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인간적 상황을 벗어날 것인가 - 인간과 종교, 제사, 축제, 전쟁에 대한 소묘
조르주 바타유 지음, 조한경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가능의 정점을 정하는 것은 바로 불가능이다. 또는 말을 바꾸면 불가능에 대한 의식은 의식으로 하여금 적어도 어떤 성찰이 가능한 성찰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미완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미완성이 결코 답변을 지연시키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늑대는 늑대를 잡아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 규칙은 깨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다른 늑대를 잡아먹는 늑대는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 규칙이 더 이상 적용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늑대와 세계 사이의 연속성은 남는다. 그러나 늑대 앞에는 매혹적인 또는 고통스러운 현상이 벌어진다. 즉 같은 종류의 개체들이나, 음식, 그리고 매혹의 또는 고뇌의 어떤 것도 이제는 전과 같지 않다.


 


동물을 사물로 간주하는 태도에는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일종의 위선이 개입한다. 동물은 스스로를 위해 존재하며, 동물이 사물이 되려면 동물은 죽어야 하든지, 순치되어야 한다. 그래서 동물은 죽은 상태의 음식일 때만 대상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요리는 (-)'인간은 사물로 만들지 않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일상적인 삶의 조건에서는 인간은 먹이가 되지 않는 동물이다. (-)요리란(-) 살아 있는 동물을 처음부터 사물로 규정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죽여서, 자르고, 익힘으로써 나는 암묵적으로 그것이 과거에도 사물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자르고, 익혀서, 먹는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속이 메스꺼워진다. 죽은 사람의 살을 먹는 일은 아무에게도 해가 되는 행위는 아니다.




제사장은 말한다. "(-)나는 희생자 너를 과거에 네게 있던 세계로부터, 너의 내적 본성과는 상관없는 의미를 갖는 사물의 상태로부터 너를 건져낸다. 그래서 나는 네게 신적인 세계의 내밀성과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심오한 내재생을 회복시켜준다."




끝에 이르면 사물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만져서 알 수 없는 특성들을 넘어서는, 모든 가능성을 향해 열린 문이 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문은 그 자체로는 텅 빔이다. 문은 무한 종속의 불가능성을 드러내면서 부서질 때만 사물일 수 있다.


초기의 내재적 신성은 인간과 세계의 동물적 내밀성에 근거하며, 반명 속세의 세계는 내밀성-인류에 내재하는-을 갖지 않는 사물의 초월성에 근거한다. (-)

신성은 그 자체로 둘이다. 암흑의 불길한 신성(-)은 길조의 밝은 신성(-)에 대립적이다.


이원론적 전개과정에서 발견되는 신성은 합리적, 도덕적이며, 불길한 속세적 신성을 거부하는 신성이다. (-)유동적이고 위험한 그리고 불완전하게밖에 이해할 수 없는 형태의 우연, 폭력에 불과한 물질세계의 분할은 고정된 작동적 형태들을 파괴하려고 위협한다.


폭력은 사물의 질서를 제거하되, 사물의 질서를 우선 확립시킴으로써 그렇게 한다. 반면 이성과 도덕의 초월성은 그 절대적 지배권을 폭력(폭발의 전염적 참해)이 아닌 사물의 질서에 부여한다. (-) 폭력은 세계 안에서 사물의 질서 다음의 권리를 가지며 폭력이 악으로 정의되는 것도 오직 사물의 질서를 위험에 빠뜨릴 때만 그렇다.

제사의 약점은 애초의 미덕을 상실한 신성한 사물의 질서를 현실적인 사물의 세계와 별로 다름 없이 비하시킨 데 있었다. 


제사, 위험한 폭력의 절대성에 대한 긍정으로서의 제사는 내밀성에 대한 향수(-)를 각성의 상태에 이르게 하고 고뇌를 유지시켜주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를 그 상태에 이르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폭력뿐이다. 그러나 충동적 순간에는 초월성이 아주 대단한 폭력적 폭발을 일으키고 폭력은 가능성의 각성인 것은 사실이지만-왜냐하면 그렇게 전적인 폭력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이원론적 각성의 입장은 다시 졸음으로 이어질 뿐이다.

이원론적 초월성은 세계가 두 원칙으로 분할되는 졸음의 상태(사실 졸음만이 그 분할을 견딜 수 있게 해준다)로 이어진다.(-)남아 있는 것은 복종이 절대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대립적 보완물 없는 현실적 질서의 제국. (-)폭력이 부정적인 자리밖에 차지할 수 없는 세상이다. 

 


악은 언제라도 끼어들 수 있다. 만약 악의 현실적 힘들이 내 눈앞에서 나의 친구를 죽인다면 폭력은 내밀성을 아주 활발하게 만들 것이다. 죽음의 내밀성이 고통스럽게 드러나는 폭력을 당하면 (-)잔인한 행위를 단죄하는 신성한 선의 편에 서게 된다.

나는 폭력에 호소해서 질서를 회복시킨다. 그러나 내게 신적 내밀성을 열어준 것은 복수가 아니라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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