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판교의 바보경
정판교 지음, 스성 엮음, 한정은 옮김 / 파라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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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 싫어하고 두각을 나타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만 자신의 총명과 재주를 드러내는 순간 ‘정을 맞는 모난 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태평광기太平廣記》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나온다.

한 노나라 사람이 긴 장대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갈 궁리를 하다가 먼저 장대를 세워서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장대가 성문보다 높아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대를 눕혀서 들어가려 했지만 장대가 성문의 폭보다 길어서 들어갈 수 없었다.

이렇게 성으로 들어가지 못하여 근심하고 있을 때 한 노파가 그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일세, 성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많은 일들을 보아왔네. 장대를 자르면 들어갈 수 있을 텐데 왜 그러고 있는 것인가?”

이리하여 노나라 사람은 노파의 말대로 장대를 잘라서 성 안으로 들어갔다.

노나라 사람은 장대를 가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는 간단한 일을 놓고 속수무책으로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바보스럽긴 해도 착실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귀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장대를 손아귀에 쥐고 들어가면 된다고 말해주었더라면, 그는 장대를 자르지 않고도 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그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바보 같은 노파를 만났다는 점이다. 노파와 노나라 사람을 비교해볼 때, 바보스럽기는 매일반이다. 하지만 노파는 스스로 총명한 줄 알고 잘난체하며, 장대를 잘라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묘책’을 내놓았다.

살다 보면 사람은 미련한 행동을 할 때가 있지만, 스스로 총명한 줄 아는 사람은 더욱더 미련한 짓을 한다. (-)



“곧은 나무가 먼저 베이고 단 우물이 먼저 마른다”라는 말이 있다. 집을 수리하거나 건축할 때 대개는 곧은 나무들을 골라서 목재로 쓰게 마련이고, 단맛이 나는 우물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법이다. 자신의 재능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사람들은 비록 쉽게 발탁되어 중용될 수 있으나, 그만큼 다른 사람의 표적이 되기 쉽다. (-)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기러기가 연못을 날아가니, 연못에는 그림자가 남지 않는다.’ 기러기가 연못을 지나 날아가버리면 그 그림자도 연못 수면에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 외부에서 일어난 일에 전혀 반응하지 않을 수야 없겠지만,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



“재능은 몸 밖의 적이다.” 일신이 귀찮지 않으려면 주제넘게 나서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함부로 남 앞에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돌아오는 것은 욕뿐이다.



(-) 대나무를 그리기 전에는 마음속에 대나무의 형상이 있어야 한다. (-)



《사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춘추시대 초나라는 남부지역에서 세력을 떨치던 대국으로, 사방 천리에 세력을 과시하며 제후들을 위협했다. 하지만 초나라 장왕은 즉위 후 3년이 다가도록 국사는 돌보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음주와 향락에 젖어 있었다. 심지어 그는 ‘간언하는 자는 죽음에 처하리라’라는 방까지 내다붙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충신들을 간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중신 오거가 분연히 일어섰다. (-)

“황공하오나, 대왕께 수수께끼를 내고 싶사옵니다.”

오거가 이렇게 말하자 장왕이 윤허했다.

“산등성이에 새 한 마리가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울지도 않으니 이것이 무슨 새이옵니까?”

(-)

말을 마치자 돌연 뜻을 깨달은 장왕이 말했다.

“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노라. 물러가라.”

오거는 자신의 충언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알고 물러 나왔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장왕의 행동은 그 도를 더했다.

이번에는 소종이 의연히 앞으로 나왔다.

“그대는 간하는 자는 죽음에 처한다는 방을 보지 못했단 말인가?”

“자식으로서 죽음이 두려워 아비에게 간하지 않으면 불효한 것이오, 신하로서 죽음을 두려워하여 주군에게 간하지 않으면 불충하다 했사옵니다. (-)”

장왕은 (-) 연회를 중단하고 조정대사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주연에 함께 어울려 놀던 무리들을 엄히 벌하고, 오거와 소종 두 대신들과 국정을 의논했다. (-)

(-) 그는 이로써 두 가지 목적을 이룬 것이다. 하나는 제후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것이고, 둘은 이로써 대신들의 반응을 보고 진정한 충신을 가려내려는 것이었다. 이는 패업을 이루기 위한 준비였다.



욱리자는 (-) “말이 없는 자는 걷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고기가 없는 자는 푸성귀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자가 가득 채워지는 넘어지는 독특한 모양의 그릇을 보고 놀라운 듯 이렇게 말했다.

“물건 담는 그릇이 어찌 가득 채우지 않는 이치를 품고 있단 말인가?”

(-)

장무진도 “모든 일을 할 수 없고,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없으며, 모든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고, 모든 복을 누릴 수는 없다. 무릇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다 했으니 그 뜻이 참으로 깊다”라고 했다.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것은, 몸이 그 산중에 있기 때문이다”(-)



(-) 인생은 예측 불가능한 편도여행이다. 태어나는 그날부터 날마다 떠나왔던 곳으로 가까워지며, 이를 늦출 수도 만류할 수도 없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도 서쪽으로 지는 해를 잡을 수는 없다.



실제로 미움을 잊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현미경을 들고 주변을 살피려고 하지 말라. (-)



《노자》에 ‘지나치게 하면 그만두는 것만 못하고, 지나치게 날카로우면 오래 가지 못한다. 재물이 집안에 가득하면 지킬 수가 없고, 부귀하다 하여 교만하면 화를 부른다. 일을 이루었으면 물러나는 것이 천지의 이치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옛날에 한 농부가 풀덤불로 울타리를 덮어놓았는데, 어느 날 풀덤불에서 새의 우짖는 소리가 들렸다. 덤불을 들춰보니 꿩 한 마리가 그 속에 있었다. 그는 뜻밖에 꿩을 얻자 기뻐하며 꿩이 더 잡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풀덤불로 울타리를 덮어놓았다. 다음 날, 그 농부는 덤불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도 어제처럼 지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황급히 덤불을 헤치고 덥석 잡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있었고, 독사에게 손이 물린 그는 온몸에 독이 퍼져 곧 죽고 말았다. 

(-) 세상에는 생각지 못한 복과 생각지 못한 재앙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화복이 서로 기대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우연한 요행을 흔히 있는 일로 여긴다. (-)



(-) 좋은 것과 공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때, 비로소 평안을 지키고 목숨을 보장할 수 있다. 



청나라의 증국번은 일찍이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활의 시위를 한껏 당기지 않고 세력 소모를 다하지 않아야 한다. 흥성할 때 쇠할 때를 생각하고, 등장할 때 퇴장할 때를 생각하며, 높은 공로로 세상에 이름을 떨칠 때 반드시 명철보신해야 한다. (-)”



소하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데 능했던 승상이었다. (-) 

“(-) 상국께서 관중으로 오시자마자 크게 민심을 얻었습니다. (-) 황제께서 끊임없이 사람을 보내어 상국의 근황을 묻는 것은 상국께서 다른 뜻을 품을까 두려워해서이옵니다. 그런데 상국께서는 어찌하여 고의로 명성에 누가 될 일들을 하지 않는 것입니까? 이렇게 해야만 황제께서 안심할 것입니다.”

소하는 이번에도 이 권고를 받아들여 백성들로부터 욕먹을 행동을 하자 이에 유방도 안심했다.

한 고조 유방은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아서 그의 공신 가운데 반 이상이 좋은 끝을 보지 못했지만, 소하만은 주위의 건의에 힘입어 세 차례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들은 흔히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 활시위를 있는 대로 한껏 당기고 싶어한다.

그들은 자신이 활시위를 이미 충분히 팽팽하게 당겼다고 생각하겠지만, 경험과 연륜을 갖춘 사람의 눈에는 유치한 표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왜냐하면 그가 팽팽히 당겼다고 생각하는 그 활은 그리 대단한 파괴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자》의 〈간세편〉에도 ‘너는 사마귀를 알 것이니, 그것을 건드리면 발을 들어 수레라도 막을 수 있을 것처럼 화를 내지만, 이는 자신의 힘이 적수가 되지 못함을 모르는 짓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수룩하다’는 말의 뜻은 참으로 오묘하다. 애매하고 분명하지 않은 것이 어수룩함이요, 남의 일은 묻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어수룩함이다. 못 보고 못 들은 척하는 것이 어수룩함이요, 빙 둘러서 말하며 무덤덤한 것도 어수룩함이라 할 수 있다. 경계를 분명히 짓지 않는 것 (-)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일종의 어수룩함의 표현이다. (-)



천성적으로 강한 사람들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충격에 직면하면, 흔히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만 못하다는 경솔한 생각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웅심雄心은 있지만 마음이 유약하다. (-)

송대 초엽, 송 태종은 어느 날 대신 공수정, 왕영 등과 함께 주연을 열었다. 연회가 길어지면서, 만취한 공수정이 태종의 면전에서 왕영과 언쟁을 벌이는 행동으로 무례를 범했다. 연회에 참석한 대신들은 태종에게 공수정과 왕영 두 사람에게 엄벌할 것을 청했지만 태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 날 공수정과 왕영 두 사람은 전날 자신들의 행동을 떠올리고는 마음 졸이며 태종에게 죄를 청했다. 그러자 태종은 이렇게 말했다.

“그날 과인도 취하여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노라.”

(-)

태종은 자신도 취했다고 말함으로써 군신 모두의 체면을 지키면서, 공수정과 왕영 두 사람에게 실수를 거울삼도록 했다. (-)


왕안석이 겨우 예닐곱 살 때, 한 손님이 노루 한 마리와 사슴 한 마리를 한 우리 안에 넣어서 선물로 가져왔다. 그가 왕안석에게 어느 것이 사슴이고 어느 것이 노루냐고 물었다. 안석은 실제로 분별할 수 없었지만 한참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노루 옆에 있는 것이 사슴이고, 사슴 옆에 있는 것이 노루입니다.”



상대방의 말이 잘못되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음과 같이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아, 저는 다르게 생각하는데 맞는지 틀리는지 잘 모르겠군요. 만약 도움이 된다면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다시 말해서 (-)충돌하지 말며, 그들의 잘못을 비난하지 말며, 분노를 야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



세상에는 자칭 총명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부족한 것은 어수룩한 사람이다. (-)



(-) ‘신분이 높으면 사람들의 시기를 받고, 관직이 높으면 주인이 싫어하며, 녹봉이 많으면 원망을 산다.’



(-) 증국번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 땅은 넓고 내가 거하는 곳이 좁음을 알 때, 영리를 다투는 지경을 만나 그 약한 것을 지키기 위해 물러날 줄 안다. 서책은 많으나 나의 식견이 부족함을 알 때, 작은 것을 얻고 스스로 기뻐하지 않는다. 일이 다양하게 변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음을 알 때, 공명에 스스로 신중하다. (-)”



《채근담》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처세는 일보의 양보가 귀하고, 퇴보가 진보의 근본이다. 사람을 대함에 관용을 복이요,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 자신을 이롭게 하는 근본이다.’

당대의 시인 장공의 <백인가>(-)

‘백인가, 백 번 참을 인을 노래하라. (-) 참으면 여름이 덥지 않고, 참으면 겨울이 춥지 않다. 참으면 가난이 낙이요, 참으면 삶이 영원하다. 귀함도 참지 못하면 기울고, 부유함도 참지 못하면 줄어든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이 되고, 선행을 참지 못하면 결국 미움이 된다. (-)’



수나라에 우홍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

그의 동생 우필은 술에 취하여 말썽을 피우는 일이 잦았다. 그날도 우필은 술에 취하여 형 집 소를 활로 쏴 죽였다. 우홍이 집으로 돌아오자 그의 아내가 그를 맞으며, “도련님께서 술이 취해서 제정신이 아닙니다. 활로 소를 죽였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우홍은 아무것도 묻지 않은 채 쇠고기로 포를 뜨면 되겠다는 말 한마디만 던졌다. 그의 아내가 쇠고기로 포를 뜬 후 다시 소를 죽인 일을 꺼내자 우홍이 말했다.

“남은 것은 탕을 끓이구려.”

얼마 후 그의 아내가 다시 소를 죽인 일을 입에 올리자, 이번에는 우홍이 “나도 이미 알고 있소” 하고 말했다. (-)



이때의 증국번은(-) 일기 속에서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은 고요할 수 없으며, 얻기 전에는 얻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얻은 후에는 잃을까봐 노심초사하다가 세월을 보낸다.



첫째, 자신의 장점을 소개할 때는 외부적인 요인을 강조한다. (-)

(-) 모든 공을 ‘나’ 이외의 외부적인 요인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수고를 잊지 않았군, 만약 그만한 도움을 받았다면 나도 일을 잘 해낼 수 있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도록 만든다.

둘째, 자기 장점에 대해 얘기할 때 얼굴에 희색이 넘쳐서는 안 된다.

(-) 다른 사람의 칭찬과 축하 앞에서는 겸허하게 마음을 비워야 한다. (-) 

셋째, 우위에 있는 사람의 동료나 친구들 앞에서 지나치게 그를 칭찬하지 마라.

다른 사람의 칭찬을 싫어할 사람은 없자.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논리가 늘상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동료나 친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강점을 지니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누군가가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 같이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

일단 그의 강점이 입에 오르내리면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어느 결에 질시하는 마음까지 싹튼다. 따라서 우위에 선 사람의 동료나 친구 앞에서 그를 지나치게 돋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 (-)

넷째, 자신의 약점을 강조하여 고의로 장점을 희석시킨다.

중화반응처럼 한 사람이 지닌 약점은 흔히 그의 장점을 희석시키는 작용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보통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자신이 우위에 서 있다면 자신의 약점을 두드러지게 하여 질시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부담을 경감시켜야 한다. (-)

다섯째, 우위에 서기까지 겪었던 ‘힘든 역경’을 강조함으로써 질시를 희석시킨다.

힘겨운 노력을 통해 얻어진 성공을 질시하는 사람은 드물다. (-)



‘그릇을 보고 음식을 담고, 약방문을 보고 약을 담는다’는 속담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길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상대방의 심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을 처리한다는 것은 실제로 상대방이 나의 관점을 믿도록 설득하여 목적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상호 간에 관점을 공유하는 일은 몹시 힘든 협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 관점이란 개인의 소유물과 같아서 흔히들 다른 사람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

첫째, 적게 말하고 많이 듣는다. 상대방이 의견을 표현할 때는 최대한 침묵하며 경청한다. (-)

둘째, 상대의 얘기를 중간에 가로막지 않는다.

셋째, 지나친 논쟁을 피한다.

넷째, 조급하게 자신의 관점을 토로하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먼저 얘기하도록 한 후 당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상대방의 목적과 상황을 이해했으면 그것을 다시 반복하여 확인해본다. 흔히들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또한 상대의 관점을 다시 확인할 때 상대방이 주의깊게 듣도록 만들고, 그의 말을 빌려 당신의 관점을 얘기할 수도 있다.

여섯째, 핵심만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논쟁이 끝난 후에는 논쟁할 때의 기분 나쁜 것들은 잊어버린다.

일곱째, 토론할 때 주제에서 벗어나는 얘기는 하지 않는다.

여덟째, 상대방의 의견을 정면으로 반박하지 않는다.



‘잡으려거든 반드시 먼저 놓아줘라’ ‘얻으려거든 반드시 먼저 버려라’라는 속담이 있다. 여기에서 잡는다는 것과 얻는다는 것이 목적이고, 놓아주는 것과 버린다는 것은 관념적인 의미이다. 먼저 놓아주고 나중에 잡음으로써 그것을 잡아야 한다는 걱정을 없애고, 먼저 버리고 나중에 얻음으로써 그것을 얻을 근심을 없애는 것이다. (-)



자신의 약한 부분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신의 단점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들 한다. (-) 입은 마음의 대문이다. 중국에서는 실언한 사람에게 흔히 “입에 빗장이 없다”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을 들추는 방법으로 그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이런 방법은 상대로 하여금 ‘당신의 창으로 당신의 방패를 공격하도록’ 만들 수 있다. (-)



옛날에 한 농부가 말 한 필을 끌고 외지로 가던 중 정오가 되어 주막으로 들어가서 밥을 먹었다. 이때 한 상인이 말 한 필을 끌고 들어오더니 같은 말뚝에 말을 매려고 했다. 농부가 그 광경을 보고는 “말을 그 말뚝에 매지 마시오. 내 말이 거칠어서 당신 말을 발로 차서 죽일지도 모르오”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 상인은 그 말뚝에 말을 매놓고 주막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겁에 질린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급히 밖으로 달려가보니 상인의 말이 농부의 말발굽에 채여 죽어 있었다. 상인은 농부를 끌고 관아로 갔다. 현관이 농부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지만, 아무리 물어도 농부는 못 듣는 시늉을 하며 대답하지 않았다.

현관이 상인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벙어리 같은데, 어떻게 판결하라는 것이냐?”

“제가 방금 저 사람을 봤을 때는 분명히 말을 했습니다요.”

상인이 펄쩍 뛰며 말하자 현관이 이어서 물었다.

“그가 뭐라고 말을 했느냐?”

상인은 말뚝에 말을 맬 때 농부가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했다. 그러자 현관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렇다면 네가 억지를 부리는 것이 아니냐? 그가 사전에 너에게 경고를 했으니, 그가 너에게 말값을 배상할 이유가 없다.”

이때서야 농부가 입을 열었다. 농부는 자신이 대답하지 않은 것은 상인으로 하여금 이 일의 내막을 스스로 말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 무턱대고 평등한 대우를 요구해서도 안 된다. 이보다는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 뒤로 다가가서 그들이 지고 싶어하지 않는 짐을 지고 따라갈 줄 알아야 한다. 몸을 낮추고 겸허하고 신중하게 행동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적의를 점차 해소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예봉을 드러내면 백 가지 일이 근심이다.

예봉이란 본래 칼의 날카로운 끝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재능을 의미한다. (-)


예봉을 드러내는 사람이 중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흔리 사람은 어려움은 함께하되 영예는 함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하를 통일할 때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한 사람의 휘하에 모이고, 서로의 예봉을 드러내며 겨룬다. (-)

하지만 천하가 안정되면 맹장과 공신들의 재능은 황제에게 위협이 된다. (-)



우리는 누구나 좀더 총명해지기를 바라지만 이는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사람, 나보다 돈을 더 잘 버는 사람, 나보다 지위가 더 높은 사람, 나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리는 사람이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조금 어수룩하고 멍청하다면 그 또한 인정해야 한다.

‘바보’는 자신을 더 높은 단계로 인도하는 계단이다. ‘바보’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가르침을 구하기 때문이다. (-)

(-) 바보가 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부단히 배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자신을 벌하는 것이다. (-)



흔히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오해를 받으면 명백하게 해명하려 들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 총명한 사람은 사실 이런 때에도 해명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한다. 혀를 놀리는 것은 침묵만 못하며, 상대가 비방을 멈추는 이유는 내가 침묵하기 때문이다.



(-) 모든 일에 나쁜 점은 자신에게 돌리고 좋은 점은 남에게 돌린다. 다른 사람이 이름을 얻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얻은 것이며, 다른 사람이 이익을 얻었다면 나는 그의 마음을 얻은 것이다.



(-) 사람을 위해 노력하되 이익을 탐해서도 공을 탐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공과 이익을 양보하고 이름도 양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걸음 물러서면 그만큼 이익을 얻고, 한번 손해 보면 그만큼 복이 쌓인다는 것이다.



수천 년 전 노자는 “일이 성공했다 하여 공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을 이룬 후에는 이를 양보하고 명예나 이익도 양보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증국번 또한 도량과 양보하는 것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지켜 겸손하고 기다리며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공손하다는 것은 삼가고 조심하며 일의 대소에 상관없이 매사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양보한다는 것은 무슨 일에든 여지를 남겨두고, 공을 독차지하지 않으며 남에게 잘못을 미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사조신은 “스스로 겸손하면 사람들이 따를 것이며, 스스로 과장하면 사람들이 의심할 것이다. 내가 공경하면 사람의 화를 가라앉힐 수 있고, 내가 탐욕하면 사람들의 쟁의를 유발하니 이 모든 것이 다만 나의 사람됨에 있다”고 말했다.



기쁨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소망은 끝이 없지만, 기쁨은 한 그릇의 소금물처럼 마실수록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



한비자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그는 이웃에 사는 어떤 놈이 훔쳐간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눈에는 오가다 만나는 사람들마나 하나같이 도끼를 훔쳐간 놈처럼 보였다.

이 순간 그의 마음은 온통 도끼에 쏠려 있어서, 도끼는 곧 그의 세계이며 그의 우주가 되어 있다. 후에 도끼를 찾고 나서야 그의 마음속에 있던 의혹이 사라지고, 더 이상 사람들이 도끼를 훔쳐간 놈으로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한 자루의 ‘잃어버린 도끼’를 가지고 있다. 이 ‘도끼’는 바로 열중해 있지만 아직 얻지 못한 무엇을 말한다.



우리네 삶은 시시각각 취사선택해야 하는 과정에 머물러 있다. 언제나 취하고 차지하기를 갈망하는 나머지 차지하는 것의 반대편에 있는 것은 소홀히 한다.

그러나 버리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동쪽에서 버리고 서쪽에서 찾는’ 이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



마음속 깊이 간직한 치욕,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많은 사랑스러운 것들을 다치게 한다. 자신이 만든 고통의 심연에 갇히게 되고, 다른 사람의 행운을 보며 기뻐해줄 수도 없다. (-)


(-) 자신의 결점과 약점,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원한이 생긴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가능한 한 자신의 단점을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화려한 면만을 볼 뿐 그들이 위험한 함정과 혼탁한 소용돌이 속에 있다는 것은 보지 못한다. 여러 가지 모순과 갈등 한가운데 서 있는 그들은 자칫 잘못하면 공격을 당할 수 있다. (-) 높은 자리에 오래 있을수록 갖가지 약점과 문제들이 노출되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 쉽다.

(-)



우리 인간의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을 때 어떤 사람은 목숨을 버리지만 어떤 사람은 필사적으로 버틴다. (-)



(-) 성실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과 수준을 알고, 허명을 도모해서는 안 된다. (-)


(-) 화합과 화목은 말하기는 쉬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화목의 원칙을 세울 것인가? (-)

첫째, 물어서 안 되는 것이면 묻지 않는다.

둘째, 해서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셋째, 관여해서 안 되는 일은 관여하지 않는다.

넷째, 말해서 안 되는 일은 말하지 않는다.



_정판교의 바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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