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품절


누구나 그렇게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다 한들 뭔가가 편리해지지도 않고, 뭔가에 소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을 순탄하게 살아가는 데는 아무 도움이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실을 무시해버린다.-111쪽

변호사 과정을 밟았지만 환멸을 느낀 나머지 결코 일선에 뛰어들지 않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하길 변호사가 되겠다고 허비한 세월에서 하나 얻은 게 있다면, 더는 법도 변호사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라고 했었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 꽤 흔한 편이잖은가.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144쪽

그러나 시간이란......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162쪽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늘 그러잖아."그녀가 말했다.
"날 떠난 게 내가 싫어서였어?"
"아니."그녀가 말했다. "우리 둘 다 문제여서 떠났던 거야."-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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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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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끝 무렵에 크게 놀란 일이 있었다고 써 있다. 심막삼출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그 일이 저를 많이 변하게 했어요." 데니즈가 썼다. "경험이란 그런 거죠. 삶의 우선순위가 한꺼번에 정리되고, 그후론 제 가족에게 깊이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고 있어요. 가족과 친구보다 더 중요한건 없으니까요." 그녀는 단정하고 작은 글씨체로 그렇게 썼다. "그리고 제겐 둘 다 있으니 얼마나 축복이예요." 그리고 카드의 끝을 처음으로 이렇게 맺었다. "사랑을 담아." -54쪽

소용돌이치며 두 사람을 집어삼키는 바닷물 속에 다시 잠겼을 때 그는 패티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녀의 팔을 꼭 붙잡았다.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이나 격렬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싶어 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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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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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는 이제 영영 평범한 사람으로 살 수 없다는 뜻인가?
하하하, 특별해지기를 원해야지. 보통의 존재로 생을 마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일은 없지. 특별해지는 게 필요해. 우리는 중요해 져야만 해. 원더보이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야지. 매순간 삶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기를. 네가 원더보이인 한은 누구도 네 안의 놀라움을 짓밟거나 파괴할 수 없어. -87쪽

네 아빠의 몸은 하나지만, 네 아빠의 추억은 그보다 많고, 네 아빠의 영혼은 무수히 많지. 우리는 한 번 죽고, 여러 번 살고, 무한대로 존재하지. 그 무한대의 영역이 지금 네가 닿아 있는 근원이야. 우리는 불에 타서 죽고, 물에 빠져서 죽고, 칼에 찔려서 죽고, 병이 들어서 죽을 거야. 어쨌든 우리는 모두 한 번 죽을 거야. 하지만 여러 번 살아.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서. 우리 살이 짓눌려 물이 되고, 우리 뼈가 갈려 가루가 된다고 해도 우리는 닳거나 없어지지 않을 거야. 네가 기억하는 한, 네가 있는 그곳에,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네 아빠는 존재할 거야. -91쪽

외로움이란 그런 것, 누군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불필요한 감정이었다.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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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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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왠만한 소설은 단숨에 읽어야 한다. 이 책을 덮으며 끝내 들었던 생각이다. 열심히 책을 읽는 누군가가 책을 읽듯, 잠들기 전 30분 독서에 '스노우맨' 과 같은 소설을 포함시켜서는 안된다는 큰 교훈. 바보같이 이 책을 쪼개서 읽었다가 스노우맨의 가장 큰 장점으로 보여지는 '속도감'을 잃어버려 땅을 치며 머리를 박았다. 맞다. 이 책은 '한 번 잡으면 멈출수 없는', 캐릭터가 나 인지 내가 캐릭터인지 무아지경으로 읽을때 가장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해리 홀레라는 매력적인 캐릭터, 토막쳐 읽는 동안 싱싱한 캐릭터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아 무척 아쉬웠다.

 

 

 추리소설을 읽는데에 있어서 아직 뒤짚기도 못하는 초보 수준인 나에게 이 소설을 추리소설 이라기 보다 해리 홀레라는 형사의 이야기다. 매력적인 이 형사의 분위기가 소설 전체를 압도하는 느낌이다. 노르웨이 유일의 연쇄살인범을 잡는 형사이자 알콜중독에 한번 빠진 사건은 볼장을 다 보는 그의 성격. 그리고 이 정도 형사 스펙에 꼭 필요한 '라켈'이라는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순정성까지 티비 시리즈의 형사가 가져야 할 매력 포인트 들을 모두 가졌다. 처음엔 누구도 관련성을 인정하지 못했던 오슬로의 살인사건을 '연쇄살인사건'의 항목으로 분류시키고 시시때때로 범인의 '몽타주'를 새로 만들어내는 그의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능력이 하나의 사건을 매듭짓고 뭔가 '끝났다!' 고 생각하기 좋게 소설을 갈무리 한다. 주인공이란 이 정도 능력은 가져야 하나보다.

 

 

 요사이 비슷한 소설을 그나마 조금 접하다 보니 또 유심히 보게 되는 건 바로 범인 '스펙'. 얼마전에 읽은 모방범이라는 소설의 범인도 그랬고 이 소설의 진범인 마티아스 또한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 답게 일그러진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비딱해진 모습으로 세상을 보고, 그 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차례로 목록에 올린 후 살해하고 눈사람의 흔적을 남기는 그의 모습.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마티아스를 크게 비판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가진 생각들을 어쩌면...우리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컴플렉스적인 측면 때문에 무서우리 만큼 철저해지는 것, 끝내 자신의 약점을 피할 수 없는 모습, 그게 바로 인간이 아닐까.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이 추리소설엔 '인간'이 있다. 이 장르의 특성상 누군가 죽고 따라 잡고 잡히는 과정에서 감출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이 드러난다. 추리는 그래서 매력적 인것 같다. 해리 홀레의 모습에도, 마티아스의 모습에도...우리 모두가 들어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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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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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일일수록 부딪쳐야 한다고. 그래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고. 이 집에서 살았을 때 해리는 늘 올레그를 지하실로 내려보내곤 했어."-95쪽

"병에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 의사들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죠. 전 죽음이 삶보다 더 매력적인 순간이 올 때 자살을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말한 제논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제논은 아흔여덟 살 때 엄지발가락이 탈구됐는데, 그 일로 너무 속상한 나머지 집으로 가서 목을 맸죠."
"당신도 번거롭게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 꼭대기까지 올라가지 말고 그냥 목을 매지 그래요?"
"글쎄요, 죽음은 삶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가 되어야죠. 어쨌거나 고백하자면, 그렇게 죽어서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요. 유감스럽게도 제 연구는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해서요."-176쪽

"과학자들이 경험이 많은 권투선수들의 뇌 활동을 측정한 적이 있어. 권투선수들이 시합 도중에 꽤 여러번 의식을 잃는 거 알아?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여기서 잠깐, 저기서 잠깐 의식을 잃는다지. 그런데 몸은 마치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아는 듯이, 통제력을 발휘해서 다시 의식이 들 때까지 버틴다는 거야." (중략)
"하지만 첫 방에 나가떨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카트리네가 얼굴에서 머리카락을 떼어내며 말했다.
"권투선수들처럼 맞는 대로 휘청거려야지. 저항하지 마. 일의 어떤 부분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건드린다면, 건드리게 내버려둬. 어차피 막아낸다 해도 오래가지 못하니까.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인 다음 댐처럼 풀어놔. 벽에 금이 갈 때까지 담아두지 말라는 말이야.
-263쪽

이다르 베틀레센은 어떤 악령과 싸웠을까? 악령을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아니면 이곳이 성역이나 피난처 였을까? 아마 그도 몇가지 해답을 얻었겠지만, 모든 해답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광기와 악이 전혀 다른 두 개체인지 혹은 더는 파괴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을 때 단순히 그걸 광기라고 불러야 하는지 같은 질문의 해답들. 우리는 무고한 민간인이 사는 도시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이해하지만, 런던의 슬럼가에 질병과 도덕적 타락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매춘부들을 토막 내야만 했던 살인자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전자는 현실이라고 부르고, 후자는 광기라 부른다. -280쪽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고, 그 외의 일은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잘못된 생각들이 마음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했다. 해리의 가르침이었다.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괴물들을 정복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노력해야 한다. 가능한 자주 그 괴물들과 대면하고 싸워야 한다. 이길 수 있는 사소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578쪽

에우네의 말이 옳다. 모든 아이들이 완벽한 기적이라면, 삶은 근본적으로 퇴보해가는 과정이다. -6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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