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서 존재자로 현대사상의 모험 11
엠마누엘 레비나스 지음, 서동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탈출은 그 자신으로부터의 일탈에 대한 필요이다. 즉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모면할 수 없는 관계를 부수는 것, 자아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필요이다.'"


(-)


빛은 빛나며 자연적으로 이해된다. 빛은 이해의 사실 자체이다. (-)빛은 밤과 섞여 있다. (-) 우리는 밤처럼 숨막히는 존재의 속박을 감내한다. 그러나 존재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의 악(le mal)이다. (-)


(-)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에 대한 권태가 존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권태가 존재한다. (-) 권태롭게 하는 것은 우리 삶, 우리 환경의 어떤 특별한 형식이 아니다. (-) 권태는 존재 자체를 겨냥하고 있다. (-) 권태 속의 존재는 계속 존재함에 연루되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자와 같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무엇인가 착수해야 하고 열망해야 한다. 판단하기를 중지해 버린 채 행위하고 열망하기를 기권해 버리는 완전한 회의론자의 그릇된 미소에도 불구하고, 그 계약의 의무는 피할 길 없는 '해야 한다'로 부과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태는 이 궁극적인 의무에 대한 불가능한 거부이다. (-)


(-) 시작의 순간에는 이미 잃어버리는 무언가가 있다. 왜냐하면 이미 소유된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인데, 그 소유된 것이란 오로지 이 순간 자체이다. 시작은 단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으로 복귀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소유한다. (-) 우리는 여행 중인 것처럼 존재한다. (-)


(-) 실패는 모험의 일부를 이룬다. 중단된 것은 놀이에서와 달리 무 속으로 침몰해 버리지 않는다. 다시 말해 행위는 존재 안에 기입된 것 그 자체이다. 그리고 행위로부터의 물러섬으로서 무기력은 존재 앞에서의 머뭇거림, 즉 존재함에 대한 무기력이다.


(-)


이 상태가 잠이나 졸음이 쏟아지는 상태가 아닌 한에서 그것은 평화가 아니다. (-) "살려고 해봐야 한다."는 <해변의 묘지>의 한 구절인데, 이 말은 근심처럼 스며들어 오며, 그럼으로써 존재에 대한 관계와 행위에 대한 관계가 가장 부드러운 무기력의 한복판에서 노출된다. 무기력이 우리를 휩쓸어버리고 따분함은 무게를 더하며 지루하게 만든다. (-)


(-)


존재는 자신을 지칠 줄 모르고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던지고 있다. 자신의 이미지를 사랑했던 나르키소스의 순진함과 달리 존재는 자신의 그림자에 스스로의 모습을 비추어 보지 못한다. 대신에 존재는 그림자와 더불어 자기의 순진함의 실패를 깨닫는다. (-)

존재가 질질 끌고 다니는 무거운 중량은 바로 그 자신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무거운 중량은 존재의 여행을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존재는 그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그 자신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다닌다.


(-) 무기력은 짐으로서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기쁨 없는 무력한 반발이다. 그것은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인데, 그 두려움을 느끼는 일 역시 삶이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