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비슷한 것은 눈물이 되지 않는 시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6
김상혁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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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벌레를 싫어한다. 물론 벌레를 좋아하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겠지. 나는 새우를 먹지 못하는데, 몇 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내가 새우 접시를 눈 앞에서 치웠더니, 그걸 보고 한술 더 뜨던 선배 시인이 있었다. 존경하는 시인이므로 실명은 생략하고, 하여튼 그가 말했다. 상혁아, 새우, 그렇지, 새우가 좀 그렇지. 맞아, 저게 바닷속에 있으니까 새우네? 하고, 맛있다, 굽는다, 우리가 하는 거지. 저게 땅에서 산다고 생각해봐, 상혁아! 저게 땅을 기어 다니는 벌레였다고 생각해봐, 상혁아. 새우, 그렇지, 새우가 마룻바닥을 기어 다니는 벌레라고 생각해봐. 이 말을 듣고 있자니 정말로 속이 안 좋았다. 새우를 먹지 않는 나의 취향이 이런 식으로 이해받기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그때 이후로 나는 새우를 보면 벌레가 떠오른다. (-)

하여튼 길에다 곤충, 벌레 이름을 가져다 붙이는 행정 권력도 있는 것이다. 여기는 풍뎅이길 말고도 고추잠자리길, 오색나비길, 참매미길, 여치길, 소금쟁이길이 있다. 몇 년 전까진 풍뎅이길 아니고 법흥리였는데, 이건 우선 발음이 쉽지 않았다. 범흥리요? 아뇨, 법흥리요. 법응리? 아뇨, 아뇨, 헌법할 때 ‘헌’이오, 흥겹다 할 때 ‘흥’이오. 전화로 주소를 불러주면 보통 이런 식이었다. 도로명주소가 확정된 이후에도 많은 이들이 구주소를 사용한다. 나는 도로명주소 변경 통보문을 받은 그날 즉시 풍뎅이길을 사용하였다. 이제 전화로 집 주소를 불러주면 저쪽에서 따뜻한 말이 돌아온다. 파주, 풍뎅이길요? 이름 참 예쁘네요. 그 풍뎅이요? 그러면 나도 부드럽게 응답하게 된다. 네 맞습니다, 그 풍뎅이. 풍뎅이길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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