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탄생 민음의 시 275
유진목 지음 / 민음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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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혼자일 때 나는 어떻게 너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말하며 대답할까. 네가 내가 만나고 싶은 네가 아닐 때 어떻게 우리가 우리라는 사실을 견딜까. 내가 나, 여기까지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의 다른 나는 유령이고 살아 있지 않은 나이며 스스로에게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단지 바라보는 나. 말하고 답을 듣지만 그것은 내 귓속에서만 울리는 목소리이고 잡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나. 눈앞에서 너를 볼 수 있지만 너는 만져지지 않고 만져져도 없는 사람, 들려도 볼 수 없는 이. 더 나아가 사람이 아닌 것,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 없는 사람들은 그게 뭔지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헤매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에서 나는 만지고 내리는 눈을 보면서 물음을 듣는다. 시인의 입은 천천히 열린다. 답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발음하고 싶어서 해보는 혼잣말처럼. “그러나 나에게는 아이가 쓴 글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작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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