에워싸여 있으나 세상 속에 있지 않은 사람, 마치 연극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떨어져 더이상 참여하지 않는 것과도 같았다. (-) 불안감이 사라졌다. (-) 왜냐하면 이 보편적 기계와 이 사람들, 이 거리들과 이 움직임들은 매번 추하지 않으면 아름답고, 좋지 않으면 나쁘고, 유리하지 않으면 불리하고, 위험하지 않으면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일종의 도덕적 중립을 얻기에 이르렀다. 혹은 미학적 중립을. '그들은' 더이상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나는 식당 안에서 그들이 내뱉는 말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모든 것이 덧없는 환영일 뿐이며 일종의 무(無)의 환상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거리에, 일종의 거리, 일종의 공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뿐이었다. 나머지는 구분할 수 없는 '이 모든 것들'이었다. (-)

 

 

(-) 나는 파란 꿈은 두세 번밖에 꾸지 않은 것 같다. 파란 꿈이란 밝은 햇살 속에서 도망치듯 꺼져가는 바람과 그림자만 느낄 수 있는 새벽녘에 꾸는,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기억할 수 없어서 안타까운 꿈을 말한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이 걸레처럼 찢어져 사라져버린다. 괴롭지 않으려면 체념해야 한다. 나는 체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산다. 그리고 자주 그럭저럭 체념하는 데 성공했다. 진실하고 깊은 체념은 아니었다. 가끔 화가 치밀기도 한다. (-) 나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배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 (-) 벽들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나는 태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무지 속에서 죽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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